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 54, page : 1 / 3, connect : 0
: 전체 : 2004년 (28) : 2005년 (54) : 2006년 (66) : 2007년 (70) : 2008년 (51) : 2009년 (38) : 2010년 (39) :
[금상] 사랑하는 이모에게2005/09/28
관리자


이모,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다 무고하나요?
가족은 건강합니까?
사촌들은 학교 잘 다녀요?
그곳 평양의 경제는 어때요?
그래도 살아갈 수 는 있는 거죠?
여전히 하루벌이를 위해 전전긍긍하시나요?
우리가 한국에 왔다는 것 때문에 안전부에 자주 불려 다니느라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나요? 많은 것이 궁금해서 미치겠어요. 그렇다고 편지 보낼 수도 없고, 직접 가서 확인할 수도 없고, 그리운 이모의 얼굴도 볼 수도 없으니 너무도 슬프네요.

전 잘 살고 있어요. 가족도 건강하구요. 다만 연락이 안 되니 마음고생이 많아요. 갖은 방법을 다 취해 봐도 정확한 소식은 들리지 않으니, 어찌 제가 다리를 뻗고 편히 잘 수 있겠어요. 그래도 이모보다는 제가 더 마음이 편안한 것 같아요. 이모랑 함께 평양시내를 누비던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네요. 그때는 먹고살기 위한 전투였는데, 지금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니, 세월이 많이도 흐른 것 같아요.

이모와 헤어져 만나지 못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되네요. 긴 세월동안 저는 많이도 자랐고, 지금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마음껏 배우고 있으며, 먹을 것을 구하느라 생사를 걸지도 않아요. 그리고 생각의 자유를 가지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말로 표현을 하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마음껏 하면서 인생을, 삶을 즐기고 있어요. 그러나 저는 이렇게 편하게 인생을 즐기는데, 이모는 아닌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정말 인생은 누구도 장담 할 수 없는 것인가 봐요. 어느 누가 우리 가족이 남한이라는 곳에 정착할 것이라 생각이나 했겠어요. 그리고 브로커들을 시켜 한국에서부터 중국을 통해 돈을 들여보내기도 하고, 연락을 갖기도 하게 될 것이라 상상이나 했겠어요. 또한 장군님 품안에서 충성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할 일꾼들이, 어찌 나라를 배신할 것이라 생각했겠어요.

역시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 다는 것은 위대했어요. 국경을 넘게 만들었고, 귀향할 생각을 갖지 않도록 했고, 세상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했으며, 자유라는 것도 갈망하게 했어요. 그래서 절대 발을 디뎌서는 안 될 남한까지 오게 되었네요. 분명 북한에 남겨진 친지들이 고초를 당할 것이라는 것도 잘 알면서 방향을 바꾸지 못했어요. 그 대가로 우리 가족은 지금은 자유를 얻었지만, 이모와 삼촌들은 멸시와 박해를 받고 있네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변명을 해야겠지만 그냥 이해해 달라고만 부탁하고 싶어요.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도 않고 고향을 떠난 것도 아니기 때문 이예요.

신분 없는 서러움에서, 쫓김에서, 타향살이에서 벗어나야 했던 것이, 우리 가족의 목표였어요. 그렇다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았어요. 다시 독재자의 국가에 충성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지옥이었죠. 이모는 이해하기 힘드시겠지만 자본주의를 알게 되면 더 이상, 내가 나서 자란 고향이고 조국일지라도 가고 싶지 않게되요. 차라리 타향살이가 고달프다 해도 자유가 있는 곳에 머무르는 것이 더 나을 정도이니까요. 사람에게 자유라는 것은 필수인가 봅니다. 자유 없는 삶은 식물인간이나 마찬가지 인 거죠. 물론 자유엔 책임이 따르지만 그래도 자유가 좋네요.

