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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정말 보고 싶습니다2007/10/12
관리자

어머니! 정말 보고 싶습니다 

유창준


  어머니! 안녕하세요? 세상에 나서 아직 단 한번도 뵌 적 없는 어머니를 직접 찾아뵙지 못하고 이렇게 버릇없이 편지로 문안드릴 수밖에 없는 불효막심한 자식을 용서하세요.


  어머니! 제가 자식들 중에 막내이겠죠. 어머니는 아이들의 이름을 무엇으로 기억하고 계신가요? 어머니가 나름대로 기억하고 계실 저의 그 이름을 저는 알 수 없잖아요. 그러니 이제부터 절 육칠이라 불러주세요. 제 이름을 뭐라 기억하시는지 몰라도 절 낳으신 날 6월 7일은 잊지 않고 계시겠죠. 그래 제 나름대로 자칭한 이름인데 우리 모자사이에서만 이렇게 부르기로 하죠. 꼭 39년 만에 편지를 통하여 처음 찾아가는 이 아들의 생일이 세월의 연륜과 더불어 희미해진 어머니의 옛 기억을 되살리는 불씨와도 같은 것이 되어주길 바라는 저의 소박한 맘도 담은 이름이라 할까요.


  진작 어머니의 행처를 알면서도 선뜻 찾아뵙지 못한 이 불효자식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제가 처음으로 저의 출신에 대하여 알게 된 것은 제가 6살 나던 해의 겨울 어느 날 이었어요. 아마 2~3월경이었다고 생각되는데요. 그 전날 눈이 많이 왔던 걸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네요. 그날 제가 입양되어 살고 있던 집에서 또 여자애를 입양하여 저에게 여동생이 생겼어요. 양모가 애기를 업고 털실로 애기 모자를 뜨고 있었는데 외할머니는 부엌에서 불을 때고 있었고 저는 가마 목에 앉아 있었지요. 양모와 외할머니 사이 오랜 침묵 끝에 외할머니가 먼저 입을 여시었는데 “이미 하나 자래 우는 것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또 어찌 하나 더 키우겠냐?”라는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딱 듣는 순간, 대뜸 아! 나도 이렇게 입양되었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면서 철부지 어린 맘에도 눈물이 왈칵 쏟아져 어른들에게 민망한 꼴을 보일 것 같아 밖에 나와 버리고 말았어요. 그리고는 양우리에 들어가 혼자 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어요. 정말 어린 맘에도 얼마나 서럽던지. 아마 어른들은 겨우 6살짜리가 설마 알아듣겠냐 싶어 내놓고 이야기 한 것인데 상상외로 제가 눈치 챈 거였죠. 원래 저 같은 처지의 애들은 다른 애들보다 일찍 철이 드나 봐요.


  이렇게 6살적에 벌써 자신의 내력을 알게 되면서 그 당시 나는 왜 낳아준 엄마품을 떠나 남의 집에 입양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고, 점차 나이가 들어 원래 양부모 사이에 자식이 없어 양자를 들이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러다보니 그 사이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고민도 엄청 많았죠. 그러면서 날 버린 어머니를 얼마나 원망하였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 후 철이 들면서 어머니에 대해 조금씩 이해할 것 같았어요. 어머니가 절 미워서 남의 집에 입양시켰던 것은 더욱 아니잖아요. 본래 어느 사회에서나 사생아의 운명이 기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권의 불모지인 당시 북한사회에선 생모이면서도 양육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남의 집에 양자로 줄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되면서 그때 어머니가 절 남의 집에 입양시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또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어요.


  그래도 전 괜찮은 집에 입양되어 장가들 때까지는 그만하면 호강하고 살았다 해도 과언은 아니지요. 그 시절엔 양모가 저에게 너무 잘해주었기 때문에 몰래 한번 어머니를 만날 수도 있었지만 그러는 것이 정말 오로지 우리 오누이를 친자식 이상으로 애지중지 하며 살아가는 양모에게는 상처를 주는 것이기에 포기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저 기회가 오길 기다려야 했지요. 그런데 기나긴 그 기다림 속에 기회를 영원히 놓칠 줄 누가 알았나요?


  사실 저 중국에 사는 7년 동안 북한에 있을 때 어머니를 찾아뵙지 못한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 혹 한국에라도 가면 영영 못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된 것 아닌지 모르겠네요. 제가 지금 대한민국에 왔으니 말이에요. 그러니 인젠 만날 기회가 거의 없는 거나 같죠. 우린 결국 현대판 이산가족이 된 거죠.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만난 적이라도 있으니 괜찮은 편이지만 우린 만나지도 못하고 이별만 거듭하고 있으니 후회막급이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요. 다 제 탓이에요. 북에 있을 때 단 한번만 이라고 찾아뵈었더라면 이런 후회는 없었을 것 아닌가요.


