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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강도에 계시는 아저씨에게2007/10/12
관리자

량강도에 계시는 아저씨에게 

                             고명희


   아저씨 안녕하세요?.

  그간 온 집안 식구들 무사하신지요. 고난의 행군시기 헤어져서 이제야 소식을 전하게 되어서 미안합니다. 남철이와 남주도 이제는 다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테고 언니는 물론 할머니가 되었겠죠.


  아저씨 항상 죄송한 마음 감출 수 없는 저의 마음 모르시죠. 다만 저를 사기꾼으로 생각을 하시겠죠. 아저씨가 중국에다가 곰가죽과 돼지를 팔아오라고 주었는데 아저씨에게 그 값을 드리지 못하였으니 미안한 마음 항상 가지고 삽니다. 그 안타까운 마음 전하고자 이 편지를 씁니다.


 나는 곰가죽과 돼지고기를 가지고 대홍단을 떠나 집으로 왔고, 돼지고기는 동네에서 다 팔고, 곰가죽은 다음날 중국에 가지고 가서 팔려고 하였어요. 그런데 그 날 새벽 1시 엄마네 집에서 자고 있는데 분주소에서 온 거예요. “고명희 있느냐 문을 열어라”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았더니 분주소 경비지도원과 왕OO라는 사람이 나를 체포하러 온 거예요. 그날 밤으로 나는 분주소로 잡혀 들어갔고, 그 날부터 한 주일을 고문 받으면서 취조를 당했는데, 원인은 제가 중국에 밀수를 한 일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매일 자백서를 쓰고 낮에는 고문을 받고 무시무시한 하루하루를 감옥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들여온 텔레비전과 쌀을 다 뺏기고, 내가 없으면 집에 있는 아이들과 엄마가 굶어 죽을까봐 분주소 소장한테 사정을 하였어요. 그러나 법은 사정을 봐줄리 없잖아요. 법대로 조사를 다 받을 때까지 감옥 안에서의 규율을 지키며 긴긴 밤을 철창 안에서 새웠습니다. 끼마다 집에서 싸오는 도시락을 먹었는데, 집에서 싸오는 도시락은 짐승도 먹을 수 없는 파란 풀을 삶아서 다진 것으로 눈을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의 것이었습니다. 아저씨, 아저씨는 그때의 나의 마음, 내가 어떤 고생과 수모를 당하였고, 얼마나 악착같이 고문을 이겨냈는지 상상도 못할 거예요. 5x5각자로 사정없이 얼굴이고 몸이고 다리고 머리고 모조리 때려 가는데 분주소장이 하는 말이 “배가 고파 굶어죽어도 집에서 가만히 앉아 죽으란 말이야!...”


  나는 비판서를 쓸 때마다 “잘못했습니다. 사회주의를 지키지 못한 반역자노릇을 다시는 하지 않고 당에 충실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라고 맹세를 하였으며 정말로 다시는 나라와 국가를 배반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이런 감방생활을 다시는 하지 않겠노라 굳게굳게 맹세를 하였지요. 감옥살이에 너무나 혼이 빠져서 다 잘못했다고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노라 몇 백 번을 속으로 다짐을 하고 일주일 만에 나왔어요.


  집으로 오니 엄마와 아이들이 차마 눈뜨고는 보지 못할 형편이었어요. 엄마는 내가 감옥에서 나오면 아이들이랑 같이 다 죽어 버리자고 결심을 하고 아편을 어디서 얻어 놓고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 말에 나도 동의를 하였어요. 더 이상 아이들과 엄마를 먹여 살릴 힘이 없었고 또다시 법을 어기긴 무서웠으니까요. 죽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을 하고나니 두려운 생각도 없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 죽지 않겠다고 다 달아나는 것이에요. 인순이는 아편을 가지고 달아나서 밖에다 던지고, 인철이는 안 죽겠다고 엉엉 울면서 죽으려면 엄마와 할머니만 죽으라는 것이에요. 아이들이 죽지 않겠다고 발광을 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죽을 생각을 포기 하게 되었어요. 내가 죽는 건 쉽지만 저 애들은 고아가 되지 않겠느냐. 어떻게든 다시 기운을 내서 살아보자 라고 결심을 하고 일어섰지요.


