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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학교 3학년, 전쟁의 실상 새터민수기
 관리자  | 2008·06·09 10:23 | HIT : 5,118 | VOTE : 324
인민학교 3학년, 전쟁의 실상
                                                                                          김광철(가명/새터민)
1950년 인민학교 3학년 때였다.

학교에서는 모든 학부형들을 다 학교로 나오라 하여 운동장 밖에 깊이 60cm 너비 40cm로 전호를 파고 수업이 시작되면 10분 후에 란타로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학생 전체가 전호에 들어가서 무릎과 팔 굽을 땅에 대고 양손으로 눈과 귀를 막고 입은 딱 벌리고 배는 땅에 닫지 않게 하고, 엎드려서 있다가 다시 종이 나면 일어나 교실로 들어가 수업을 시작하군 하였는데 그때 전호에 들어가서 귀를 막지 않으면 귀가 먹고 눈을 가리 우지 않으면 눈이 멀고 배가 땅에 닿으면 배가 갈라진다고 하면서 계속 말하여 주었다. 우리는 매 시간마다 한 번씩 연습을 하였고. 그때 하늘에는 비행기가 떠서 다녔는데 어데 비행기 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연습을 5월 말까지 하고 6월1일부터는 학교 문을 닫으니까 학교에 나오지 말고 집에서 놀다가 부모들과 같이 행동하면 된다고 하여 다음날부터 놀고 있었는데 어느 날 부모들과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전쟁이 일어났으니 이제는 다 죽게 되었다고 야단이었다. 그 다음부터 상부의 지시에 의해 집 옆에다 반공호를 팠고 산간에다 움막도 치곤하였다. 그 후부터 비행기만 뜨면 폭탄과 기관총을 퍼붓기 시작했고, 낮에는 전문 반공호에서 살았고 밤에는 신발을 신고 집에서 자다가 급한 비행기 소리만 나면 불의에 반공호로 뛰어 들어가곤 하였다.

전쟁이 시작되어 날짜가 흘렀는데 1차 진공 한다면서 많은 인민군 부대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 남쪽으로 가면서 밥을 해달라고 하여 마을 인민들은 상부의 지시에 의해서 무조건 밥을 해주게 되었다. 밥을 안 해주는 집은 반동이라고 하였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일시적 후퇴를 하는 시기였다. 다시 돌아오는 그 많은 군인들을 또 밥을 해먹이게 되었다. 한집에 쌀도 한도가 있는 것이지 그렇게 많겠나요? 그때 밥을 해내라 하여 쌀이 떨어졌다고 하면 반동이라고 고함을 치며 총부리를 둘러대고 온 집안을 수색하여 쌀이 없으면 총으로 닭과 돼지를 쏘아 잡아가곤 하였다.

이때로부터 인민들은 인민군대를 무서운 사람들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인민군의 후퇴가 마지막 단계였는데 이상하게도 인민군 대열이 후퇴하면 삼일 후에는 국방군 대열이 뒤따르고 연속으로 몇 일 동안 위에서 인문군 따발총 소리가 계속 났다. 지나가던 국방군 대열은 순식간에 논둑을 의지하여 전투준비를 하고 총을 쏘기 시작했는데 나는 어린나이였지만 그 전투준비 동작이 마구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너무 규칙적인 동작이었기 때문에 아주 재미있게 보았고 총소리도 딱꿍 딱꿍 하는 총소리가 듣기 좋았고 튀여 나온 탄피를 주어가지고 놀려고 총 쏘는데 마다 탄피가 튀여 나오면 그것을 주으면서 뛰어다니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15분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 총소리가 멎고 출발 구령과 함께 모두 다 지나갔다.

그 다음날 아침에 세대주들은 모두 삽과 곡괭이를 가지고 나오라 하여 가지고 갔는데 인민군대 5명이 죽었는데 얼굴이 너무 파손되어 누가 누구인지 모르게 된 것을 묻고 왔다는 것이었다. 이때 국방군들은 한명도 부상을 당한 사람도 없었다.

