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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끼고 사랑해주던 병수동무에게2007/10/12
관리자

 

내가 아끼고 사랑해주던 병수동무에게 

함인석 


  병수동무! 왜 오늘은 병수동무의 이름이라도 한번 부르고 싶은 생각이 그렇게도 간절히 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고 있는지 나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소. 세월이 흘러 내가 짐작하건데 병수동무도 오십 고개에 접어들었다고 생각되오.


  나는 지금도 병수동무 같은 제자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남부럽지 않게 당당히 자랑하고 싶소. 돌이켜보면 병수동무와 나와의 관계는 비단 사제 관계로서가 아니라 동지적 의리에 기초한 하나의 유기체를 방불하듯 존경과 사랑으로 충만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고 생각되오.


  동무가 처음 군복차림의 늠름한 모습으로 나의 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한눈에 동무의 씩씩한 모습에 매혹돼버리었소. 자네가 당과 수령을 위하여 자기의 청춘도 아낌없이 바쳐 10년 이상이나 군복무생활에서 충성과 효성을 다 하였으니 나라를 사랑하는 그 고귀한 희생정신에 대하여 나로서도 찬양과 격려 외에는 더 할 말이 없었소. 말이 쉽지 한, 두해도 아니고 10년이 넘도록 기나긴 세월 꽃다운 청춘을 고스란히 조국보위의 성전에 자기 한 몸 서슴없이 바쳤다는 것 자체가 북한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현상이며 세인을 놀라게 할 기적적인 사변이기도 하오.


  그 가운데서도 동무는 최전방 비무장지대 내에서 국군과 얼굴을 서로 맞대고 경계근무를 수행하는 어려운 임무를(민경) 맡아 수행하였소. 그때 동무는 북쪽을 향해 밤낮없이 불어대는 남한의 대북방송을 귀가 멍멍할 정도로 귀찮게 들으면서도 그에 익숙해져 버렸소. 그중에서도 북한에서는 한번도 들어본 일이 없는 유행가의 구수한 노랫소리는 저절로 어깨를 들썩거리게 하며 흥을 돋우어 주었소. 어떤 날에는 그 장단에 맞추어 콧노래도 불러보았소. 이런 사소한 현상에 대하여서도 당 생활총화에서는 언급되어야 하는 것이 당의 강한 요구이기도 하였소. 이에 대하여 자네는 당 생활총화에서 솔직하게 자기비판을 하였는데도 당 조직의 호된 추궁을 받았다고 하였소. 아마도 자본주의 사상의 풍조가 자네의 머리에 스며들어온 셈이었으니까. 이것을 군인들의 머리에 가까이 접근시켜도 안 되고 침투될 사소한 틈도 철저히 차단하고 봉쇄하여야 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생존방식이니 응당한 응징이기도 하였소. 자네는 비록 무의식적으로 저지른 사소한 표현이었는데도 규탄 받아야 할 대상이 되었으니 그로 하여 입은 정신적 상처 또한 이만저만 하지 않으리라 생각 되었소. 이것은 자네의 군복무생활에서 겪은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하오.


  이런 일까지도 허물없이 나와 의사소통이 되었으니 자네와 나는 서로 믿음과 사랑으로 이어지고 우리 둘 사이를 더욱 두텁게 다져놓았소. 자네가 재학 3년 기간 줄곧 학급 반장으로서 학생들의 학습과 교양사업을 책임지고 담임선생인 나의 사업을 적극 도와준 것이 지금도 나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간직되어 있소.


