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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보내는 편지200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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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금 옥


옥금아, 그동안 잘있었니? 우리가 벌써 헤어진지도 십년이 가까워오는구나.

95년도에 너의 동생이랑 같이 밀수를 할 때는 하루하루 목숨을 견지하기위해 장사를 다녔지만  수해때문에 두만강을 건너지 못하고 중국에 머물러서 살자고 생각을 하고부터는 나의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다는 아픔도 있었지.하지만 그때의 그 곤난이 없었으면 여기 한국에도 오지 못하지 않았을까 하고도 생각을 한다만 중국에서의 생활은 영원토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을거야. 나는 그때 왕청이라는 데 가서 살게 되였는데 너의 동생 옥순이는 한족과 살게 되였단다.
너무나도 쓰라린 현실을 체험한 나는 도저히 이사실을 말할 수 가 없어서 이렇게 글로 쓴다.

나는 조선사람과 살면서 북한에서의 고생보다는 나은 생활을 하였지만 너의 동생은 한족과 살면서 인간으로서는 당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이세상을 떠나게 되였단다.  옥순이가 당한 고통. 생죽음을 당하면서도 <쎄쎄니 > 하고 숨지던 모습은 한없이 진실하고 순진하고 착한 북한의 여성의 모습의 전부였고  그를 죽인 신랑은 야만이기도 하고 바보이기도 하고 어쩌면 인간이라는 모습이 전혀 없는 짐승의 탈을 쓴 놈이기도 하였다.

옥순이는 우리 동네에 처음 시집을 와서 부지런히 일을 하였고 겨울에는 산에 가서 통나무를 해다가 목도로 질질 끌고 오기도 하고 나무를 혼자서 패면서 하여튼 일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그때 우리들은 그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일도 잘하고 말도 잘하고  똑똑하고 정말 앞으로 잘 살 줄 알았지.  그런데 그의 한족 신랑은 같이 살기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매일 마작을 놀러 다니고 집안산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머저리였어. 옥순이는 하여튼 마음씨도 착하고  남의 일도 잘 도와주곤 해서 동네에서 한족 사람들까지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

그런데 후에 그의 집에 놀려 가 보았는데 옥순이가 너무나 약해져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신랑이 매일 밤마다 마작을 놀러 갔다가 새벽에 들어오니까  신랑이 온 다음 저녁을 먹겠다고 기다리다가는 그대로 잠을 자군 해서 영양실조 가 온 거라고 하더라. 우리가 너무 분해서 막 욕을 했지. 저녁 9시만 되면 혼자서라도 저녁을 먹고 자라고,

그러던 중 옥순이가 임신이 됐거든 ,그때부터 그는 허리를 쓰지 못하고 벌벌 기어 다니며 기침도 세게 하고 앓기 시작했어. 자기 말로는 언니네 집에서 나무를 해오다가 오봉산에서 무산장마당가지 져 날라다 팔곤 했다는데 임신에다가 영양까지 부족하니 생긴병이였어. 그 집 친척들도 신랑보고 병원에 데려 가라고 하는데 그 사람은 돈이 아깝다고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어,. 우리가 막 뭐라 했지, 너 혼자라도 병원에 가서 약을 타먹으라고…  그런데도 옥순이는 뭐라는 줄 알어? "내가 병원에 가면 돈이 많이 나가는 데 병원 안가도 돼요. 민들레 많이 캐 먹으면 몸에 좋대요 " 하면서 매일 밭에 가서 민들레나 한 양재기씩 캐 오군 하였어. 그때 그는 옷을 벗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었어. 왜냐하면 기침을 할 때마다 오줌이 나와서 그런대. 걸레를 엉덩이에다 깔고 옷은 쫄딱 벗고 이불만 뒤집어쓰고 심한 기침을 하고 있었거든.

임신 8개월 만에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애기를 낳게 되였는데 우리는 그때 몰랐지. 다음날에야 알았는데  동네에서 하는 말이 그 전날에 한족신랑이 밖으로 문을 걸로 창문으로 해서 집안으로 들어가서 집안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하고 애기를 자기가 뽑았대. 애기가 꺼꾸로 나오는데 병원에다 알릴 생각은 하지않고 병원에 가면 병원비가 많이 나온다면서 집에서 해산 방조를 자기가 한거야. 애기는 나와서 3시간 만에 죽고 옥순이는 3일 만에 죽고 말았어. 너무나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병문안도 못 가보고 애기를 낳았다는 소리를 듣고도 우리는 가보지 못하였어.

