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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영숙에게2007/10/12
관리자

                                   친구 영숙에게

                                             고금란


   영숙아! 그동안 잘있었니?.

  우리 헤어진지도 어느새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구나. 10년 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나도 많이 늙었어. 너 역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우리가 헤어질 때는 36살이었는데 네 아이들 금주, 남철, 은주도 다 컸겠다. 네 엄마 너희 집에 와서 3일을 있을 때 네가 울면서 “엄마 우리집에 이제는 오지 마요. 나도 아이들 셋을 먹여 살리기 바빠요” 하던 생각이 난 항상 잊혀 지지가 않아. 얼마나 먹을 것이 없으면 친정엄마 오는 것도 만류하는 그런 세월이겠니. 그때는 나도 그 말을 듣고 참 너무나 생활이 어려우니까 친부모간에도 정이 없어지는구나 생각을 했는데, 중국에 와서도 내내 동네 사람들과 친척들한테 너희와 옆집에 살면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단다.


  네 남동생과 오빠가 텔레비전을 도적질하고 감옥에 갇혀서 고생을 많이 하고, 나와서 또 3달 만에 소 도적질로 감옥에 갔었잖아. 그때 같이 들어갔던 창호네 형제도 다 죽었단다. 너는 그때 샛별에 가 있어서 너의 남동생과 오빠 소식만 알았지만 창호네 형제와 은하아버지도 다 감옥에서 죽었어. 그리고 내가 후에 그 마을을 다시 가 보니까 동네에 경호네 밖에 없더구나. 그래서 경호엄마한테 네 소식을 물으니까 모르겠다면서 우리는 울면서 헤어졌어. 경호엄마도 생각이 나지?. 너희 은주가 너무 배가 고파서 두부를 손으로 뜯어먹었다고 도적놈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치던 일을 말이야. 경호엄마가 그때 그 소리도 하더구나. 다 헤어지고 보니까 자기가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여튼 내가 그 동네에 짐 때문에 갔었는데 세 집만 있고 온 동네가 텅텅 비었더라.


  우리 인철, 인순이도 내내 “우리 옆집 금주네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하면서 아직도 잊질 못하고 있어. 나도 너를 잊지 못하는데 우리 아이들이야 한창 어린나이 7살, 9살, 철없이 말썽만 일으킬 때니까 추억도 많겠지. 아참 그리고 인철이 말이, 남철이와 금주, 인철 인순이가 대홍단에서 강냉이 도적질을 해서 한 마대 해놓았는데 너희 금주 때문에 경비원한테 들켜서 다 뺏겼다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소설 속 한 장면 같았어. 내가 대홍단에 들어가 있던 3일 동안 애들이 배가 고파서 생각해 낸 것이, 엄마 몰래 강냉이 밭에 가서 도적질을 해다가 두만강에 끌고 내려와서 강기슭에 앉아서 강냉이 알을 한 알 한 알 발구었던 거야. 그렇게 한 것이 거의 두 배낭을 채웠대. 아이들은 거기서 강냉이를 구워먹고 잠을 자고 다음날에는 또 밭으로 올라가서 강냉이를 따가지고 두만강 기슭으로 내려오고, 이러면서 3일을 두만강변에서 살았데. 문제는 강냉이 껍질을 두만강으로 흘러 보냈으면 흔적이 없겠는데 아이들이 철이 없으니까 자기들이 자는 자리에다가 차곡차곡 쌓아두었단다. 농장 경비원들이 하도 조그만 애들이 강냉이 밭에서 두만강쪽으로 왔다 갔다하니까 눈치를 채고 두만강 기슭으로 내려왔는데 강냉이 껍질이 수두룩이 쌓여 있으니까 발각이 된 거래. 그래서 분주소에 아이들 4명이 다 끌려가고. 아이들은 엉엉 울었지.


  강냉일 손으로 한 알 두 알 발구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손가락에서 피가 흐를 정도였데. 그런데도 배낭에 강냉이가 쌓여지는 재미에 아이들은 아픈 줄도 힘든 줄도 몰랐지. 그렇게 단지 며칠만이라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을 걸고 애썼던 모든 노력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으니 참으로 아이들이 통곡이 나더란다. 흥암분주소에 잡혀들어갔는데 안전원들도 아이들한테 욕도 못하고 “너네 이거 강냉이를 손가락으로 발구어서 두 배낭을 채우느라 고생이 많았겠다”며 한숨만 쉬고 어떻게 애들을 처리해야할지 결단을 내리지 못하더래.


