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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치 사연2007/10/12
관리자

까마치 사연

 박성희


  나는 포기를 몰랐던 한 남자와 요란한 축복도 없이 화려한 꽃다발도 없이 결혼을 하여 수수한 가정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때 그 시절은 눈부시게 빛나는 한때였고 평생을 같이 살자고 약속하였던 사람이어서 아마 이 세상의 사랑은 나 혼자만이 독차지 하는 듯 마음은 날을 듯이 가볍기만 했다. 불면 날아갈까, 쥐면 깨어질까 하였던 그 시절, 고난의 행군이 닥쳐오기 시작했다.


 죽자 살자하던 우리의 사랑도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싸늘히 허물어지기 시작하였다. 굶주림은 죄도 없는 우리가족의 서로간의 사랑마저 사정없이 빼앗아갔다. 늘 밥상에는 죽 한 그릇, 그리고 도토리 된장이 전부였다. 7살난 철없는 애가 아버지 죽 그릇에 손을 대었던 어느 날 저녁, 죽도록 맞는 참상이 빚어졌다. 내가 아이 편을 든다고 점차 가정싸움으로 번지고 말았다. 하지만 누굴 탓하랴...


  자그마한 애를 두고 그 배를 채워주지 못하는 죄책감, 오히려 부모구실을 못하는 나 자신이 얄미웠다. 배고픔의 유혹은 철없는 애들을 인정사정없이 부패의 길로 부르고 있었다. 장사를 하자고 꿔온 돈 1,500원 중에서 100원짜리 한 장을 들고 나가 빵과 바꾸어 먹고 장사 밑천도 가만히 훔쳐내곤 하였다. 단란한 가정, 행복한 생활, 존경하는 선생님이 가르쳐 주던 도덕생활은 굶주림 때문에 본의 아니게 험악한 부패의 길로 인정사정없이 회오리바람으로 휘몰아 갔다. 우리 가정도 다른 집들에서도 하나, 둘 가정이 파손되기 시작했다.


  굶주림은 교단에서 미래를 키우는 교사도, 박사, 학사도 인생의 삶을 포기하게 하였다. 주체사상이 순진한 인민을 억류하고 사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역사도, 시대적 추세도 모르는 문맹자들은 <고난의 행군> 암흑한 시련 앞에 결국 흙으로 싸늘한 시체로 시들어갔다.


  내가 살던 고향에는 건설부대 군대들이 많았다. 내가 겨우겨우 가정생활을 하고 있을 때 어쩌다 밑천을 마련하여 두부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나에게 아픈 추억의 한 토막으로 남아 늘 마음에 걸리곤 한다. 무거운 망들을 굴려 두부를 파는데도 차려지는 것은 오직 비지밥과 도토리 된장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 뜻밖에 군대 병사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내용인즉 새 겨울신을 가지고 와서 한 끼만 배불리 먹여달라고, 그러면 원이 없겠다는 것이었다. 겨울신을 비지밥 한 그릇과 바꾸다니, 얼마나 배고팠으면 쩡쩡 얼어붙은 겨울 추위를 가리지 않고 오직 배불리 한 끼만 먹여달라고 하겠는가? 나는 가슴이 미어졌지만 그래도 그 동화를 받아야만 했다. 왜냐하면 나도 살기 힘들었기 때문에... 나는 집에서 헌 동화를 찾아내어 주고는 새신을 받아 600원에 팔아서 또 장사 밑천을 마련했다. 그리고 떠나보내면서 좋은 밥은 아니지만 비지밥이라도 주겠으니 혼자서 배고플 때면 오라고 하였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우리가정도 파산되었으니 결국 그 병사를 다시는 영원히 볼 수 없었다. 긴 긴 겨울 얼마나 발이 시렸을까. 그리고 한 시골 아낙네를 얼마나 원망하였을까?


