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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동지에게 드립니다.200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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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혜 숙


가슴속 깊은 곳에 진수동지랑 동지네 가족을 깊이 묻어두고 지내온 세월이 벌써 15년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지내시고 계신지요?
머리엔 어느덧 흰 서리가 내리었겠군요.
옥희 엄마랑 옥희네 형제들은 어떻게 있는지요?
이제는 어엿한 한 가정의 세대주로, 또는 아내가 됐을 옥희, 옥분, 성철이들이 말입니다.

저도 이제는 5명의 손자, 손녀를 둔 할머니가 되었답니다.
우리가 처음 알게 된지도 반세기가 거의 되었군요,
단발머리 처녀 대학생 때부터 할머니가 된 오늘까지 세월은 저만치 앞서 갔어도 그때 그 시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됩니다.

우리는 대학 1학년 때 우리 학급에 제대군인 동지들이 집단으로 편입 되었을 때 군 복무과정에 얼굴은 검붉게 탔으나 세련된 늠름한 그 모습들을 한명씩 바라보면서 참말로 존경했답니다. 더욱이 진수동지는 우리 민청원들이 그처럼 희망했던 당원들의 조직인 조선노동당 당 세포의 세포위원장 이었지요, 학업과 오래 떨어져있던 관계로 동지들의 학과실력이 낮아 1:1로 우리와 조를 편성하여 우리 직통생들은 공부로, 동지들은 생활면에서 우리를 도와주기로 했는데 저는 행복하게도 세포위원장인 진수동지와 한조가 되었었지요.
매사에 세심하지 못하고 덜렁덜렁한 저를 동지는 나의 개별 선생님이라 하면서 막내 동생처럼 얼마나 잘 돌봐 주었는지 모른답니다.

진수동지가 방학 때 고향에 가서 갓 결혼한 오늘의 옥희 엄마를 데리고 와서 저한데 소개해 주었을 때 저는 마치 친언니 같은 그의 배려와 보살핌에 정말로 고마워했답니다.

대학 3학년 때 첫딸 옥희를 보았을 때 제가 갓난 애기 옷이랑 아기 포단을 “소포”로 보내면서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던 것을 동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지요? 제가 대학에서 선참으로 조선노동당 후보당원으로 되던 그때에 진수동지는 저희의 “입당보증인”이 되어 저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책임질 것을 당 앞에 맹세했지요.
제가 북한을 떠나올 때 책상 우에 그대로 놓고 온 저의 당증 앞면에는 입당보증인인 동지의 이름 “김진수”가 정중히 밝혀 있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이렇게 기약할 수 없는 길 - 탈북의 길에 올라 오늘은 상봉은 고사하고 편지도 보낼 수 없는 국경의 남쪽 대한민국에 와 있게 되었으니 세상이 참으로 야속합니다.
아니면 우리의 운명이 너무나도 다른 것이었는지?

꿈이 아닌 현실 앞에서 저는 모든 것을 다 바쳐 동지에게만은 참말로 미안하다는 말을 수천 번도 더 하였답니다. 동지가 보증한 한 당원의 탈북으로 동지에게 정치적인 피해를 보게 하지는 않았는지?

진수동지!
참말로 죄송합니다.
“이모”라면서 그처럼 따르던 옥희 형제들에게도 옥희 엄마에게도, 머리 숙여 “미안합니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군요,

저는 지금도 저의 맏아들이 먼저 한국 행을 택한 결과 “민족반역자” 가족이라는 오명을 쓰고 칠칠야밤에 보위 원들과 안전원들의 살벌한 경계 속에서 평양을 출발할 때의 그 순간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소스라쳐 일어나며 그러고 나면 온몸은 땀에 푹 젖곤 합니다.

그때 동지는 부총국장이라는 막중한 위치에 있으면서 닥쳐올 그 어떤 정치적 압박이나 추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지요, 마지막으로 손을 꼭 잡고 “나는 너를 믿는다. 어디에 가든지 건강하게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 주어라, 앞날에 대한 신심을 굳게 가지고,”라고 마지막 말을 잊지 못하였는데 아마도 오늘을 예언한가 봅니다.

철창 없는 감옥 같은 탄광오지에서도 저는 주저앉지 않고 꿋꿋이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정년퇴직까지 하였습니다.
저는 진수동지 보기에도 부끄럽지 않게 1호 표창 수상자로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민족반역자” 동생이라면서 세 아들이 인간이하의 천대와 차별대우를 받으면서 하루하루를 힘들에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저의 눈에서는 눈물이 아닌 피고름이 나왔답니다.

그러다가 한국으로 먼저 간 맏아들의 연락을 받고 우리는 칠칠야밤 속에 살아서 맏아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확신이 없이 사는 것보다는 죽더라도 꼭 만나고 싶고 한번이라도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싶어 하는 세 아들을 보려고 저는 사품치는 두만강 물속에 뛰어들었습니다.

탈북과정에 둘째 혁이는 북한 보위부에 체포되어 지금은 생사도 모릅니다.
우리 이후에 탈북한 친구들의 입 소문에 의하면 어느 정치범 수용소에 갔다고 하는데 거기에 일단 들어가면 죽어서도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저의 심장은 갈기갈기 찢기고 있습니다.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생명이 보존되어 살아서 한번이라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것 뿐입니다.

진수동지!
지금 우리는 이곳에서 꿈같이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철이와 훈이는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한 가정의 세대주로 애기 아빠가 되었답니다.
저 역시 건강합니다.
또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언제면 우리가 서로 만날 수 있을런지요?
경의선, 경원선은 언제 개통되어 서로 왕래가 가능하게 될 가요?
죽어서도 한번 가보고 싶은 내 고향 저 북녘 땅을 밤이면 꿈속에서 가보군 합니다.
추석이면 어김없이 임진각에 가서 북한의 부모와 조상들에게 큰절을 올립니다.

우리는 아담한 고충 아파트에서 의식주에 대한 아무러한 걱정도 없이 살고있습니다.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이 차려진 식탁에 앉아서도, 새로운 집기를 하나 장만하다가도 항상 그곳에 두고 온 형제, 친구들을 생각하며 그러면 그저 죄송스럽기만 하여 다음 행동이 이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의 생활을 동지는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은 현실입니다. 나라가 통일되어 함께 이런 행복을 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진수동지!
더는 늙지도 마시고 앓지도 마시고 건강하세요, 가는 세월을 붙들어 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서로 만나는 날, 실 퉁구리를 풀듯 몇 밤 몇일을 새면서 회포를 나누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끝으로 동지가 바라는 모든 것들이 꼭 성취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온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멀리서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2006년 7월 26일
서울에서 혜숙 올림

서울에서 개성까지 택시로 2시간이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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