  자네가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뜻하지 않은 시련에 부딪쳐 남몰래 가슴을 태우던 그 아픔을 나에게 털어놓으며 안타까워했던 일이 또 기억되오. 졸업 후 다음해 대학추천을 제기하였으나 당 조직에서 문건이 부결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소. 맡은 임무에 항상 충실하여 모범 노동자로 신망이 있는데도 부결된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소. 나는 이 문제를 요해하고 해당 당 조직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였소. 다행히도 당 비서는 나와 구면이어서 나의 요구를 쾌히 수락하였소. 그는 나에게 자네의 주민등록문건을 서슴없이 보여주었소. 사실 이 문건은 아무에게나 마음대로 보여줄 수 없는 비밀문건이어서 북한사회에서는 해당 안전부의 기밀문서고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은 자네도 모르는 사실은 아니었소. 나는 이 문건을 보면서 자네의 가정주위환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즉시 발견하게 되었소. 나는 그때 자네를 불러 앉히고 주민등록문건에 밝혀진 보증인들을 찾아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도록 조치를 빨리 서둘러야 하겠다고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소. 그때 자네는 이 사실을 처음 알고 몹시 당황하기도 하였으나 내가 곁에서 지켜주고 도와주고 있다는데 대하여 신심을 가지고 용기를 내어 이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소. 문제의 중심은 자네의 고향마을을 1950년 국군이 일시적으로 강점하였을 때 있었던 일을 신원조회에서 부당하게 진술 하거나 허위날조 된 사실이 서술되었기 때문이었소. 요해한데 의하면 개인감정에 사로잡혀 남의 가정에 불행한 감투를 씌워놓은 일부 부락 주민들의 날조된 비방증상이었소. 잘못하면 자네의 형제들까지 종신토록 그 피해와 상처를 고스란히 한 몸에 안고 살아야 할 운명에 놓일 뻔 하였소. 이것이 분단이 가져온 우리민족의 설움이며 고통이 아니겠소? 참으로 생각만 해도 분통이 터져올라 더 참기 어렵기도 하였소. 그러나 이것이 어렵게나마 제때에 수습되어 다음 해에는 대학입학 추천을 받아 시험에도 합격하여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소. 그때 가슴 뿌듯하게 느낀 기쁨과 환희는 내가 자네를 도와줄 수 있는 전부였다고 생각되오. 나는 이 일을 아직도 깊은 추억으로 남기고 자랑스러운 일로 고이 간직하고 있소.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적다보니 내 자랑만 잔뜩 늘어놓은 것 같소. 자네가 나에게 베푼 지극한 정성에 대하여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소.


  북한에서 가장 어려웠던 1990년대에 있었던 일이 눈에 선히 떠오르오. 경제난, 식량난에 나라와 인민이 굶주림에 허덕이며 생사를 판가름하는 지경에 이르러도 당에서는 <고난의 행군>을 소리높이 외치면서 인민의 고통과 아픔에 대하여서는 외면하고 있었으니 인민은 이 참담한 현실 앞에 좌절과 실망으로 가슴이 멍들고 있었소. 이런 어려운 시기에 미루어오던 나의 맏딸 결혼식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소. 결혼식 날짜는 이미 정해놓았으니 이는 더 미룰 수는 없었소. 막상 결혼식을 하자고하니 준비해야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소. 당장 끼니도 때우기 어려운 형편에서 무엇보다 걸린 문제는 식량이었소. 나는 생각다 못해 초청인원을 열명 안팎으로 정해놓았소. 그들은 친척 아니면 나와 가까운 친자들이었소. 이 사람들에게라도 술 한 잔과 국수 한 그릇은 대접해 보내는 것이 정해진 관습이어서 이것을 어길 수는 없는 일이었소. 그렇다고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소. 나는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가슴만 쥐어뜯으며 끙끙 앓고만 있었소. 이럴 때 자네가 나의 앞에 불쑥 나타났었지. 그때 자네는 배낭에 옥수수 한말을 지고 왔었소. 나는 뜻밖에 부딪힌 일로 하여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소. 나는 자리를 털고 불쑥 일어나 자네의 손을 잡고 감격의 눈시울을 적시였소. 참으로 그때 자네가 보내준 옥수수 한알, 한알은 천금과도 맞바꿀 수 없는 나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 사랑이 깃들어 있는 귀중한 선물이었음을 오래도록 나의 머릿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소.


  병수동무!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러갔지만 우리의 우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변치 안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소. 내가 북한을 탈출할 것을 결심한 후에도 한번은 꼭 자네와 만나고 헤어지자고 마음먹었으나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소. 널리 양해해주기 바라오.


  아무쪼록 몸 건강하여 통일의 그날 다시 만날 것을 굳게 약속하면서 오늘은 이만 펜을 놓겠소.


2007년 7월 31일

옛 선생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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