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 66, page : 1 / 4, connect : 0
: 전체 : 2004년 (28) : 2005년 (54) : 2006년 (66) : 2007년 (70) : 2008년 (51) : 2009년 (38) : 2010년 (39) :
사무치게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께 드립니다2006/09/08
center

                                                                                                                                    김 영 은


아버지, 어머니, 저는 오늘 서울의 어느 한 유명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제 지금까지의 생에 그렇게 기쁜 날이 며칠 안 되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행복한 이 시각 웃음대신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 것은 왜서일까요? 아마 그렇게 열망하던 배움에 대한 소원의 성취에  앞서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와 오늘의 이 기쁨을 함께 하지 못하는 비통함과 아쉬움 때문일거라 생각됩니다.

아버지, 어머니, 저 먼 하늘나라에서 만 시름 놓으시고 편히 잠들고 계신지요? 지금 이 시각 부모님이 못 견디게 그리워 소리쳐 불러봅니다. “아버지, 어머니, 저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축복해주십시오.” 라고 말입니다.  한편으론  환희로운 오늘에 이르기까지 겪은 지나온 저의 참담했던 삶을 자서전처럼 엮어 아버지와 어머니께 아뢰고 싶은 충동 또한 금할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함경남도 회령에서 낳으셨지요. 깨끗하고 강직한 마음 변치 말라고 이름도 정심이라 지어주셨고요. 9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홀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면서 너무 일찍이 가혹한 세상살이에 부대끼는 이 딸이 불쌍해 어머니는 늘 가슴을 치곤 하셨지요. 전 사실 인민학교를 졸업하고 고등중학교에 입학 했을 때까지만 하여도 세상이 이처럼 불평등하고 혹독한 줄 미처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그때 딸의 작은 배 하나 채워주지 못하는 게 너무 가슴 아파 시장에서 밀가루 장사를 시작하셨지요. 바람 세찬 함경도에서 밀가루 장사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무거운 밀가루포대를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시장에 내다 팔고 또 밀가루를 넘겨받으러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걸음을 하시였으며 추운 겨울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는 밀가루가 날아 갈가봐 온몸이 그대로 덮개가 되어 지켜내곤 하셨지요. 그러면 어머니는 온몸에 흰 밀가루를 뒤집어 써 어느 것이 육체이고 어느 것이 물체인지 구별조차 할 수가 없었으니 그야말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모든 걸 깡그리 다 바치신 어머니의 피타는 노력은   뜨거운 모성애의 절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철없는 저는 매일 옥수수밥이 싫다고 투정 부리고 밀가루 부침을 해달라고 수십 번 졸라댔으니 하나 밖에 없는 딸에게 부침개 하나 제대로 못 먹이는 어머니의 심정인들 오죽했겠습니까. 그렇게 애쓰시던 어머니는 끝내 고난의 행군시기 결핵이라는 병을 만나 하던 장사도 접으시고 빚더미 위에 앉게 되셨지요. 매일같이 집에 들이닥쳐 빚을 갚으라고 으르렁대며 가산을 털어가던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칩니다. 이미 기울어진 가정 형편은 어머니에게 단 한번의 치료기회도 주지 않았으며 어머니는 결국 험악한 천지에 의지가지할데 없는 저를 홀로 남겨두고 세상을 뜨셨지요.

외로이 남겨진 저는 살길이 막막하여 외삼촌집을 찾아갔으나 삼촌어머니는 “우리도 살기 힘드니 어떻게 하든 평양에 가보아라.”하면서 돈 200원을 손에 쥐여 주셨어요. 그 시절 200원(한국 돈 2000원정도)이 저에겐 정말 큰 돈이었습니다. 그 돈을 꼭 움켜쥐고 평양 행 열차의 발판에 쪼그리고 앉아 5일만에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열차에서 빠져 나와 역사에 들어오니 우리 고장의 회령역 보다는 조금 나은듯했으나 굶주리고 맥 빠진 사람들이 남루한 옷을 걸치고 긴 의자에 질서 없이 누워있기는 매 한가지었습니다. 12월의 쌀쌀한 날씨에 저는 여름옷차림으로 거리에 나서 사람들에게 동냥과 구걸의 손길을 뻗쳤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을 찾아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먹을 것, 입을 것이 막 넘쳐 나는 외화상점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 저에겐 모든 게 황홀했고 그곳의 일부만이라도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있어 보이는 아저씨 곁에 가서 돈을 감쪽같이 훔쳤지요. 어릴 때부터 시장을 전전긍긍하면서 배운 솜씨가 도움이 되였던 것 같습니다. 상점밖에  나와 돈을 세어보니 외화와 바꾼 돈50원이었어요.(한국 돈2만5천원정도) 저는 그 돈으로 빵과 음료수를 사 들고 평양역사 안으로 들어가 맛나게 먹었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음식다운 음식을 먹어보니 온 천지를 얻은 것 마냥 기뻤지요. 그러나 저의 이런 행동은 오래 가질 못하였습니다.