  옛날부터 화는 쌍으로 온다더니 90년대 중엽 저의 결혼에 뒤이은 양모의 병사와 날로 더해만 가는 식량사정의 악화, 양모의 사망으로 인한 집안의 내부갈등으로 말미암아 그때 북한의 대부분 사람들이 다 겪은 굶주림 외에 정신적, 심리적인 타격까지 겹쳐 그 고충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어요. 양모가 사망한 뒤 집안은 사분오열 되어가기 시작했어요. 양부와 그리고 우리 오누이 결국은 피한방울 안 섞인 순수 남남이 아닌가요? 그동안은 양모가 구심점이 되어주었는데 인젠 구심점이 없으니 제각기 제 이속만 챙기려 들었어요.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여동생 시집보내는 날, 지금 한국에서 이야기하면 사람 웃기는 일 같습니다만 평양이모가 집에 남아있는 가전 몇 가지와 그릇가지들을 탐내 동네사람들과 새 사돈될 사람들까지 규합하여 저는 완전히 고립된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그 마당에 이미 새 부인을 맞아 집을 나간 양부까지 그에 편승하여 제가 살고 있는 집을 팔아버리겠다는 거예요.


  참 다행인 것이 세상에 나 자신과 그림자뿐인 저에게 그래도 끌끌한 친구들이 있었던 거예요. 저는 어릴 적부터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고 의리를 소중히 여겨왔어요. 결국은 그 친구들 덕에 저를 지켜낼 수 있었어요. 저한테는 친구 말고 더 가까운 사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지요.


  솔직히 그때 양모도 이미 사망한 뒤이고 하여 어머니를 한번 찾아가 뵐 생각도 했었는데 이 모든 것이 다 어머니가 날 버린 탓에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어머니에 대한 일종의 원한, 또 한편으로는 어쩐지 어머니에게 초라하고 힘든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같이 생각되어 좌왕우왕 하던 나머지 단념하고 말았어요. 그리고 죽지 않고 살아보려고 강타기를 시작하였는데 그만 첫 탕에 중국 변방대(邊防隊)에 붙잡혀 당일로 즉시 북송되었고 전문학교 교원에서 해임철직 되어 노동단련을 거쳐 또 창태농장으로 강제추방까지 당하고 보니 이렇게 된 바엔 차라리 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중국으로 가게 되었어요. 일이 제대로 되려면 중국으로 영 들어가기 전에 찾아뵈었어야 하는 건데 앞으로 기회가 또 있을 거라 생각하고 찾지 않은 거였죠.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제 생각이 짧았는지, 우리 모자간의 상봉이 이루어지지 못한 건 전적으로 제 잘못이에요. 제가 어머니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어요. 이제 와서 용서를 빈다한들 뭘 합니까?


  북에 있을 때 들은 것인데 시 병원이비인후과 의사로 있다 사망한 조칠선생이 저한테 외숙부라고 알고 있고 그래서 엄마 이름이 뭔지는 몰라도 성은 조씨로 알게 되었어요. 어릴 적에 제가 귀앓이로 그분에게서 여러 번 치료 받은 적도 있었지만 그땐 서로 몰랐으니까요. 외숙부님도 정말 치료하는 애가 외 조카 라는 걸 몰랐을까요, 아니면 모르는 척 한 것일까요?


  들은데 의하면 어머니는 재일교포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오씨성을 가진 자식들이 있다는 것과 또 저의 생부는 허씨이고 저에게 이복형제들이 있다는 것과 생부는 일찍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었어요. 맞고 틀리는 건 어머니가 제일 잘 아시는 일이지만 말이지요. 저 그리고 원래의 성, 허씨 성을 따르려 해요. 자의이든 타의이든 근 40년을 방황하였는데 인제는 자신의 정체성, 근본을 찾아야지요. 어머니도 저의 생각을 지지하실 줄로 믿어요.


  어머니! 절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하느님과 어머니께 다같이 감사해요. 소원이 있다면 어머니와의 만남이겠죠. 이제 아마 기회가 있을 거예요. 어머니는 무슨 이야기인지 잘 이해가 안 되실 수도 있는데 저 지금 성당에 다니면서 예비신자 교리 공부를 하는 중이에요. 쉽게 이야기하면 하느님을 믿는다 그말이에요. 하느님께 우리 모자의 상봉을 이루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어요. 하느님께서 저의 소원을 꼭 들어주리라 확신하고 싶어요. 그러니 건강하셔야 해요. 꼭 만나는 그날까지 살아계셔야 해요. 저도 어머니 만날 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 거예요.


  어머니! 그럼 오늘은 이만 낙필하면서 어머니께 큰절을 올려 부디 만나는 날까지 아프지 마시고 오래오래 앉아 계시길 진심으로 축원할게요.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


     2007년 6월 20일  

     불효자 창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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