중국에서 저는 우물안 개구리와 같은 북한의 외부를 보게 되었어요. 지금껏 우물안에서만 살다보니, 겉모습의 우리나라를 보지 못한 거죠. 다행이도 바쁜 나라의 경제사정이 결국 저를 다른 세계로 인도 했네요. 시야를 넓혀주고 올바르게 볼 수 있도록 한거죠. 그것이 아니었으면 남북이 분단된 이후로, 우리 조상님들이 그렇게 살았듯이 저도 그 절차를 밟았을 거예요. 또한 평생을 쫓기면서 살수는 없었어요. 쫓기다보니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해야 했고, 자존심 버리면서 아부를 떨어야 했고,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그런 상황에까지 이루게 되더라구요. 그렇게 되다 보니 아무리 세계를 보게 된 들 무슨 의미가 있고, 희망이 있겠어요. 그래서 결국은 신분을 갖기 위해, 지식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를 더 잘 알기 위해 선진국 라인에 속한 남한으로 오게 된거죠.  이렇게 융통성 있는 곳에서 세계를 알게 되어서 내심 자랑스럽고 기뻐요.

지금은 이렇게 한국 온지도 5년이 되고 나니, 북한에서의 삶은 제 인생의 출발점이자 전환점이자 목표지인 것 같아요. 그리고 타향생활은 저를 성숙하게 만든 것 같구요. 세월이 흐르니 그때 그렇게 눈물겹고 힘들었던 삶이 헛되진 않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네요. 저의 사춘기시절의 경험들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인 같아요. 그 경험들로 인해 삶이 더욱 더 아름다운 것 같아요.

이모 전 지금까지 거쳐 온 삶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그 삶이 앞으로의 삶에 튼튼한 뿌리가 될 것이라고 믿어요. 이모 지금은 많이 힘드시더라도 참으세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좋은 일이 일어날 꺼예요. 힘내세요~

흠... 이모랑 만나서 이모의 10년이라는 시간의 삶에 대해 듣고 싶어요.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났을지 너무 궁금해요. 연락이 닿고 만날 수 있다면, 여기 우리 집에 초대할게요. 우리 집에 오셔서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실감나는 이야기를 나눠요. 아직도 이모가 명절 때마다 보내주던, 그 맛있는 사탕이 그립네요. 그리고 평양에 있는 광복백화점 지하식당에서 먹던 계란빵이랑 옥류관 국수랑, 어죽이 나를 이모네 집으로 초대하는 것 같아요. 남북이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는 날이 오면,우리 서로 주저하지 말고 왕래해요. 그럼 조카는 근 십년간의 저의 이야기를 여기서 마칠게요.
건강하시고, 꼭 다시 만나길 간절히 바래요.  

2005. 9. 조카



덧글 개


164

 [2005년] 서 평 (배평모/소설가)

관리자

2005/10/02

8904

163

 [2005년] 심 사 평 (최대석교수)

관리자

2005/09/29

9183

162

 [2005년] 책을내면서 (홍사덕 대표)

관리자

2005/09/29

8816

161

 [2005년] [금상] 사랑하는 이모에게

관리자

2005/09/28

8762

160

 [2005년] [은상] 사랑하는 내 딸 윤옥아

관리자

2005/09/28

8717

159

 [2005년] [동상] 보고 싶고 불러보고 싶은 엄마에게

관리자

2005/09/28

8706

158

 [2005년] 사랑하는 아들에게

관리자

2005/09/27

8769

157

 [2005년] 사랑하는 내딸 수련이에게

관리자

2005/09/27

8694

156

 [2005년] 보고싶은 친구에게

관리자

2005/09/27

8769

155

 [2005년] 보고싶은 아버님께

관리자

2005/09/27

8508

154

 [2005년] 보고 싶은 고모님께

관리자

2005/09/27

8797

153

 [2005년] 보고 싶은 우리 엄마

관리자

2005/09/27

8716

152

 [2005년] 꿈에도 못 잊은 사랑하는 언니에게 1

관리자

2005/09/27

8748

151

 [2005년] 그립고 보고싶은 오빠 언니에게

관리자

2005/09/27

8396

150

 [2005년] 항상 보고싶은 동생에게

관리자

2005/09/27

8670

149

 [2005년] 그리운 외할머니에게

관리자

2005/09/27

8332

148

 [2005년] 사랑하는 할머님께 올립니다.

관리자

2005/09/27

8633

147

 [2005년] 북한 어린이들에게

관리자

2005/09/27

8247

146

 [2005년] 보고싶은 친구 승옥이에게

관리자

2005/09/27

8503

145

 [2005년] 보고 싶은 오빠에게

관리자

2005/09/27

8348
  1 [2][3] 
Copyright 1999-2020 Zero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