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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에도 보고 싶은 어머님께 올립니다2007/10/12
관리자

꿈결에도 보고 싶은 어머님께 올립니다. 

장진숙


  어머니!

  어머님을 마지막으로 뵈온지도 20여년 세월이 다 되어 옵니다. 앞머리에 흰서리가 내리시고 눈가에는 잔주름이 곱게 피웠던 아련한 그 모습은 지금도 저의 가슴속 깊은 곳에 고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새겨지는 연륜과 더불어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은 몇 배 더 커지고 있습니다.

 

  어머니!

  저의 머리에도 어느덧 흰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네 아이의 할머니가 되었고 휴일이나 명절마다 찾아오는 귀한 손님들은 다 자란 아들 며느리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손주 손녀들입니다. 그 애들이 이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움을 알게 되면서 저는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 없이 깊어집니다.


  딸 4명을 줄줄이 낳고 막내로 내 남동생을 낳았을 때 그렇게도 기뻐하시던 아버지. 어머님은 그날 기쁨의 눈물과 지난날 딸만 낳았다고 할머니한테서 받았던 구박이 되살아나 끊임없이 울었지요. 제가 결혼하여 남자애를 3명이나 낳아 어머니 품에 안기웠을 때 어머님은 온 동네에 다니면서 자랑하시었지요. “우리딸은 이 에미를 닮지 않았소. 글쎄 사내놈을 셋씩이나......” 하면서 그처럼 기뻐하시었지요. 제가 할머니가 되어서 어머니의 그때 그 심정을 더 잘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항상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새끼!” 하던 저의 아들이 벌써 40대 중반에 들어섰습니다.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저의 첫 손녀, 공주도 보았답니다.


  어머니!

  얼마 안 되는 아버지의 월급으로서는 온 가족의 생활비도 겨우 되는데 자신들이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저희 5 남매를 일류대학에 보내시고 가정의 큰 부담을 억척같이 지고 살아오시면서 언제나 저희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신 어머님. 어머님의 큰 수고를 철없는 그 시절에 우리는 다 몰랐습니다. 제가 커서 어른이 되고 학부형이 되면서 그 은혜를 알게 되었고 쭉 보답하리라 굳게 결심했는데 변변한 효도 한번 못하고 오늘은 또 이렇게 제 나라 제 땅에서 조차 어머님을 찾아뵙지 못 하게 되었습니다. 


  30대 중반에 남편을 잃고 네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그 힘든 세상을 이겨내며 살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님이 저와 제 아이를 곁에서 튼튼한 버팀목이 되셨고 어머님께서 그 크신 사랑의 품에 저희들을 안아 키우셨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당에 충실하고, 이웃에 사랑을 베풀고 형제들에게는 우애를, 부모님께는 효도를, 천직으로 가르켜주신 어머님의 그 뜻을 받들어 저와 저의 아들들은 구김살 없이 자랐습니다. 어머님께서 저희들을 위해 흘리신 땀방울이 수분이 되고, 그 사랑이 영양분이 되어 잘 자랐고 큰 뜻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외국 유학길에서 전 세계를 알고 더 큰 포부를 실현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자기 탯줄이 묻힌 북한이 아닌 한국행을 택한 저의 큰 아들 때문에 눈보라가 기승을 부리던 00해 마지막 날 혈육한점 없는 이 나라로 떠나오던 것. 저는 지금도 악몽처럼 떠올라 몸서리 합니다.


  언제나 조용하시고, 인자하시고, 사랑만을 아시던 어머님께서는 자신이 오랜 노 당원임도 망각한 채 야밤에 우리들을 짐짝처럼 자동차 안에 몰아넣는 보위원들을 향해 “여보시오! 우리딸애한테 무슨 잘못이 있소? 우리는 손주를 노동당 앞에 맡기었소, 당신들이 어떻게 관리했기에 그 애를 놓치고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없는 이 애들에게 이렇게 엄벌을 내리오? 밖에서 아우성치는 눈보라소리가 들리지 않소. 이것이 사람을 죽으라는 것이지 살라는 것이요? 해도해도 너무 합니다.” 하시면서 어머님께서는 피눈물을 흘리셨지만 그 기상이 너무나 무서워 보위원들도 더는 말을 못하였지요?