  내가 장사 마치고 밀쌀을 가지고 왔거든. 근데 너네 애들하고 우리애들이  소랭이에다 발군 강냉이 알을 헤아리고 있더란 말이다. 나는 없던 강냉이가  있길래 웬거냐 물었더니, 애들이 나한테 혼날까봐 말을 못하고 거짓말을 하는거야. 자기네가 농장 경비원한테 가서 술을 줄테니 강냉이 달라고 빌었단다. 그래서 얻은 강냉이라며. 집에 있던 술을 팔았다 길래 나는 진짜인줄알고 있었는데 중국에 와서야 인철이가 솔직히 털어놓더라.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울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애들이 기특하기도 하고. 애들한테 왜 그랬냐 욕도 안 나가더라. 참 어린 애들도 살아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는 걸 다시 깨닫고 느꼈어.


  영숙아, 너네 애들과 우리 애들이 참 똑똑했지?. 너희도 남편 없었지, 우리도 남편이 없었지, 두 집 애들이 다 아버지 없는 애들이라 그런지 어려서부터 생활력이 강하고 엄마 말도 잘 들었잖아. 영숙아, 우리 살던 집 한 줄이 모두 과부 동네였잖아, 생각나지? 경호네만 남편이 있고 너희부터 창호네 까지 모두 과부 집이었지. 우리 직장 다 때려치우고 황해도 평산에 개구리 장사 갔던 일 생각나지?. 처음 장사치곤 아주 많이 벌었는데 그 후 엄마네 집으로 와서 중국밀수를 하게 되었거든. 그때 네 생각이 많이 나더라. 몇 년을 옆집에서 살면서 아이들도 같이 자라고 너와 내가 협의해서 장사도 같이하고 산에 나무 하러도 같이 가고, 거의 모든 생활을 같이하다시피 하였잖아 그 때는 중국밀수 할 때도 네 생각이 났지만 불법이라 너를 찾지 못 한거야. 나는 밀수를 하다가 감옥에 잡혀서 고생도 많이 하고 두 번째 감옥에 가게 되자 중국으로 아예 탈북을 하고 만 것이었어.


 한번은 네가 우리집에 와서 우리 애들이 인정이 없다고 욕을 했잖아. 그때 네가 하도 울면서 우리 애들이 드세서 금주와 남철이를 길바닥에 떼여 놨다고 욕을 하길래 어찌나 미안했는지, 나도 너희 애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무작정 우리 인철, 인순이를 혼냈는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애들이 그때 얘기를 하드라. 애들끼리 지들 외할머니네 집으로 가다가 밤이 되니까  다리 밑에서 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났는데 갑자기 금주가 “난 너의 할머니 집에 안가겠다”고 했단다. 그러니까 남철이가 울더란다. 배는 고프지 오도갈데 없으니까. 그래서 인철이가 남철이가 운다고 재수 없다고 때렸단다. 그래서 금주과 남철이가 되돌아서 집으로 온 거래. 지금 보면 애들이 철없으니깐 그 먼 길을 가다가 서로 싸움질 하고 갈라진 것이지. 금주엄마와 나와의 지난 추억은 너희 집 애들과 우리 집 애들의 추억이야. 나보다 우리 애들이 그 시절 너희와 있었던 얘기를 더 많이 기억해내. 아마도 한창 자라던 시절에  겪은 고생이라고 잊혀지지 않는가봐. 그 애들이 이제는 다 자라서 10년 전의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떠들 때면 난 네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항상 궁금하단다.


  우리가 계속 같이 행동을 했으면 지금 여기 함께 있을 수 있는데, 우리 서로 길이 다르니까 헤어질 수밖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쓰라린 추억들...통곡이 나오도록 가슴이 아픈 우리 아이들의 어린시절 추억...어떻게 보면 나름대로 소중한 것들이야, 도적질을 하던 싸움을 하던 다리 밑에서 자던, 두만강변에서 3일을 먹고 자면서 살던, 다 애들 나름대로 살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생각해.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 아까워하지 않고 정치만 앞세우는 나라니까 모든 백성들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도적놈으로 밀수꾼으로, 국가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거잖아. 이 남한 사회처럼 문명한 나라에서 우리도 살았더라면 왜 애들이 그런 길을 걷겠어. 난 애들이 그 속에서도 살아남은 것이 장하다고 항상 생각을 하거든 너희 애들도 그 때처럼 꿋꿋이 살아 갈 것이라 믿는다. 금주엄마 너도 그 사회와 결별하고 빨리 여기로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와 너의 상봉도 좋지만 애들은 얼마나 좋아 하겠니...

 영숙아! 오늘 편지는 이만 쓰련다. 앞으로 만날 날이 꼭 있으리라 믿으면서 상봉의 날까지 몸 건강하길 바란다. 또 애들도 무사히 자라리라고 믿고...

금주, 남철, 은주 모두 안녕.  남한에서 아줌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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