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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영희에게200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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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 명 진
영희! 지금도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지?

나는 가끔 영희 또래 아가씨들을 볼 때면 지금쯤 영희는 어떻게 변했을까, 어엿한 한 가정의 주부로, 한 남편의 아내로, 귀여운 아이들의 엄마로 변했을까, 아니면 지금의 나처럼 앞날에 대한 커다란 포부를 안고 살아가는지 등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평양시 보통강변의 아담한 아파트에서 우리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녔지.
남녀구별을 못할 정도로 철부지 유치원생 때부터 항상 함께 붙어 다녔지.
세월과 함께 우리는 자랐고 중학교 때부터인지 우리는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었지.
함께 공부했던 시절은 추억으로 남아 졸업할 때 서로가 숙제를 동생들을 통해 전달하던 그 시절이 지금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다오.

내가 김책공업대학으로 가고 영희는 평양경공업대학으로 가고…
나나 영희가 서로 남자를, 여자를 보러 다니면서 우리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었지.

영희, 지금 나는 세상을 향해 힘찬 도전을 하고 있소.

뜻밖의 상황으로 우리 가족이 평양에서 산간오지로 추방될 때 영희는 우리가족을 눈물로 배웅해 주었지.
알지도 보지도 못한 나의 할아버지의 과거 때문에 억울하게 수용소나 다름없는 곳으로 떠나올 때 나는 온 세상을 잃은 것 같았다오.

그러나 아버지 없이 우리 형제들을 피타는 노력으로 키워온 어머니를 내가 위로해드려야겠기에 애써 모든 설움을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사나이답게 대범 하려고 애쓰면서 평양에서 미련 없이 떠나왔소.

돌이켜보면 평양은 내가 탯줄을 묻은 곳이고 대학 2학년까지 나의 모든 정이 깃든 곳이 아니오. 그때 우리 어머니 눈에서는 눈물이 아닌 피고름이 흘러내렸소.
그처럼 당에 충실했고 당과 수령을 위해 한 목숨을 서슴없이 바친 아버지의 숭고한 넋과 뜻이 우리 가족의 가훈으로 여겨졌던 곳이기에 우리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소.

허나 나는 주저앉을 수 없었소. 억천 만번 죽더라도 꼭 살아서 어머님께 효도하고 이 억울한 누명을 벗은 다음 이 나라의 떳떳한 일꾼이 되리라 굳게 결심했소.

우리는 산간오지에 짐을 풀었고 다음날부터 나는 철도 선로반에서, 형님들은 농장에서 열심히 일했다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처음엔 곱지 않았지만 그들도 우리집 사연을 듣고는 자기 일처럼 아파했고 진심으로 대해 주었소.
우리는 그곳에서 조상들의 “죄”를 피타는 노력으로 보상하려고 남들이 쉴 때에도 억척같이 일했소.
평양에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던 지방 인민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전투였소.

내가 7살 때 어머니를 따라 함북도 어느 지방에 놀러 갔다가 옥수수빵을 보고 “노란 카스텔라”로 착각하고 한번 입에 물었다가  “어머니, 이 카스텔라는 왜 이렇게 맛이 없어요?” 하고 뱉어버린 적이 있는데 그날의 그 옥수수빵이 그처럼 귀한 것인지를 그때 뼈저리게 느꼈소.

영희, 영희는 굶어서, 병들어서 죽은 사람을 보았소?
난 동화 속 세계와도 같은 현실을 직접 목격하였소.
얼마나 처절한 삶의 현장인지 우리는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소.
자고 일어나면 누구는, 누구 가족은 몰래 두만강을 건너갔고 또 누구네는 가다가 붙잡혀 왔다고 하였으며 어느날에는 붙잡아 온 가족을 밧줄로 묶어 가지고 시가지를 돌게 하면서 민족반역자 들이니 증오하라고 안전원들이 선전하는 것도 보았소.
그러니 누구도 그들을 동정하지 않았고 동정할 수도 없었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우리를 당에서는 인정을 안 해 주었으며 이런 세상에서 더는 살고 싶지 않아 결국은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소.
우리 옆집 아저씨와 그들 가족과 함께 두만강 살 얼음장 속에 온몸을 던지는 순간 살아서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된다는 담보는 없지만 마지막 선택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온 가족이 한 덩어리가 되어 필사의 힘으로 헤엄쳐 중국 강변에 도착했소.

그때로부터 2년 동안 나라 없는 설움, 배고픈 고생, 시시각각으로 엄습해오는 공안의 추적과 북송의 공포 속에서 어느 하루도 발 펴고 잠을 잘 수가 없었소.
이웃들의 도움으로 중국의 내륙지방에 자리잡고 거기서 한국기업에 취직했소.
운명이란 참으로 얄궂은 것이어서 나의 형님은 끝내 거기서 북송의 올가미에 걸려 함북도로 끌려갔는데 그 후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소.

나는 주변의 선량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몽고의 열대지방으로의 도보행군을 시작했는데 탈진과 배고품 등으로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 또다시 구원의 손길을 만나 고향을 떠난지 8년만에, 그리고 북한땅을 떠난지 2년만에 대한민국의 품에 안기게 되었소.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주민등록증을 받아 쥐던 날 우리는 북받쳐 오르는 설움에 마음 놓고 실컷 울었다오.

그동안 중단했던 학업을 계속하여 나는 서울에서 일류대학을 수석(최우등)으로 졸업했으며 오늘은 중소기업의 중견간부로 자리매김을 했소.
어머니도 건강하신데 오래지 않아 칠갑(여기서는 고희라고 함)을 맞게 된다오.
어머니에게 손자, 손녀를 선물로 안겨드려야겠는데 어째서 인지 결혼이라는 그 단어는 아직도 나에겐 낮 설게만 느껴지오.
아마도 두고 온 추억들이 너무나도 가슴 저리게 남아있어서겠지.

영희. 나는 여기서 빠르게 변천하는 세계로 나가는 우리들의 꿈과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줄 몰랐소.

영희, 부디 건강하오. 영희는 항상 낙천적이고 긍정적이고 모든 면에서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미덕을 다 갖추지 않았소.

그리고 우리 꼭 만나야지. 우리 부모님들이 못다 이룬 통일염원을 우리 세대에 꼭 이루고 소원을 풀어드려야지.
그날을 위해 건강히, 더 열심히 살아나갑시다.
우리가 옛사람으로 불리 울 먼 훗날에도 부끄럼 없이 그들의 조상으로 남아있어야 하지 않겠소.

나만이 이렇게 행복하고 풍요로운 환경에 사는 것이 정말로 미안하오.
이 내 심정을 이해하여 주길 바라면서, 우리서로가 바라는 모든 일들이 기대이상으로 성취되길 기원하면서 안녕히 잘 있소.
                        서울에서 명진으로부터

61.72.5.78
덧글 1개

  유리성
님의 소원이 꼭 이루어 지길 간곡히 바랍니다...   200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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