탈북자정책의 변화로 본 남북관계
<연재> 통일부 20년, 고경빈의 빈수레 소리 ⑫
지난 4월 상암경기장에서 남북한 축구대표팀간에 남아공월드컵 예선경기가 열리던 날의 이야기입니다. 하나원에서는 저녁식사 후에 직원과 교육생이 함께 텔레비전을 보며 공동응원을 하자고 했습니다.
하나원은 탈북자가 입국한 이후 가족관계부(과거의 호적)를 창설하는 등 법적 신분을 확립할 때까지 보호를 받으며 사회정착교육을 받는 기관입니다. 하나원에서는 보호중인 탈북자를 교육생이라고 부르며 항상 수백 명이 공동생활을 합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교육생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주변을 의식하며 머뭇대던 교육생들이 숫자가 압도적으로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공동응원 보다 일방적으로 북한 팀을 응원하는 분위기로 흘렀습니다.
남한 팀이 1대0으로 승리하였습니다. 득점 순간 남한출신 당직직원 혼자 환호를 올렸는데 분위기가 썰렁했더랍니다. 또 상당수 교육생은 맘 편히 응원하기 위해 숙소에서 혼자 경기를 보았답니다.
왜 공동응원이 안되었는가를 따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고향 팀을 응원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하나원 수료 후 일반 음식점 같은 데서 남한 사람들 속에 섞여 이 같은 경기를 관전할 경우에도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맘 편히 고향 팀을 응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탈북자가 남한 땅에 정착할 때의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힘든 것은 남한사회의 편견 내지 선입견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탈북자라는 사실을 주변에서 알게 되면 무시당하지나 않을지? 겉으로는 환영하지만 뒤로 수군거리지 않을지? 그런 걱정으로 탈북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려는 사람도 많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죠. 그러나 대부분은 주변에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 지를 예민하게 의식하면서 생활하게 마련입니다.
탈북자를 보는 남한사회의 시각이나 정부정책은 지난 반세기 동안 크게 두 번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휴전이후 상당기간 남북은 전쟁의 연속선상에서 심리전을 통해 체제 정통성 경쟁을 벌여 왔습니다. 탈북자를 귀순용사라 부르며 국가영웅으로 대우했습니다. 대대적인 환영행사와 기자회견에 나섰고 많은 물질적 보상이 따랐습니다. 탈북자 업무도 국가유공자를 담당하던 국가보훈처(당시 원호처)가 맡았습니다.
90년대가 시작될 무렵 새로운 관점이 나타납니다. 국제적 냉전의 해체가 배경이 되었습니다. 북한은 내외의 어려운 사정에 의해 경제난이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많은 주민이 식량을 구하러 두만강을 건너면서 탈북자가 급격히 늘기 시작합니다. 과거 한해에 수명의 귀순자가 발생했던 것에 비해 이제는 그 숫자가 수십 명에서 수백 명으로 늘어납니다.(지금은 한해 3천명 수준입니다)
남북한 체제경쟁은 끝났으며 탈북자들도 국가영웅이라기 보다는 난민으로 보는 관점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1993년 탈북자 정책이 국가유공자 차원에서 소외계층 보호차원으로 전환되면서 업무도 보건복지부(당시 보건사회부)로 이관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전환은 탈북자의 성격과 남북간 체제의 차이라는 현실을 무시한 것으로 여러 문제를 야기하였습니다. 탈북자들은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목숨을 걸어 본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단순히 복지시스템에 맡기면서 체제의 차이는 각자 알아서 극복하라고 하는 것은 이들의 삶의 의지를 과소평가한 것이고 잠재적 능력을 사장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결국 부적응 사례들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그 사회적 비용은 납세자의 몫으로 돌아올 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탈북자 정책을 남북간 체제의 차이를 고려하면서 이들의 의지와 능력을 살리고 자립자활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변경하라는 요구가 있었고, 이를 통일의 작은 시험대로 인식하면서 업무도 1997년 통일부로 이관되었습니다.
탈북자를 국가유공자나 복지대상자로 보는 관점의 공통점은 국가재정이 이들을 부담으로 안겠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면, 이들을 국가의 자산으로 만들자는 것이 새 정책방향의 핵심입니다. 단순한 물질적 보상이나 복지 제공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남북간 체제차이를 고려하여 정착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취업과 취학 지원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들이 시작됩니다.
이 시기에 하나원도 설립됩니다. 아직은 대부분의 탈북자가 초기정착 단계에 있고 정부도 시행착오를 해가면서 보다 적합한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는 중입니다. (현재 국내거주 탈북자의 2/3이상이 남한에 입국한지 5년 미만입니다.)
지금 우리사회에는 탈북자를 보는 오래된 관점과 새로운 관점이 많던 적던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제 또 한번 새로운 관점을 모색할 시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관점은 탈북자 문제를 그들의 문제로 보고 있는 셈입니다. 남한의 기준과 환경에 입각하여 적응이 잘되도록 탈북자의 부족한 능력이나 처지를 보강시킨다는 것이죠. 남한사회 따라잡기를 돕는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이 접근은 남한주민 따라잡기에 성공한 일부를 제외한 많은 탈북자들에게(또한 일반국민에게도) 탈북자는 2등 시민이라는 인식을 초래할 우려가 있습니다.
성장배경과 문화습관이 남한에서 자란 사람들과 다르다는 현실을 서로 받아들이되, 이것은 다른 것일 뿐 결코 틀린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어야 합니다. 북한출신으로서 자신을 드러내더라도 위축되지도 않고 차별받지도 않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의 변화에 관심을 돌려 우리의 문제로 보자는 것입니다.
장차 북한동포 전체와 공존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면 탈북자관련 재정투자의 결과가 탈북자 개인의 복지향상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우리 사회 전체의 관용적 포용력 증대를 목표로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통일역량이라고 부르던 사회적 다양성이라고 부르던 사회적 능력의 향상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통일이 될 때 북한주민이나 북한사회를 어찌해 볼 것이냐 보다 우리 사회가 어떤 영향을 받으며 어떻게 적응해야 하느냐가 더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캐나다 이민사회의 문화적응에 대한 한 조사연구(J.S.Berry)에 따르면, 모국문화를 유지하면서 새 문화를 받아들이는 집단이 모국문화를 버리고 새 문화를 받아들이는 집단보다 이민정착에 성공적이었다고 합니다. 연구자는 이를 각각 통합(Integration)과 동화(Assimilation)로 개념 지었습니다.
이념이나 정치 문제가 아니라 애향심이나 고향의 전통관습까지 버리거나 숨겨야 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사회문화를 받아들이는 데도 실패한다면 이들은 주변화(Marginalized)되어 주류사회와 갈등을 일으키고 사회불안 요인이 된다는 것이 이 연구의 시사점입니다.
통일뉴스 www.tongilnews.com
2009년 10월 2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