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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고 보고 싶고, 안아주고 싶은 나의딸 영숙에게 전하다2005/09/27
관리자

내가 제일로 사랑하는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딸 영숙아!
그 동안 잘 있었니?
일진이 일심이도 잘 있구?. 특히나 어린 일심이 지금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담배를 마느라고 상앞에 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있을 그 모습이 눈에 선히 떠오른다. 또한 일진이 학교에 갔다 오면 배가 고파서 입술이 초들초들 하던 그 모습, 밥 없는 줄 알고 밥 달라는 말없이 배고픈데 놀러 나가지 말라고 하면 ‘할머니 배가 고플 때는 나가 놀게 되면 노는 정신에 배 고픈줄 모른다’ 면서 책가방을 방바닥에 내 동댕이치고 뛰어나가던 그 모습도 눈에 밟히는 구나!

너에게 편지를 쓰는 이 순간도 엄마는 눈물이 편지지에 자꾸만 떨어지고 안경을 쓴 눈이 뿌옇게 되여 잘 보이지 않아서 글을 쓸 수가 없구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딸 영숙아!
엄마는 이 편지가 네 손에까지 갈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너무도 네가 그리워 이렇게 쓰고 있단다. 그 곳에서 너와 함께 생활할 때 내가 항상 네 약한 몸을 근심 했었는데 지금은 좀 어떤지, 좀처럼 이 엄마는 걱정스러워 시름을 놓을 수가 없구나

내 딸 영숙아!
내가 그곳에 있을 때 보다 살림 형편은 더 어렵겠는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 정말로 내가 매일매일 먹고 있는 입쌀밥이 목이 메여 넘길 수가 없구나, 너희는 강냉이밥도 배부르게 못 먹겠는데, 네 시어머니 돐 제사 때 상에 올려놓았던 입쌀밥 특히 잊혀지지 않는 것은, 한 그릇 가지고 네가 먹자고 하니까 일진이와 일심이도 먹겠다고 숟가락을 들고 그 한 그릇의 밥그릇에 달려들던 그 모습 눈에 선히 떠오르면서 엄마는 밥술을 들기가 더더욱 힘들어지는구나!

나의 딸 영숙아!
내 떠나기 전날 네가 몹시도 근심을 했었지 잡힐까봐 말이야, 그 전에 내가 중국에 들어 왔다가 잡혀 나갔을 때 당했던 보위부에서의 그 배고픔, 자리가 비좁아 앉아서 자던 일 ‘이’가 너무 물어뜯어 견딜 수 없던 일, 소금과 물을 못 먹던 일 등 생각 할수록 기가 막히고 목이 메인다.

그러면 이제부터 네가 근심하고 있을 이 엄마의 소식을 전하려고 한다. 너와 갈라진 엄마는 망향구 사람의 안내로 우리가 눈물의 두만강이라고 부르던 그 두만강 옆 어떤 아주머니 집에서 경비대 군인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두만강을 건너게 되었다.

내 딸 영숙아!
그 날은 말이야 매일 그렇게도 여름날씨마냥 좋던 날씨가 갑자기 차지면서 광풍이 몰아치고 눈바람이 일면서 얼마나 추웠니? 그래서 더더욱 네가 걱정을 했었지, 그런데 말이야, 찰 줄 알았던 두만강 물이 차지 않고 마치 따뜻한 감까지 주더라. 사람이 신경을 곤두세우면 추워도 추운 줄 모르는가봐.

중국에 도착한 우리는 중국 조선족의 안내로 그날 밤으로 흑룡강성 어떤 집에 도착 하게 되었지. 그때 난생 처음 택시라고 부르는 승용차를 타 보았다.
영숙아! 너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까지 사람을 날라다 주는 사람들을 브로커라고 부른단다. 그 브로커의 말이 내 한사람만 데리고 갈 수 없으니 한국으로 갈 사람들이 더 모여야 데리고 가겠다 하여, 사람들이 모을 때까지 나 혼자 그 집에서 살게 되었단다.

첫날 주인집 아주머니가 입쌀밥을 한 그릇 듬뿍 담아 주더라, 한술 떠넘기다가 너희들 생각으로 목이 콱 메여 넘기지 못 하니까, 주인아주머니가 당황하여 웬 일이냐고 묻기에 내가 아무일도 아니라며 물 건너 두고 온 자식들 생각 때문에 그런다고 하니까, 그 아주머니 웃고 말더라. 그네들은 굶는 것이 무엇인지, 배고픔이 어떤 것인지 모르니까 말이다.

낮에는 그 집에서 중국 공안원들에게 잡힐까봐 밖에는 못 나가니까 그 집 천정을 쳐다보며 나는 시 한수를 지었단다. 아래에 적으니 네 읽어 보아라

거치른 이북 땅!
쓸쓸한 찬 바람아!
작별의 아픈 가슴
건들지를 말아라
사랑하는 자식들을
뒤에 두고 가는 마음
저 푸른 하늘에도
담지를 못 하리라

나는 이렇게 시 한수 써 놓고 곡을 마음대로 부쳐서 부르고 또 부르며 눈물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그 어느 날 온성에서 한집식구 다섯명이 넘어 왔더라. 젊은 부부간에 귀여운 3살짜리 봄순이라 부 는 여자애와 나와 동갑 65세 짜리 할머니 한분과 이모 사촌 처녀, 이렇게 한 가족이 왔는데 그들을 보니까 너희들 생각이 더 간절하더라. 너도 그렇겠지만 나도 너희들과 함께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하고...... 말이다.

