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벚꽃이 4번째로 피었습니다.
진다래
꽃망울 터뜨리느라 분주한 봄바람이 사람들의 목을 적시며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는 나에게 4번째로 다가온 화창한 봄날입니다.
거리와 마을이 온통 하얀 벚꽃 속에 묻히고 공원의 파란 하늘이 꽃구름 속에 덥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화창한 봄날이면 봄바람도 우리의 심중을 들여다보는 듯 어디선가 날아와서는 휘감았다 풀고 또다시 휘감으며 마음을 흔들어놓습니다.
아름다운 경치에 한껏 잠겨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들 꽃을 감상하며 손에 손 잡고 공원을 찿아와 향유의 시간을 보냅니다.
이런 모습들을 바라보며 나도 생각에 잠겨 꽃 속으로 걸어갑니다.
그러노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명상에 잠겨버리고 끊임없는 생각의 나래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온갖 시름 다 잊어버리고 활짝 웃으며 걸어가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나의 얼굴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소가 비낍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들입니까? 아름다운 자연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행복을 선물로 선사하여 주는 것입니까?
이런 행복 속에 빠져들어 명상에 잠겨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 깜짝 놀라 생각에서 깨어납니다 몹쓸 짓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도 판이한 현실에 직면한 나 자신이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죽을 만큼 힘든 이북사회에서 살다 보니 자신 스스로가 거부하고 지워버리고 생각조차 안했던 나의 인생. 모진 세월 속에 오로지 가정의 생계를 위하여 나의 인생과 바꿔버렸던 소중한 것들이 지금처럼 행복한 순간이면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내가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나의 인생 나의 행복을 되찾아주고 기억하게 합니다. 아 어쩌다 나의 인생이 이러한 전환을 가져올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인간의 상상을 가지고는 가능치 못할 놀라운 일입니다.
너무너무 힘들고 맥이 진하여 단 2시간만 잠들었다 깨려고 자리에 누웠다가도 소스라쳐 놀라 화다닥 일어나 뜀박질하며 장마당으로 내닫습니다. 내가 편안하면 우리 집 식구가 굶게 된다는 오로지 그 하나의 일념이 사정없이 지친 나를 장마당으로 뛰어가게 했습니다.
고도로 긴장된 정신력을 가지고 시간을 초로 쪼개며 살다보니 육신의 고달픔에서 오는 변화를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나 혼자만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장마당에 나가면 내 앞에도 내 뒤에도 내 옆에도 다 지친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지고 묵묵히 주어진 운명들에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끼 또 한 끼 하루 또 하루가 고군분투의 날들이었습니다.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한 많은 그 세상이었습니다.
너무너무 힘들어 살 기력마저 잃고 죽어버리고만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희망이 생겼습니다. 나를 찾아주는 어머니의 손길이 나에게 닿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처럼 상처만 주던 고향을 버리기로 결심하고 죽을 각오를 하고 떠났습니다. 죽음을 초월한 그러한 선택이 나의 소중한 것들을 다시 찾아준 것입니다.
하지만 운명을 바꾸는 그 길은 상상조차하기 어려우리만큼 멀고 험했으며 죽음을 각오해야하는 시련 많은 길이었습니다.
남과 북은 원래 하나의 핏줄을 이은 하나의 강토이건만 분단60여년의 기나긴 세월과 더불어 수많은 아픔을 남기면서 멀리 걸어왔습니다.
그 결과로 인해 남북은 가장 가까운 지척에 있는 곳이면서도 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 수개월을 넘어 드디어 대한민국이라는 남쪽나라에 도착하여 마음의 짐을 풀고 새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은 4번째로 피는 벚꽃 속에서 꿈같이 흘러간 길지 않은 세월을 추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고 생활의 여유를 느끼니 그동안 내 자신이 혹사시켰던 나의 몸이 하나둘 아픔을 호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모진 세월을 이겨내느라 사랑해 주지 못한 내 몸이 그제서야 병들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검진을 받은 결과 내 몸에서 자라고 있는 종양덩어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북에서 오직 생계만을 위하여 뛰어다닐 때는 그저 힘들어서 그러거니 하고 생각했었는데 병들고 있다는 생각은 못하고 살았습니다. 건강검진결과 심각하다고 당장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사회의 잘 갖추어진 의료보험의 혜택으로 수술을 받고 다시 건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만약 이북에서 탈출하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지금은 이세상사람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파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에 직면하게 되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을 것입니다.
북한에서 말하는“ 인민대중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가 과연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 누구를 위하여 필요한지. 그 땅에서 지금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배고픈 고통과 무지와 어두운 미래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여지게 아픕니다. 어쩌다가 그 사회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우리 부모세대들이 매일같이 혁명을 위하여 일한다고 귀한 자식 제대로 한번 안아 볼 사이 없이 열심히 살았는데 후대를 위하여 왜 아무것도 남겨 놓을 수 없었는지!
하지만 그 정권은 아직도 인민들을 향하여 호소합니다.
“당과 수령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한 목숨 받쳐 싸우라”고
굶주림과 헐벗음 속에서 벗어나 보려고 몸부림치는 그들의 고통과는 상관없는 당과 혁명이고 수령인가봅니다.
언제면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도 그 울타리를 허물고 평등과 자유의 권리를 누리면서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요?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이 나라 한반도의 한부분인 이북 땅에도 인간의 권리가 보장되고 사람들의 왕래가 자유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고 또한 조국통일은 고향을 떠나온 우리들에게 있어서 스스로가 짊어지게 되는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땅에 있었으면 벌써 저세상사람이 되었을 제가 지금은 밝은 세상을 활보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힘들었던 그 세월을 생각하며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열악한 사회 환경에서 저에게 잠재했던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고 마음의 짐을 다 내려놓고 백지처럼 하얀 마음에 아름다운 벚꽃을 가꾸는 심정으로 주름 없는 삶을 살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사회에 정착하여 새로운 운명으로 다시 태어나 인간의 권리를 누리며 지금 행복한 이 순간에도 두고 온 이들을 생각하며 행복할 수 없는 우리 새터민들과 함께 저 분계선에 손에 손잡고 남과 북을 이어놓을 다리의 한 토막을 담당하기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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