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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2007/10/12
관리자

 

선생님께 

 신병희


  2007년의 학생들을 보살피고 계실 선생님, 잘 계시죠? 흐르는 세월 속에 이제는 50세를 훨씬 넘기신 선생님, 잘 계시리라 믿고 싶습니다.


  여기는 다 좋은데 날씨가 별로 안 좋아요. 너무 무덥네요. 거기다 비까지 내려 그리운 사람을 더욱 그립게 만드는 날씨예요. 그쪽 날씨는 어때요? 지금쯤이면 무덥진 않아도 비는 여기랑 마찬가지로 내리겠죠? 선생님이랑 농촌동원 갔을 때 비 맞으면서 일하던 생각이 나네요. 그때는 너무 싫었는데... 내리는 비도 싫었고 농촌일도 싫었고 빨리 끝내고 가자시던 선생님도 미웠어요.


  허나 그것마저도 그리움이 될 줄이야... 일하기 싫어서 또 공부하기 싫어서 꾀병도 많이 부렸는데, 다니면서 다툼은 왜 그리도 많이 했는지 선생님의 속을 너무 많이 애태운 것 같아서 후회스럽습니다.


  선생님 저는 남한에서 대학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 남한으로 왔을 때에는 뭐가 뭔지 뭐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남한 사회는 자유민주주의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능력만 된다면 뭐든 해도 괜찮거든요. 북한에서는 토대가 뭔지, 토대가 문제되는 저로서는 아빠의 뒤를 이어 무산광산으로 올라가 돌이나 캐야 한다는 생각으로 앞날에 대한 포부와 꿈도 없이 되는 대로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던 제가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남한에 오니 뭘 해야 할지 당연히 망설이게 되겠지요. 생각 끝에 학벌을 중시하는 남한사회에서는 대학공부를 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보니 내 또래는 아니지만 한두살 아래인 대학생들이 활개치며 다니는 것을 보니 너무나 자유스러워 보입니다. 엉덩이만 가린 짧은 청치마며 찢어진 청바지며 가슴이 보일랑 말랑한 윗옷이며 자유를 뽐내고 다닙니다. 처음에는 같은 여자지만 쳐다보기 민망할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저도 그런 여자애들을 따라 의복이 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북한에서 이런 자유를 찾으려고 한다면 선생님은 물론 주위의 모든 이들이 부르주아풍이 물들었다고 손가락질을 하겠지요. 호상비판 시간이면 우리 반의 그리운 나의 친구들은 날 비판하느라 여념이 없을 거예요. 이것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인가 봐요.


  대학의 교수님들을 볼 때면 선생님 생각이 물밀듯 난답니다. 선생님께서도 이 제자 생각이 나실 런지...


  선생님 어제는 집에서 엄마랑 벽지를 붙였습니다. 원래 집이 큰 것은 알고 있었지만 벽지를 붙이면서 보니 더 커 보이네요. 북한의 저희 집 생각이 납니다. 윗칸에 우리 네 식구가 누우면 꽉 찼었죠. 아랫 칸은 네 식구 밥먹으려고 둘러앉으면 딱 맞았었어요. 밤이면 항상 정전이라 등잔불을 켜놓고 까맣게 되어있었지요. 전구알에 불이 들어온 걸 언제 보았던지 기억이 가물가물했어요. 며칠 전 누워서 그때 그 등잔불을 끄느라 이불을 펄럭펄럭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제는 추억이 됐다고 네 식구가 행복하게 웃었습니다.


  저만 궁전에 온 느낌이라 선생님께 죄스럽습니다. 우리 엄마가 찬물, 따뜻한 물 흘러나오는 수도시설에 대해 여자에게는 너무나 편한 세상이라고 흐뭇해 하셨는데 선생님도 오셨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갑자기 옆에 피아노를 보니 학교 때 학교 피아노를 너무 치고 싶었던 기억이 납니다. 도레미도 칠 줄 모르면서 마냥 피아노 앞에만 앉아있고 싶었어요. 수학선생님이셨던 선생님께는 피아노에 대한 권한이 없으시므로 말도 못했었지요. 근데 지금 저의 집에는 좋은 피아노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괜찮은 피아노가 있답니다. 요즘은 방학이라 기초부터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배울수록 빠져드는 것만 같아요. 하지만 피아노보다 더 빠져드는 드라마들이 밤이면 매일 저를 잡고 있답니다. 어떤 드라마는 내용이 좋아서 보고 또 어떤 드라마는 남녀 배우가 좋아서 보고.


  이런 글 보시면 선생님은 소리 내어 웃으실 거예요. 미소 짓는 선생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서 귀 기울이게 되네요. 그래요, 열심히 노력하여 이 사회에 필요한 한사람으로 학교시절 선생님의 참다운 제자로 부끄럽지 않게 살 것입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우리는 하나원이라는 곳에서 많은 선생님들을 만납니다. 그분들 또한 저희들에게 선생님처럼 따뜻한 모습으로 대해주셨습니다. 저희가 한 남자선생님께 호비라고 별명을 지었습니다. 호비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시는 그 선생님께서는 마냥 좋아만 하셨어요. 저희도 참 짓궂지요... 등산 갔을 때도 쉬자고 하시면 저희는 그냥 간다고 하고 가자고 하시면 그냥 쉬자면서 청개구리마냥 그 선생님의 속도 많이 태웠습니다.


  40명이 되는 저희들을 거느리셨던 선생님께서 얼마나 힘드셨을지 알 것 같네요. 정말 말썽이 많았던 우리 반 남자아이들을 비롯하여 공부도 지지리 못하여 전교 꼴찌만 만들었던 우리 반 여자아이들. 참 저희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지요? 이제는 철이 들어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 전하고 싶은데 돌아보니 너무 멀리에 계시네요.


  선생님께서는 저희들에게 희망의 샘물처럼 자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항상 멈추지 않는 샘물처럼 항상 메마른 곳을 적셔주는 샘물처럼 그렇게 지친 마음들을 적셔가면서 살겠습니다.


  남과 북이 하나 되는 날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떼 날아가는 어느 하늘 밑에서 선생님의 손을 잡고 내가 이렇게, 저렇게 선생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살았노라고 자랑할거예요. 그때까지 우리 선생님 오래오래 사시길 남쪽하늘 밑에서 바랄게요.




병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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