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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에 계시는 형님을 그리며2004/10/26
관리자


                                                                                                                              김  주  명

    형님 또다시 새날이 밝습니다. 어젯밤도 형님의 신상을 걱정하다 밤늦게 잠든 명이 엄마는 무슨 꿈을 꾸는지 흐느끼고 있습니다. 형님의 북송소식을 듣고 뜬 눈으로 새다시피 하는 우리가족입니다. 가뜩이나 몸 놀리기 불편하여 따라가길 어렵다던 한국행에 강제다시피 형님을 내보낸 것도 죄스러운데 이런 봉변까지 당하게 했으니 한탄하고 계실 형님의 음성 자꾸 들려와 잠들 수가 있어야지요.

  명이 엄마가 하도 속상하여 어제는 네거리에 위치한 신통대사의 집에 가서 물어보니 세상만사는 운이 따라야 한다고 운이 따르지 않아 그랬으나 연말부터는 신이 내려 온다나요. 요즘은 잠을 자다가도 저를 꼬집으며 불쑥 깨어나 저에게 묻곤 합니다. 형님의 말을 들어주었다면 ...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에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요.

  목전의 제 생각만 내세우던 나머지 형님의 신상에 영원할 고통을 남긴 것이 몇 백번 후회됩니다. 저의 이 말이 변명이라 해도 좋고, 한갓 타령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생존경쟁의 이 사회에서 나이도 많고 더구나 환자인 형님에게 제가 무얼 바랐겠어요.

   제가 바란 것은 단지 형님이 이제 남은 생이나마 쌀밥을 실컷 먹어보고 인간세상에서 살아보았구나 하는 것을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우리 집안에서 제일 고생을 많이 하셨고 저를 제일 많이 위해주신 형님과 함께 누리고 싶은 그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형님, 생각나세요? 2000년9월 제 생일날, 파라티브스에 걸려 맥없이 누워있는 저에게 먹이려고 농장의 이삭강냉이를 훔쳐오다가 당하였던 일 말이에요. 2작업반 농장강냉이 밭 경비에 동원된 공산군8대(군대)의 코흘리개들 총탁 (개머리판)에 얻어맞으면서도 형님은 끝끝내 다섯 이삭의 강냉이를 내의 속에 싸가지고 새벽녘에야 집으로 돌아왔었지요. 그리곤 그 날 저녘부터는 농장밭의 강냉이를 훔친 죄로 ‘꼽빠크’(노동단련대)에 가서 3개월간 뼈 빠진 고역을 치러야 했고요.

   저는 그때 형님의 이마에서 흐르는 핏물이 떨어져 범벅된 강냉이, 깨끗이 씻지 못하여 형님의 피가 굳어져 삼아진 강냉이 알을 한 알, 또 한 알 입에 씹으면서 소리 내어 울었었지요. 제가 그때 운 것은 아우를 위하는 형님의 행동에서 느껴지는 혈육의 정에서만이 아닙니다. 형님의 이런 처사를 관망만 할 수 밖에 없는 동생인 저의 무능력 때문에 더더욱 병 속에서 몸부림친 것입니다.

   오늘에 와서 보면 그때 우리 제련소마을 6명의 목숨을 앗아간 파라티브스로 인한 집단 사망 속에서도 돈이 없어 약조차 제대로 쓸 수 없었던 제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형님이 흘리신 그 피가 고가의 약효로 저의 몸속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저는 지난 6월22일 그네들(D교회)의 말을 곧이 믿고 형님이 몽골국경을 넘어 섰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들리는 소문이 글쎄 한국에 가려고 몽골에 들어가려 했던 그 성원들이 몽땅 잡혀 나왔다는 것입니다. 전혀 믿기질 않아 두루 알아보던 끝에 혹시나 하여 7월23일경 D교회에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천만뜻밖에도 사실이라는 것과 자기들도 어디에 갇혀있는지 위치 파악중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들려오는 소리가 ‘투먼감옥’(중국도문)에 있다는 것입니다. 돈을 주어 사람들을 내세워 본 즉 이미 시간상 늦었다는 것이에요. 그 기간 도움이 된다고 하는 일에는 저나 명이 엄마나 어디에나 얼굴을 내밀었고 소갈데 말갈데 다 다녀보았습니다.

   이 땅에 사는 국민으로서 이 나라 최고통수자가 있는 청와대에도 진정서를 내보았고, 외교부에 가서 사정도 하여 보았습니다. 나중에는 화되는 일인 줄 알면서도 언론사의 힘도 써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이 허사였습니다.

   형님! 형님이 지금 당하고 계시는 고통, 제가 조금이라도 풀길 없다는 것을 알아요. 그러나 형님 제가 올리고 싶은 것은 용기를 잃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형님이 겪고 있는 고통은 오늘날 형님 한사람의 것만이 아닙니다. 눈만 뜨면 지척이고 날개라도 있으면 분계선을 저 하늘의 새 마냥 훨훨 날아 넘을 수 있으련만 갈수도 없는 이 편지에나마 울분을 토로할 수밖에 없는 이 현실 - 이것은 이곳에 온 탈북자들만이 아닌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한민족, 어느 가정에서나 겪고 있는 이산의 슬픔, 분단의 비극이라 생각해요.

   오늘날 동북 삼성과 동남아지역을 떠도는 탈북자 그네들이 바라는 것이 호화호식인가요? 또 북한정권에 돌멩이 한 개 던져본 사람들이었던 가요? 세계정치사에 유례없는 폭정과 위선에만 오직 매달려 있는 독재정권이, 독재자가 오래 갈 수는 더구나 없어요. 어제 밤 꿈속에서 보았는데 누군가가 형님은, 저의 형님만은 꼭 살아 나오신다고 확신 있게 말하더군요. 오늘 밤 꿈속에서는 개천가에서 저와 함께 반두질(고기잡이)을 하며 즐기고 계실 형님의 모습을 다만 한 순간만이라도 그려보려고 합니다.

   형! 형님에 대한 사무치게 그리운 정이 복받쳐올수록 저에 대한 형님의 사랑, 그리고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형님에 대한 이 동생의 원한이 상봉의 그날을 안아 오리라 믿음안고 이몸은 더더욱 기운을 내어 오늘도 일터로 나아가렵니다.

  형님! 형! 꼭 용기를 잃지 마세요. 아무쪼록 우리 만나는 날까지 억세게 살아가주세요


              2004년 8월 22일 동생 주명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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