  그러나 자동차는 짐과 사람을 마구 싣고 떠났지요. 온 세상이 암흑이었고 앞날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미련도 없이 식물인간마냥 들추는 자동차의 진동수에 몸을 맞기면서 끝없이 끝없이 달려 00해 섣달 아침에 목적지에 당도했습니다.


  우리는 제 정신을 되찾으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 의식을 차리자 세 아이가 저를 지키고 앉아 6개의 눈망울이 저를 쳐다보더군요. “어머니! 정신을 차리세요. 저희들이 있지 않아요? 우리에게는 청춘이 있고 힘도 있습니다. 먼저가신 아버님과 큰 형님을 대신해서 저희들이 어머님을 잘 모시겠습니다.” 그러면서 밖으로 나오는 울음소리를 참다가 막내가 끝내 “어머니! 그러면 다시는 영영 할머니를 못 보나요? 아까 할머니가 보위원 동지들한테 막 대들었는데 이제 어떻게 해요?” 우리들에 대한 걱정보다 늙으신 어머님이 치르실 후한 때문에 더 걱정했고 끝내 우리 넷은 엉엉 울었습니다.


  참으로 그때에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처참했지요. 그래도 제 땅인데 살아생전에 어머님만은 꼭 만나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민족반역자”가 된 우리한테는 오갈 수 있는 처지도 제대로 말할 수 있는 권리도 없었습니다. 어머님과 동생들도 우리를 찾아올 수 없으니 제나라 땅에서도 못 만났는데 오늘은 국경 아닌 38선에 또 가로막혀 생사조차 알 수없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그곳 북한에서 저희 생활을 어머님은 어지간히 알 수 있는지요? 살아 숨쉬어도 죽은 목숨과 같았고 아무런 보장권리도 없이 6년 세월을 살다가 먼저 한국에 온 큰 아들의 도움으로 10여 년 전에 우리 모두 한국에 왔습니다. 목숨을 담보로 사품치는 두만강물속에 뛰어 들었고 우리를 추격해오는 경비대원들의 성난 목소리도 의식하지 못한 채 최후의 각오를 가지고 떠난 그 길에 성공하여 오늘은 우리가 북한에서 본 외국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 험난한 세월의 풍파 속에서 저희들의 탈북 때문에 덧씌우는 핍박과 감시, 차별대우 속에서 살아가실 어머니와 동생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아무런 불편 없이 살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죄스럽습니다,


  어머니!

  여기서는 매년 5월 8일을 <어버이날>로 정하고 자식들이 부모님께 최고의 선물을 드립니다. 저도 제 자식들한테서 부모대접을 받는데 저는 어머님께 효도한번 제대로 못 하고 불효하고 있으니 참말로 죄송합니다. 저는 여기서 매일 천 원 이상씩 어머님 앞으로 저축하는데 벌써 그 돈이 450만원이 되어옵니다. 미국 돈으로 말하면 거의 5000$에 달하는데 아마도 북한에서 생각해보면 천문학적 숫자에 놀라실 겁니다. 그리고 어머님의 생신날 매해 5월 2일에는 제일 멋있는 옷 1벌씩 장만했는데 벌써 한 트렁크가 차옵니다. 저희 애들이 저보고 “어머니! 그러다가 할머님을 못 만나면......” 나는 그때 “그러면 이 엄마가 하늘나라에 갈 때 다 가지고 가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 꼭 입혀 볼 것이다” 하고 하여 온 가족이 웃음 반, 울음 반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어머님은 늙어서도 안 되시고 더더욱 약해지시면 안 됩니다. 저 역시 어머님과의 상봉에 대한 기대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우리는 꼭 만나야 하고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어머님께 꼭 효도할 수 있게 어머님께서는 오래오래 앉으셔야합니다. 지금은 한국에서 유행어로 9988이라고 하는데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머님은 앞으로 15년은 문제없습니다.


  경의선과 경원선 철길도 곧 열릴 것인데 우리의 기다림에도 꼭 좋은 소식이 올 것입니다. 저한테 맏딸로서 효도할 수 있는 기회를 어머님은 잊으셔서는 안 됩니다.


부디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만나는 그 날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2007. 6. 26.

서울에서 맏딸 숙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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