이튿날 우리는 한국으로 오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택시를 갈아타고 하면서 베트남 국경까지 도착하였단다. 중국 땅은 눈 내리는 추운 겨울이지만 그곳은 여름날씨더구나. 베트남 국경을 넘을 때는 정말로 이제는 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로는 다 표현 못하겠다.

그 바쁜 순간에도 내가 그 곳에서 보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더라. 어떤 영화였는지 제목은 떠오르지 않지만 정찰병들이 사선을 넘는 것 같은 장면 말이야.

영숙아!
글쎄 눈물겨운 일은 3살짜리가 아무것도 모르련만 밤인데도 자지 않고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엄마 품에서 아빠 품으로 바꾸어 안기면서도 기침소리 한마디 내지 않지 않겠니. 우리가 떠나기 전에 그 애더러 울면 잡혀간다고 단단히 엄포는 놓았었지만 그 어린 것이 글쎄 무엇을 안다고 그렇게도 참하게 노는지, 눈물이 나더라.

이렇게 험난한 길을 걸어 캄보디아 땅에 도착하였다.
그 곳에는 한국 목사님이 계시여 우리를 반겨 주었고 우리와 같은 마음으로 한국으로 가려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영접했고 성경학습을 했단다. 성경을 읽어보니까 그곳에서 교육받던 김일성 주체사상 바로 그 내용이었어. 참,  넌 성경이 무언지 모르지? 하나님에 대한 책인데 그곳에서 아편이라고 무섭게 부르던 것인데 성경을 읽어보니 사람이 살아가면서 좋은 일만하라고 적혀 있더라. 그래서 나는 남보다 더 열성적으로 성경을 읽었다. 좋은 책인데 왜 그렇지 않겠니. 그렇게 28일간 그곳에서 날을 보냈다.

그 후 어느 날 엄마는 책에서, 영화에서, 하늘에서, 드문히 보던 비행기를 타고 고대하던 대한민국 땅 인천공항에 어뜩어뜩한 새벽에 도착하였단다.
밖에 나와 보니 글쎄 눈이 부시여 한동안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처음에 얼마간 머리가 뗑 하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지. 빨간불, 파란불이 서로 엇갈리면서 번쩍거리는데 그 황홀감이란 참말로 형언하기 어렵더라. 왜 그렇지 않겠니. 그곳에서는 전기를 주지 않아 캄캄한 세상에서 살던 내가 아니니. 마중 나온 사람들은 얼마나 삽삽하고 예절이 바르게 인사를 하는지. 우리 일행은 마치 입이 겨울 개구리 마냥 얼어붙은 것처럼 마주 인사도 변변히 올리지 못했단다.

다음엔 버스를 타고 대성공사. 하나원 등에서 5개월간 교육을 받고 서울에서 살려고 나왔다. 참 이곳에서는 우리가 살겠다는 곳에서 살게 해준단다.
정부에서는 값 싼 아파트와 먹을 식량 반찬감 그리고 이불, 요, 베개, 갈아입을 옷까지 다 내어 주었다. 또한 전기 밥가마와 반찬 끓여 먹을 수 있는 가스렌지라는 것까지 내 주었다. 그리하여 내 생활에는 불편한 것 조금도 없었다. 또 이웃들은 오래간만에 찾아온 혈육을 만난 것처럼 반갑게 대해 주었고 반찬이랑, 옷가지랑, 많이 가져다주었단다.

그래서 엄마는 그럴 때마다 눈시울을 적셨어. 정말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곳에서 교육받던 것과는 정 반대인 나라였어. 자유롭고 구속 없고 제 마음 내키는 대로 살고 자기가 열성 내여 일하면 일한 것만큼 돈을 많이 내주지, 쌀값이 싸지... 그 행복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단다.

그 곳에서 교육하기는 썩고 병든 사회, 자유 없어 사람 못 살 사회, 굶주려 거지가 많은 나라라고 거짓말 교육만 했더라. 또 나는 65세라고 정부에서는 일을 하지 않아도 매달 57만원이라는 많은 돈과 그리고 버스와 기차를 타라고 4만 5천원이라는 돈을 3달에 한번씩 주지, 정착금이라고 분기에 100만원씩 주지, 지하철은 무상으로 타고 다니지, 하니까 나는 부자가 된 기분이다.

영숙아!
이런 지상천국이 하늘아래 또 어디 있겠니.
내사랑하는 딸 영숙아!
엄마는 이런 큰 행복을 누리고 있으니 엄마 걱정 이제부터는 전혀 하지 말아라. 그러나 엄마는 너희들 생각으로 눈물을 흘리며 밤을 지새우는 때가 많단다. 언제 통일이 되어 그리운 너희와 만날 수 있겠는지...
과연 그날이 오겠는지... 그날은 정말로 기약할 수 없는 일이로구나.

나의 딸 영숙아!
이제는 엄마 펜을 그만 놓으련다. 만나는 그날까지 죽지 말고 이를 악물고 건강하게 잘 있기를 기원하면서 펜을 이만 놓는다.
일진이 일심이도 잘 키우거라.
엄마가 너희들 몫으로 한푼 두푼 돈을 저축하고 있으니 만일 어떤 기회가 생기거든 돈을 보내주겠다. 희망을 가지고 기다려라.
그러면 이젠 정말 펜을 놓는다.
안녕히! 잘 있고 잘 있어라 내딸 영숙아.
2005년 9월 6일 엄마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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