그 후에 몇일이 지났는데 주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허덕이고 있을 때 2일 후에는 국방군들이 밥을 갔다 준다는 소식들이 왔다. 사람들은 좋아서 기다리다 그날 9시경에 국방군들이 대형 화물차에다 밥을 싣고 왔는데 밥을 철갑모만한 크기로 뭉쳐서 하얀 백지에다 싼 것을 세 대당 세 개씩 나누어 주어서 먹었는데 왜 이렇게 밥이 맛이 있는지 그 전에 집에서 먹던 밥은 대상도 안 되기 때문에 어른들은 말하기를 곡창지대는 남쪽이기 때문에 맛있다고 하면서 통일이 되면 그곳 남쪽에 가서 살겠다고 하였다. 그 때부터 주민들의 감정은 달라졌다. 인민군대는 총부리를 둘러대고 호통을 치면서 뺏뜨려 먹고 갔는데 인민들이 굶고 있다는 것을 알고 밥까지 만들어서 공급을 해주니까 정말 고마운 국방군들이라고 하였다. 그때 그 밥은 남한에서 만들어서 기차로 실어다가 100리 떨어진 산간지대까지 공급하여 주었으니 어떻게 많은 밥을 지어 날라 왔는지 정말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전쟁이 끝난 후 이 전투 실전을 그 누구에게도 말을 못하고 60평생을 살아왔고 이런 말만 하면 선전을 한 것으로 취급하여 없애 치우기 때문에 그랬다.

그 후부터 사회주의를 건설한다고 개인들의 토지를 다 뺏어가지고 공동체로 만들어 집단 로동을 하니까 모두 일을 안 하고 건달만 부려 농사들은 전반적으로 패만하였다. 그러면서 모든 선전들을 남조선에서 1950년 6월 25일 일요일을 계기로 전국이 다 휴식하는 짬을 리용하여 불의의 전쟁을 일으켜 수다한 사람들을 죽였다고 교육을 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북한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다. 전쟁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말 마디나 좀 하고 바른 말을 하여 정당한 의견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모두 반혁명 분자에다 명칭을 모조리 죽여 버렸는데 수십만명에 달했다.

그리고 머리 제일 나쁘고 못살았다는 사람을 간부로 등용시켜 일을 시킴으로 하여 반항이 없고 하라는 대로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그 다음부터는 가족주의가 커지면서 지방주의가 되고 지방주의가 커지면 반란이 일어난다고 모든 가족이나 친척, 친구, 직장생활에서 형님, 동생, 오빠, 아저씨라는 말을 못하게 만들어 모든 사람들 호상간에는 동무라고 부르라 명령을 내렸고 김일성만 동지라고 부르게 만들었다. 아저씨 형님 소리만 들으면 집단 회의를 열고 집단 공격도문 비판을 해도 안 들으면 무서운 징벌과 6개월 무보수 로동까지 시키다. 이것이 바로 김일성을 우상화하기 위한 수단이였다. 금방 중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오면 20대들이 40대, 50대들을 동무라고 불러 나이차이 없이 같은 동기 동창으로 만들어 놓았고 심지여는 며누리가 시아버지를 보고 시아버지동무 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지요.

곳곳마다 이런 현상들이 벌어져서 많은 사람들을 웃기군 하였지요. 그 후 10년 이상 되여서 부터는 자기 나이와 아래 나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동무라고 부르고 자기 이상의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동지라 부르게 하여 19세 난 아이들도 60세 어른에게도 또한 자기 아버지와 같은 분들에게도 꼭꼭 동지라고 불렀지요. 김일성도 동지라 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말을 못했지요. 그리고 악수도 서양식이라 하여 악수를 못하게 했고 조건은 손에는 무서운 균들이 득실득실하기 때문에 그 병균들이 있다 하여 병의 근원이 된다고 까지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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