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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김영수교수)2006/09/18
관리자

<심사평>  김영수(새조위 북한이탈주민적응지원센터 소장,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절절한 사연이 담긴 예순 두 편의 북녘고향으로 보내는 편지를 읽으며 원망했다. 이런 편지를 읽고 어떻게 심사를 하란 것이지, 심사를 맡겨준 이에 대한 작은 원망과 함께 이런 편지를 이런 방식으로 쓸 수밖에 없게 만든 북녘 땅 몇몇 인간들을 향한 큰 원망이 심사기간 내내 같이 했다.

편지를 읽다가 잠든 어느 날, 나는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꿈을 꾸었다.
하루는 안면 있는 사람이 찾아와서 2천 달러만 있으면, 배를 구해 남쪽으로 탈출할 수 있다고 꼬드기는 바람에 전 재산의 반을 주고 탈출의 날만 기다렸다. 가족들에게는 절대로 알려서는 안 된다고 해서 떠나는 날까지 괴로워하면서도 아내에게도 얘기하지 못했다. 탈출을 위해 서쪽 해안가로 잠입하던 중, 탈출을 부추기던 사람이 “탈출과정에서 혹 잡히더라도 교수선생은 우리에게 인질로 붙잡혀서 여기까지 끌려 왔다고 하면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거외다.” 탈출을 앞두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하면서 추위 속에서 깜빡 졸다보니, 탈출 무리들은 이미 배를 타고 가버린 지 오래된 듯 했다. 참담한 배신감을 느끼기도 전에 들이닥친 인민군 군관들. 저간의 상황을 듣더니 2천 달라만 주면 다른 배를 구해줄 수 있다고 한다. 또 배신당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면서도 반가운 마음에 바지 호주머니를 들치니 이미 남은 돈마저 들어 있지 않았다. 며칠 뒤, 가족들과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면서 믿었던 사람으로부터의 배신감, 아내와 자식들이 짐승처럼 끌려가는 데도 아무런 일을 할 수 없는 내 처지가 너무나 참담해 몸부림을 치다 잠을 깼다.

그 다음 날 하루 종일 우울하게 보냈다. 참담함, 배신감, 무력감이 겹친 우울증이었다. 왜 내가 북한에 억류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은 채, 편지 속에 나타난 이들의 심경이 가슴 속을 후벼 파고들었다.

이런저런 심경에 심사를 빨리 마쳐달라는 재촉에도 심사를 마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예순 두 편의 편지를 천천히 전부 읽었다. 이번에는 줄을 치면서 읽었다. 그러면서 아픔의 정도로 심사할 수 없다는 귀중한 기준을 얻었다. 대신 ‘편지다운 편지’에 비중을 두었다.

편지의 요소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북녘고향으로 보내는 편지에 어울리는 ‘편지다운 편지’에 기준을 두고 고른 후, 명금옥의 “아들에게”, 함명진의 “영희에게”, 변청일의 “그리운 어머님”을 금상, 은상, 동상으로 선정했다. 철쇄에 묶여 중국 공안에 끌려가는 아들을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의 심정과 애타는 그리움을 토해낸 편지, 어릴 때부터 같이 지내던 친구 영희에게 그간 상황과 현재의 심정을 차분하면서도 공감이 들도록 써내려간 편지, 몸져누워 계시다는 어머니에게 전하는 나이든 아들의 편지가 유달리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북녘고향으로 보내는 편지의 수신자는 생각보다 다양했다. 흩어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담은 편지와 함께 그리운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도 열 세편이나 되었다. 잊혀지지 않는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는 읽고 난 후의 잔향이 오래도록 남았다. 삼촌과 조카에 보내는 편지, 이모와 며느리에게 보내는 편지도 인상 깊었다.

정철의 “나의 둘도 없이 다정한 친우 철우에게”, 신어정의 “사랑하는 언니에게”, 강예옥의 “꿈에도 불러보는 내 친구 영희에게”, 장혜숙의 “진수동지에게 드립니다”, 이성실의 “사랑하는 동생 성숙에게”, 한예옥의 “그립고 보고싶은 정희에게”, 현철종의 “언제나 그리운 금성이에게”, 최이정의 “그리운 여동생 최숙정에게” 등도 심사대상에 포함된 편지였다. 장혜숙의 글과 최이정의 글은 독특한 형식을 띤 자서전에 가까워 퍽이나 인상 깊었으나, 편지다운 편지에 비중을 두다보니 안타깝게 밀리게 되었다.

심사를 마치면서 내년에는 이런 편지가 내 앞에 쌓이지 않기를 기도해 본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요금이 얼마가 나오더라도 한달음에 달려가서 부둥켜안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울다 죽은 원혼이라도 가득 싣고 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절절한 마음을 담아 편지로 보내준 모든 분을 심장에 새기면서 심사평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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