그가 죽을 줄 누가 알았겠니. 펀펀하던 옥순이가 죽을 줄은 상상도 못했으므로 우리는 몇일 있다가 병문안을 가자고 했는데 다음다음날에 또 애기엄마도 죽었대 하고 소문이 나더구나. 아침에 그 소리를 듣고 허둥지둥 달려가 보니 동네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한족들도 눈물을 흘리며 서있더구나. 그리고 경찰에서 올까 봐 그 한족남지는 시체를 사과상자에 넣어서 자기 밭에 몰래 파묻었대.

그런데 누가 나서서 시체를 보여 달라 , 왜 죽였느냐 , 왜 병원에는 가지 않았느냐 하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거야. 동네에서는 분해도 북한 사람이라 신고도 못하고 있더구나. 그때 우리 동네에 북한 여성 여섯명이 있었는데  옥순이의 죽음을 두고 5명이 울기도 많이 울었어, 한족남자를 욕도 해보고 한탄도 많이 하였지. 이렇게 죽을 바에는 북한에서 굶어서 죽을 것이지 왜 이 먼 타향에서 죽느냐고, 우리 애원하는 말들을 많이 하였지.

대북구에서 일어난 이사실은 그 후 왕청현에 순식간에 퍼져 한동안은 큰 화제 거리였거든. 나는 그때 나라 없는 백성은 상가 집 개만 못하다는 말뜻을 뼈저리게 느꼈어. 마치도 내가 당한 것 같은 느낌이였어. 같은 북한 사람이 당한 일이라  그때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영원히 그때 그 설움을 잊지 않고 북한의 통치자들을 증오할 것이다. 한 사람의 통치자를 위해서 온 나라, 온 백성이 굶고 타향살이를 하고 잡혀가고 감옥살이를 하고  죄없는 사람들이 이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분이 치밀어 올라 참을 수가 없어.

너희들도 빨리 세계를 알고 북한의 정치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를 위해 투쟁을 해야 하는데  이런 소리를 들으면 믿지 않겠지. 역사는 속이지 못한다. 통치자를 잘 못 만나 타향살이 .감옥살이, 배고픈 생활 , 등 짐승보다 못한 생활을 강요 당하고 중국 땅에서 소리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원한은 하늘땅에 사무칠 것이다.

지금 와서 들어보면 내가 체험한 옥순이의 죽음도 끔찍한데 죽어서도 묻힐 땅이 없어서 고생하는 사람들도 있더구나.  앞으로 이 편지를 받게 되면 꼭 왕청현 대북구촌을 명심해서 기억했다가 한번쯤 동생묘지를 찾아가 보아라. 얼마나 불쌍하니. 27살 청춘의 나이에 자기를 죽음으로 내몬 중국사람한테 고맙다는 말까지 남기고 죽은 그가 얼마나 불쌍하냐. 북한에 있는 언니가 동생이랑 같이 있을 때 좀 잘 해주었으면 중국에 오지 않을 수 도 있었잖아. 옥순이 말로는 언니네 집에 있는 게 눈치가 보여서 중국에 왔다던데 부모 없이 외로운 인생인데다가 언니까지 떨어져서 이역 땅에서 생죽음 을 당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야.  인물도 얼마나 귀엽게 생겼는데…그때 우리 동네에서는 치를 떨면서 그 한족이 다시는 장가 못 가게 하겠다고 야단을 피웠다. 

 그 일이 있은 후 1년 만에 우리는 광주에 왔고 또 1년 후에는 한국 행에 성공하였는데 매일 생각나는 게 옥순이 일이야. 어떻게 하면 복수를 하고 죽은 이 위로를 해드리고. 중국에서 다시는 탈북자들을 잡지 않도록 하겠는지 나로서는 힘이 없고 방도도 없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간절해.

꼭 이 사실은 세상에 알려서 언니가 동생을 찾았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억울하게 죽은 옥순이도 편한 마음으로 저 세상 갈 것 같은데... 하고 싶은 말은 많고 많은데  편지로 하는 말이라 조금은 망설이게 되는구나. 가라앉힌 마음이니까 이 정도지 실지 너를 만나서 이 사실을 전한다면 김정일과 한족놈들에 대한 증오로 나는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되어 버릴거야. 나는 친척이 아닌 다만 북한 사람이라는 점에서도 이렇게 분한데 언니로서 너는 이사실을 들으면 아마 나보다 더 분할 거야.

우리 함께 옥순이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꼭 북한이 자유를 찾고 빨리 개방이 되서 백성이 마음껏 살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함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오늘 편지를 이만 쓰련다. 순서 없이 막 썼지만 이해를 하면서 읽어다오, 통일의 날 우리 만나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자.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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