그 후 상점에 들어가 또 소매치기를 하다 들켜 매만 실컷 맞고 안전부에 잡혀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저는 소년 교화소로 보내져 하루 종일 조직생활과 위대성 학습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그게 너무 싫어 밤에 몰래 도망하여 평양시를 돌아다니며 주워 먹고 훔쳐 먹고 하면서 도둑고양이처럼 한 달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1996년 대한의 엄혹한 추위에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했던 저는 버스 정류장에서 추위에 떨다 지쳐 잠이 들어 버렸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아늑한 집의 두툼한 이불에 싸여 있었습니다. 시장에 가면서 쓰러진 저를 보신 한 어머니가 돌아 올 때까지도  누워있는 제가 가여워 한지에서 얼어죽을가봐  자기 집에 옮겨 언 몸을 녹여주고 경기를 하자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을 청해 치료까지 해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고마운 어머니는 저를 집에서 재워주고 먹여주었으며 불쌍한 저를 양딸로 받아 주셨어요. 양아버지는 제가  병원에서 체계적인 검진과 필요한 치료를 잘 받도록 해주셨고 키가 작다고 키 크는 약과 여러 가지 보약까지 챙겨주시면서 친자식처럼 잘 돌봐주셨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아시다싶이 어릴 때부터 체격이 작았던 저는 13살이 되여서도 키가137cm밖에 되지 않았고 죽만 겨우 먹고 지내다 보니 배만 불룩하게 나와 있었고 만성간염까지 앓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의사 선생님들은 전형적인 영양실조라고 하시더군요. 그분들에게는 친 아들 2명이 있었는데 아들들에게 저를 업신여기면 안 된다고 늘 얘기하셨고 중퇴한 학교공부도 하게 해주셨어요.

각박한 이 세상에 인심 좋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에 사뭇 놀라면서도  너무 철이 없었던 저는 양아버지 양어머니의 사랑을 끝내 배신하고야 말았습니다. 저는 학교에 안가고 양아버지의 지갑에서 돈을 훔쳐내 불량한 남학생들과 어울리면서 일주일동안 무위도식 하였습니다. 결국 이일로 저는 양부모님과 더는 함께 살 수 없었으며 다시 고향에 내려가게 되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굴러온 복을 스스로 차버리는 미친 행동이었지요. 그처럼 고마우신 분들께 끼친 죄가 지금도 비수처럼 박혀 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저는 그 후 절도와 소매치기로도 살 수 없고 선의와 양심만으로는 더더욱 살 수 없는 고향을 등지고 친구와 함께 두만강을 건너 북한과 중국에서의 고달픈 인생살이에 종지부를 찍고 희망의 땅, 참 삶의 현장 대한민국에 왔습니다. 저는 비로소 여기 대한민국에 와서야 과거를 뒤돌아볼 여유를 갖게 되고 몸도 마음도 정신도 새롭게 탄생시킬 의지를 가다듬는 여유도 갖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의 자유가 한꺼번에 찾아오니 욕망 또한 무섭게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래서 컴퓨터와 외국어 학원을 비롯한 여러 학원에서 정말 열심히 배웠지요. 이때 전 인간의 진정한 열정이 훌륭한 환경 속에서는 그 한계가 없다는 것을 진리로 체득했습니다. 발전된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더불어 살면서 모르고서는, 노력하지 않고서는 명예도 부도 그 무엇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늦게나마  가슴 저리게 체험한 저이기에 언제나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 이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리라는 것이 저의 굳은 결심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오늘은 정말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네요.
마음속으로 세운 성공의 다음목표를 달성한 다음 또 편지를 쓰겠습니다.  이 딸의 성공적인 미래를 변함없이 축복해주실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이 늘 저를 앞으로 재촉하고 있어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도약의 발판을 위해 뛰고 또 뛸 것입니다.

사무치게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 부디 온갖 시름 다 잊으시고 평안 속에 계십시오.
아버지, 어머니의 영전에 삼가 큰절을 올립니다.
                                            
                                   멀리 남쪽에서 부모님을 그리며 영은 올림

                                       2006. 8. 24





61.72.78.132
덧글 개


200

 [2006년] 항상 보고싶은 그리운 친구 성민에게

center

2006/09/08

10598

199

 [2006년] 항상 보고싶은 그리운 어머님께

center

2006/09/08

10437

217

 [2006년] 편지를 읽으면서.... 2

유리성

2006/09/21

11034

192

 [2006년]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center

2006/09/01

11190

224

 [2006년] 진수동지에게 드립니다.

center

2006/09/01

11454

185

 [2006년] 존경하는 오빠께 드립니다

center

2006/09/01

10161

212

 [2006년] 존경하는 어머님께 드립니다.

center

2006/09/14

10639

187

 [2006년] 존경하는 선생님께 올립니다

center

2006/09/01

10342

201

 [2006년] 이북에 살고 있는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

center

2006/09/08

10220

205

 [2006년] 언제나 보고싶은 친우에게

center

2006/09/08

10156

223

 [2006년] 언제나 그리운 금성이 에게

center

2006/09/01

10885

211

 [2006년] 언니 살아서 꼭 만나요

center

2006/09/14

11206

229

 [2006년] 심사평 (김영수교수)

관리자

2006/09/18

11122

230

 [2006년] 서 평 (정문권 교수)

center

2006/09/11

11174

198

 [2006년] 사무치게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께 드립니다

center

2006/09/08

10408

197

 [2006년] 사랑하는 할머니께

center

2006/09/08

10288

184

 [2006년] 사랑하는 조카 선을 그리며

center

2006/09/01

10908

222

 [2006년] 사랑하는 언니에게

center

2006/09/01

10925

196

 [2006년] 사랑하는 어머니

center

2006/09/08

10336

204

 [2006년] 사랑하는 아들 철주 보아라

center

2006/09/08

11390
  1 [2][3][4] 
Copyright 1999-2023 Zero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