  지금도 나의 기억 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아픈 추억을 더듬어 보면 나도 몰래 눈시울이 뜨겁기만 하다. 부모들은 자식을 애지중지 키워 휘훈의 길로 떠나보내며 돌아올 땐 영웅되어 오라고 부탁하지만 오히려 군대에 나가 병마에 시달리고 허약해지고 또 한줌의 흙이 된 이 나라 아들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난 현실에서 목격하였다.

 

 가슴에 피멍이 든 사연이 또 한가기가 있다. 내가 일하는 작업반에는 주옥희라는 분조장이 있었다. 그는 작업반에서 늘 당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정도였다. 내가 일하는 소속 분조장이였는데 어느 날 하염없이 밭머리에 앉아 울고 있었다. 너무 슬피 울어 이유를 물을 수도 없었고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후에 안 사연이지만 가슴 아픈 일이 있었던 것이다. 아들과 같이 있던 본가집 아버지가 얼굴이 퉁퉁 부어 주옥희 언니집에 온 것이었다. 너무도 끔찍해서 딸은 아버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참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 그래서 언니가 그날 밭머리에 앉아 소리 없이 울었구나, 나는 뒤늦게 알게 되었다. 너무 배고파 손녀의 손에 있는 시래기 까마치를 절반 떼어 먹었다고 아들이 뻰지를 들고 와서 아버지 어금니를 뽑았다는 것이었다. 실컷 맞고 생이빨까지 뺏기고 결국 쫓겨나 딸집에 왔던 것이다. 그 세월은, 날이 갈수록 어느 집이나 할 것 없이 가슴에 피멍이 든 사연들이 가득했다.


  이런 끔찍한 현실 앞에 나는 가정을 포기하고 탈북의 길에 오르지 않으면 안 되였다. 아무리 조선에서 100m 달리기해도 도무지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나를 위해 자식을 위해 삶의 생존에 서슴없이 뛰어들었다. 어찌할 수 없었던 혹독한 굶주림이 나를 본의 아니게 두만강 물에 뛰어들게 했고 그 길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난 뒤늦게 깨달았다. 두고 온 고향, 사랑하는 이웃들을 뒤돌아볼 새 없이 총성이 울부짖는 두만강 연선에 매복해 있다가 마침내 눈물 젖은 두만강을 넘어 사선을 헤치고 헤치며 달려온 길. 그 길이 오늘 대한민국 내가 사는 제 2의 고향이었다.


  자나 깨나 한시도 잊어본 적 없는 내 아들. 이 몸이 돗대라도 되면 파도를 헤쳐 가련만 마음뿐이다. 언제면 만나랴 그리운 내 아들. 사랑하는 내 아들. 아들아 부디 어머니 심정을 이해하여다오. 비록 지금은 내가 어머니다운 어머니가 아니라고 하지만 난 자나 깨나 한시도 너를 잊은 적 없다. 너와 나의 생이별은 다 썩고 병든 북한체제 때문이라는 것을 알 때가 꼭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 와서 처음으로 검진하니 쌓였던 병이 결국 간경화 황달로 진단을 받게 되었다. 이것도 다 북한에서 내가 굶주리고 기아와 빈궁에 허덕이면서 생긴 병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우리의 행복한 가정생활도 북한의 식량전선 고난의 행군으로부터 박살이 났으니 이 책임은 과연 조선당국에서 보상할 수 있느냐고 울분을 토하고 싶다. 병과의 싸움을 이겨내면서 난 지금 대한민국에서 삶의 생존을 위해 도전해서 앞으로 부자가 되길 원하며, 내가 걸어온 길과 우리가 북한정치에 어떻게 속고 살았다는 것을 그들에게 인식시켜 주고 싶은 마음이 전부이다. 아픈 마음 달랠 길 없이 고향사람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히 떠오를 때면 그들에게 보다 문명한 생활이 펼쳐져있는 이 사회를 자랑하고 싶다.

  꼭 그날이 오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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