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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동생 성숙에게200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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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성 실

나의 사랑하는 동생 성숙아,
그 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니?
지리적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면서도 이 언니는 살아생전에 너랑 은숙, 연숙이를 만날 수 있다는 아무러한 확신도 가지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정신적으로 힘들게 살고 있구나.

맏딸인 내가 부모님한테는 “딸구실, 아들구실”을 잘하겠다고, 동생들한테는 “엄마처럼” 맏언니구실을 잘하겠다고 입버릇처럼 외웠는데 그 모든 걸 뒤로 한 채 오늘에 이르게 되었구나. 병들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시던 아버지, 이 맏딸이 민족반역자가 되어 머나먼 최북단의 탄광으로 추방될 때 실성한 사람처럼 대성통곡하던 어머니, 지금도 생존해 계신지요? 이 딸을 원망할 대신 자신이 딸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의 짐을 짊어지고 가시겠다던 어머님이 정말로 보고 싶습니다.

성숙아!
내가 하지 못한 그 많은 짐을 너에게 다 맡기고 나는 지금 이곳에 와있구나. 얼마나 힘든 세월을 네가 견디어 내는지 비록 멀리 있어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단다. 우리가 그곳 추방지에서 더는 살수가 없기에 탈북의 길을 택할 때 너희들 앞에 차려질 엄청난 시련을 내가 어찌 모를 수 있겠니.

하지만 지금 와서 아무리 설명해도 변명으로 밖에 안 들리겠지.
그러나 그때 우리 가족이 두만강 물속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지금은 북한의 어느 “정치범수용소”에 감금 되었을 것이고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도 없었겠지.

수년째 끊긴 식량공급, 혈육 한 점 없는 그곳에서 정치적으로 박해 받으면서 살아 숨 쉬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생각된다.
더는 그곳에서 살 수 없어 줄줄이 가족전체가 탈북했고 우리는 성공의 기쁨을 즐길 사이도 없이 죽을 각오를 하고 여러 나라 국경을 넘어 마침내 이곳 대한민국에 도착하게 되었다. 긴박했던 상황을 간신히 넘기고 국경을 여러 번 넘는 결단 끝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터를 이곳에 꾸려놓고 행복하게 살고 있단다.

성숙아! 은숙아! 연숙아!
너희들 이름을 부를 때면 목이 메고 눈시울이 항상 젖어 온단다. 몇일 전에는 너와 똑같은 이름에 나이도 비슷한 여자가 탈북에 성공하여 한국에 왔단다. 혹시나 하여 한달음에 달려가 보았는데 너는 아니더구나, 그 여자를 붙들고 나는 많이도 울었다. 마치 너를 본 것 같아서,...

지금도 어머니 환갑 때의 일을 잊을 수가 없구나.
너희들이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맡겨 어머니가 그때 “언제면 철이 들겠니? 내가 죽으면 어쩔래?” 라고 하시자 너희들은 이구동성으로 “큰 언니가 있지 않아요, 큰언니는 우리한테 엄마나 같은데,..”라고 했지,

죽을 때까지 너희들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리라 결심했는데 오늘은 이렇게 인위적으로 쌓아놓은 장벽에 가로막혀 소식조차 모르고 있니,... 더욱이 너희들이 이 언니 때문에 커다란 정치적 보복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물론 그 사실여부의 정확성은 모르지만,... 몇 사람 인편을 통해 너희가 있던 집에 연락을 보냈는데 너희들이 그 집에서 살지 않는다고 하니 필경 이 언니처럼 어느 농촌이나 탄광 혹은 임산마을에 추방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참말로 미안하다. 무슨 말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단다.

우리는 서울의 아담한 아파트에서 세상 부럽지 않게 살고 있단다. 북한에서 본 외국영화의 장면 그대로가 우리들의 생활이다. 북한에서 성황리에 상영되고 있는 영화인 “민족과 운명”에서 차홍기와 신달래가 승용차를 타고 캐나다에서부터 미국으로 가면서 “목동과 처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보고 얼마나 황홀해 했었니... ?

또 집에서 외국에 마음대로 전화하는 것을 보고서도 저런 것은 영화 속의 꿈이라고만 믿었지.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다 현실이다. 너희는 우리의 생활 전체를 상상도 못할 거다. 이런 생활을 나와 우리 가족만 하고 너희들은 지금 모진 박해와 탄압 속에 힘들게 살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아프다. 밥을 먹어도 모래알을 씹는 것 같고 물을 마셔도 목구멍이 아파 잘 넘어가지 않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아무리 추워도 내의나 털 외투를 걸치지 않는다. 어지간한 비에는 우산을쓰지 않고 다닌다. 이 언니 때문에 고통 당하고 있을 너희들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 언니가 없다 해도 너희 형제는 서로가 서로를 자신보다 더 위하면서 강하게 살길 바란다. 건강에 언제나 유의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꼭 만나야 하고 또 만날 수 있다.

언니도 이젠 머리에 흰 서리가 내리고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단다. 그러니 건강해서 잘 버티어 주길 바란다. 내 아들들도 잘 지내고 있고 모두가 아기 아빠가 되었다. 우리 만나는 날에는 이모,할머니 하면서 귀여운 손자, 손녀들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오래 살면 증손자나 증손녀도 볼 것 같다.

우리 그날까지 서로에 대한 믿음을 굳게 가지고 건강히, 열심히 살아가자.  꼭 그런 날이 있으리라 확신하면서 펜을 놓는다.
안녕히
2006년 7월 29일
서울에서
큰 언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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