온 집안 식구가 죽기를 벼르고 누워 있다가 3일 만에 다시금 일어나니 힘이 없어서 일어나 앉을 수가 없었어요. 엄마는 계속 누워 있었고, 중국에서 가져온 쌀을 모두 빼앗겼으니 집에는 곡식이 한 알도 없었거든요. 정말 막막하였던 그 날을 되새기노라면 지금도 눈물이 그칠새 없이 흐릅니다. 그날 저녁 엄마가 곰가죽이라도 먹어 보자면서 끓였어요. 액물 같은 것을 달여서 마시는데 난 눈을 뜨고는 먹을 수가 없어서 못 먹었어요. 시커먼 털이 쭉 덮힌 물을 엄마는 마시겠다면서 입으로 갔다 대는 것이었어요. 제가 곰가죽에 붙었던 털을 보에 대고 걸러서 드시라고 하니까 엄마가 그렇게 해서 마시는 것이었어요. 아이들과 나는 종내는 못 먹고 엄마만 마셨어요. 그래서 아저씨가 중국에다 팔아오라던 곰가죽은 그렇게 없어 진 것이에요. 제가 잡히는 통에 중국에다 팔기는 고사하고 엄마가 너무 배가 고프니깐 푹 끓여서 드신 거예요. 그렇게 아저씨한테 제가 사기꾼이 되었습니다. 곰가죽을 팔아서 돈을 가져다주어야 하는데 집에서 엄마가 먹어 치웠으니 아저씨한테 가져 갈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로부터 우리는 3달 동안을 풀로 살아 왔습니다. 아침에 산에 올라갈 때는 된장만 가지고 갑니다. 나는 도끼로 솔화분을 하겠노라 나무를 찍고 아이들은 산나물을 뜯어서 된장에 찍어먹고. 그것도 철이 지나니 산나물이 쇠서 먹을 수 없게 되었어요. 그 다음부터는 밭에 풀을 뜯어 먹기로 하고 강냉이 밭에 아이들을 데리고 매일 풀을 뜯으러 다녔습니다. 민들레, 토끼풀을 매일 한 마대씩 캐다가 소금물을 두고 끓여 먹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풀도 사람들이 너무 많이 뜯어가니 강냉이 밭에나 콩밭에도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풀마저 떨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고생을 하고 굶으면서 3달을 견디다 8월에 종내는 봄에 뜯었던 솔화분을 가지고 또 다시 중국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당에서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굳게 맹세를 했건만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 이르니 그 맹세도 몇 달을 가지 못하더군요. 결국은 반역의 길을 다시 걷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다시 맹활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죽으면 나에게 영웅 칭호 줄 사람이 없다. 내 새끼를 굶어 죽이고 내가 국가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국가에서 나를 장하다고 칭찬을 할 텐가. 우선 먹고 생명을 건져야 한다”는 강한 반발심이 나로 하여금 더욱 마음을 굳게 하였습니다. 나는 중국에서 남한 방송들을 들으면서 이 나라가 앞날이 없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고 점차 중국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잡히면 중국으로 날아야 한다는 결심도 하고 중국에서 살 수 있는 준비도 점차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또 다시 잡히면 이제는 끝장이니 탈북을 할 생각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중 동네 강학이 아버지가 분주소에 밀고를 해서 사건이 터졌고, 나는 집 앞 강냉이 밭에 숨어서 온 하루를 보내다가 그 날 밤, 중국으로 혼자서 탈북을 하였습니다. 그날도 나는 새벽 5시에 많은 쌀을 가지고 조선으로 넘어 왔는데 6시경 승용차 한대가 신작로에서 우리집 쪽으로 오는 것이었어요. 항상 죄를 짓고 마음 졸이며 살던 저라  “승용차가 왜 이리로 오지. 기름이 없어서 온종일 차한대 다니는 것이 없는데 웬 승용차가 이 새벽에 우리집 쪽으로 오지” 하는 의심이 들어 우선 나는 집 앞 강냉이 밭으로 몸을 숨기였습니다. 얼마 안 있어 정말 차들이 우리집 앞에 와 멎더니 보위지도원 목소리가 나는 것이 였어요. “고명희 간나새끼네 집이 맞는가. 이 개간나새끼 어디로 갔는가”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니까 집안에 있던 아이들이 끌려나와 엉엉 우는 것이었어요. 우리 애들도 내가 어디 숨었는지를 정말 몰랐거든요. 그날 나를 찾겠다고 국경경비대를  동원시켜 강냉이 밭, 콩밭 사이를 샅샅이 뒤졌으나 나를 찾아내지 못했죠.  새벽녘에 비가 추들추들 오기 시작하니 하늘에 먹장구름이 끼고 새까매서 앞이 보이지 않더군요. 하늘이 나를 도와주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동뚝으로 조금 조금씩 네발걸음으로 기어서 두만강변까지 기어갔어요. 온갖 고생 끝에 탈북하는데 성공을 하였어요. 그로부터 한달 후 아이들마저 데려오고 엄마는 그냥 화평에 남아있는데 아직도 엄마소식은 모르고 있어요. 살았는지 돌아가셨는지도...


