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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어머님께 드립니다200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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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선 숙


기약 없이 헤어져 이별한지 벌써 5년이란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2-3년이면 다시 어머님을 모시게 되리라 생각하고 떠난 이 몸, 이렇게 멀고 험한 길이 어머님과 나 사이에 가로 놓일 줄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보고싶은 어머님,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모진 세월 속에서 끼니는 어떻게 챙기시고 연탄이나 화목은 또 무슨 돈으로 사서 추운 겨울을 보내시고 계신지 걱정만 태산같이 쌓입니다.

그리운 어머님, 자나깨나 자식들의 끼니를 위해 풀을 뜯고 산길을 넘나드시던 모습이 눈에 밟혀 길을 걸을 수도 편하게 잠자리에 누울 수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님, 생각해보면 제가 어머님께 이렇게 서신을 전하게 된 것도 천만다행으로 여겨집니다.

저는 북한을 탈출하기 위해 한달 남짓한 기간을 매일매일 걸어 두만강연안으로 향했습니다. 갈수록 보위원과 보안원들의 감시는 더 심해졌고 때로는 언제 잡혀 죽을지도 모르는 쫓김을 당하면서 뒤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를 들으며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두만강을 건널 때에는 앞도 안 보이는 캄캄한 밤에 키를 넘는 강을 헤엄치며 죽을 힘을 다해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온갖 죽을 고비를 많이도 넘겼지만 하늘의 도움으로 저희는 무사히 중국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몸은 못 가눌 정도로 허약해 있었고 탈북자들을 단속하는 공안원들을 피해 다니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집에 들여놓기를 꺼려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고맙게도 마음 착한 조선족 동포의 도움으로 기운을 차릴 수 있게 되었고 농촌마을을 전전하며 일을 해주고 먹을 것을 얻어먹으면서 살길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던 중 탈북자들을 도와주는 고마운 분들을 마나 무사히 여기 대한민국까지 오게 되었고 지금은 어머님께 편지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운 어머님 생각나세요?
원산에서 살 때 외국에서 들여온 옥수수를 실어나르는 차에 매달려 식량을 흘리게 하여 포장도 안된 도로에 떨어진 것을 쓸어모아 집으로 가져왔을 때 옥수수보다 돌이 더 많다고 하시면서 그나마 끼니를 이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다시는 굶더라도 위험한 식량 구하기는 그만두라고 간곡히 만류하셨죠. 식량을 조금이나마 얻겠다고 차에 매달렸다가 군인의 총탁에 손을 맞아 몹시 저리고 아팠으나 어머님께는 숨기고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 쳤던 일이 엊그제 같습니다. 배급도 안준지가 오래되어 어머님께서는 식량을 구하러 산과 들 그 어디인들 안 가본데가 없었고 산나물로만 끼니를 대신하다 보니 온몸이 부어 눈을 뜰 수가 없었지요.

보고싶은 어머님. 어떻게 지내십니까?
저를 생각하시며 매일 울고 불고 하시고 생의 의욕을 잃을 까봐 제일 근심이 됩니다. 저마저 떠난 썰렁한 집, 난방도 안되어 냉기만 감도는 방에서 행여 어제나 오늘이나 저를 기다리실 어머님을 생각하면 마음은 저리고 피는 타서 재가 됩니다.

지금도 어머님 얼굴이 떠올라 눈물이 앞을 가려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누가 어머님께 맹물이라도 떠다 드릴 사람이 있다면 제 마음이 이렇게 괴롭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이렇게 어머님을 떠나 온 것도 죄스러운 마음인데 남한으로 온 저로 인하여 국가로부터 어머님께서 받을 불이익을 생각하면 더더욱 가슴이 미여집니다. 온갖 고통을 다 받고 계실 어머님을 생각하면 너무너무  죄송한 마음 금할길이 없습니다

언제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꿈속에서 그리운 어머님과 만나 반가움과 기쁨에 젖어 우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는 숨죽은 공장과 신음하는 고향마을을 멀리 떠나면서 슬피 울었고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인데 마음속에서 조차 지울 수가 없었으며 미련이 남아있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운 어머님, 저는 남한에 와서야 자유가 없고 온갖 감시와 멸시 속에서 살던 북한에서의 삶이 얼마나 어리석고 괴롭고 힘든 것 이였는지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님께서 계시고 제가 살던 집이 있기에 가고 싶고 보고싶고 그리운 고향입니다. 더욱이 어머님이 저를 기다리는 고향이기에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머님, 억척스럽게 살아만 주십시오.
이 딸을 위해서라도 살아만 주시면 언젠가는 만남이 이루어 질 거라 믿습니다. 이곳 남한에서는 그 옛날 헤어진 가족들도 모두 서로 찾고 지어는 외국에 입양된 자식들까지 찾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헤어져 애타게 그리워만 하며 괴로워하고 있으니 어떻게 마음을 달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어머님의 고생을 덜어 들릴 수 있을까 하고 항상 고민하고 생각하군 합니다. 어머님을 생각하며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저의 노력이 실현되리라 믿습니다.

비록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곳에 떨어져 살고 있지만 저에게는 어머님께서 살아계신 것 만으로도 힘이 되고 마음의 위로가 됩니다. 하고 싶은 말 많고 많지만 다음에는 서로 만나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평생 헤어지지 말고 오래오래 같이 살고 싶습니다. 만나는 그날까지 어머님의 귀하신 몸 언제나 잘 돌보시고 건강 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두 손 모아 빕니다.
만나는 그날까지 부디 건강 하십시오.
2006년 6월 14일 서울에서 어머님의 사랑하는 딸
선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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