  지금은 한국에 와 있지만 어느덧 세월은 흘러 10년이 되는군요. 세월은 흘러도 나는 아저씨한테 빚진 곰가죽 때문에 항상 마음에 꺼려집니다. 아저씨가 꼭 이 글을 보시고 내가 사기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엄청난 고생을 했다는 것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제가 밤에 편히 잘 것만 같은 마음이에요. 아저씨도 힘든 상황에서 생계에 도움이 되겠노라 나한테 곰가죽을 맡긴 것을, 10년이 흐른 오늘까지 소식이 없으니 얼마나 나를 원망하실 것인지 알고도 남음이 있어요. 아저씨 이게 우리집안 한 가정의 일이 아니라 문제는 한반도가 이보다 더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거예요. 아저씨네 한 가정이 나한테 사기를 당하고 돈을 몇 푼 잃었지만 그 통에 생명을 잃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실 거예요. 저도 나라를 잘못 만난 탓으로 북한에서 굶어죽은 사람도 보고, 또 중국에 팔려와서 아기를 낳다가 죽은 여자도 보고, 한국으로 오는 길에 감옥에 잡혀가서 현재까지 소식도 모르고 죽은 사람들도 너무 많이 생생한 모습으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다행이도 우리는 제나라 땅에 와서 새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중국 남모르는 땅에서 이리저리 팔려 다니는 여성들도 수없이 많고 탈북을 하다가 감옥에 갇힌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데요. 우리가족이 한국으로 올 때도 22명이 함께 왔는데 그 속에서 인철이와 나만 살아남고, 인순이를 비롯한 20명은 다 북한으로 잡혀갔거든요. 다행히 인순이가 나이가 어려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왔지만은 나머지 사람들은 인순의 말에 의하면 감옥에서 죽거나 신의주에서 보위부로 데려갔고, 감옥에 있는 동안 먹지도 못 하고 똥통을 메고 밭으로 다니다가 지쳐서 쓰러지진 것을 안전원들이 구둣발로 차서 다리병신이 된 사람도 봤대요. 나는 감옥 안에서 우리 동포들이 죄 아닌 죄를 뒤집어쓰고 인간이하의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 고문과 학대를 당하는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며 치를 떨었습니다. 아저씨가 나한테 곰가죽 값을 못 받은 건 물론 내게도 잘못이 있지만, 나라가 정치를 잘못함으로 일어난 사실이라고 생각을 해야 할 것이고, 아저씨는 나를 미워할 것이 아니라 지금의 그 나라 정치를 하는 김정일에게 분노하며 치를 떨고 온 백성이 뭉쳐서 나라 개방을 실현해야만 개인의 행복과 자유도 얻어 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갈라진지도 10년이 되었어요. 아저씨 어서 빨리 깨어나서 북한정치 제도를 무너뜨리고 남북통일을 이루어야 다음 세대, 우리 자식들에게도 편히 살날을 넘겨 줄 것 아니겠어요.


아저씨 대홍단군 안전부에 아직도 계시는지 몰라도 아저씨가 대담하게 깨어서 권총으로 테러를 하세요. 우리를 못 살게군 놈들, 김정일한테 아부아첨 하는 놈들 한 놈도 용서치 말고 쏴죽이세요. 그리고 온 백성이 뭉쳐서 들고 일어나면 반드시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몇 놈 안되는 정치자들한테 얽매여 온 나라가 울분을 참지 말고 울분을 하늘땅에 터뜨리세요. 이라크 정치인들처럼 아예 매장을 시키는 거예요. 아무리 북한이 세계를 모른다고 해도 이제는 세계를 알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동안 중국에 밀수 한 사람이 얼마인데 아직도 세계를 모르고 <김정일 장군님께 충성>을 부르짖는 자들은 개, 돼지들이나 감정 없는 동물들처럼 머리가 잘못된 사람들이고 야만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생애를 김정일 한 사람한테 바친 것을 생각하고, 온 조국 땅이 통치자 한사람한테 매장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이 일을 해야지 누가 해주겠어요. 내 집에 도적을 내가 잡아야지 누가 잡아주기를 바라면 멍청한 사람이지요. 나를 발로 밟는데 내가 그 발을 가만두면 계속 밟히잖아요. 아저씨 이젠 어둠 속에서 깨어나세요. 아저씨가 나라를 통일시키는 통일 영웅이 되세요. 나 한 사람을 사기꾼이라고 미워하지 말고 더 큰 분노를 가지고 김정일을 미워하고 정권을 뒤집는 일에 적극 참여하여 하루 빨리 조국통일을 이루도록 싸우세요. 조국이 통일되고 남과 북이 서로 왕래하게 되면 꼭 대홍단에 찾아뵐게요. 그때 다시 이야기 합시다. 아저씨 이유야 어떻든 다시 한번 미안하단 말을 하고 싶어요.

오늘 편지는 이만 씁니다.

아저씨 만나는 날까지 몸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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