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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그리운 언니에게!2008/10/24
관리자




그리운 언니에게!


김수희



언니!


언니와 헤어진 지도 벌써 5년이 훌쩍 넘었군요.


언제나 다정다감했던 언니를 이 동생은 항상 잊지 않고 있습니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았는데 남들은 우리를 친자매로 알고 있었지요,


얼굴은 물론 억양이며 걸음걸이며 모든 것이 너무나도 같아서 모두가 그렇게 보았는지는 몰라도 저는 언니를 이 세상 누구 보다고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할아버지가 해방 전에 논 몇 마지기 있었고 그 덕분에 아버지도 전문학교까지 다닌 것이 전부입니다. 토목기술자인 아버지는 6.25 사변이후 복구건설시기 밤낮이 따로 없이 정말로 열심히 일했고 훈장도 여러 개 받았습니다. 일 잘한다고 유능하다고 노동계급화 된 인텔리라고 당에서 신임한다고 하더니 당의 정책이 바뀌었는지 어느 날 갑자기 <낡은 인텔리>, <부농의 자식>이라면서 지방에 추방 되였고 그때 저희 온 가족은 헤어졌습니다.



이미 결혼해서 한 가정의 주부가 되었는데 몇 년이 지나고 또 성분평가가 재심되어 저는 안전원 이였던 남편과 이혼했고 단신으로 부모님과 떨어진 탄광마을로 소개되어 왔고 거기서 처음 만나 뵌 분이 바로 언니였습니다. 남들은 평양에서 추방되어 왔다고 하니 무슨 반동이나 간첩과 연류 되였다고 생각하면서 곁을 주지 않았지요.



가지고 간 짐들을 다 정리하고 창고를 살림집으로 개조하여 겨우 생활할 수 있게 되었던 어느 겨울날, 김치 한 바가지, 땅콩 몇 사발을 들고 찾아온 언니는 “동생!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보자, 언니 동생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부모형제, 남편과 자식이 그리워 울고 있는 저를 꼭 껴안아 다독여 주었지요.


평양에 살다보니 갈탄불도 지필 줄 몰랐고 억양이 억센 함경도 말씨도 잘 알아듣지 못해 쩔쩔매는 저에게 모든 것을 차근차근 배워 주면서 힘을 주신 언니!


정말로 고맙고 또 고마운데 저는 그 은혜를 하나도 갚지 못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는 날보다 안 들어오는 날이 더 많은 그곳에서 겨울의 긴긴밤에 언니는 저의 곁에 누워 계시면서 언니가 걸어온 길을 이야기 하며 많이도 우셨지요, 언제나 강하고 인자했던 언니 모습만 보아온 저도 같이 울면서 언니의 옛말 같은 지난 생활을 들었지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아로 살다가 국군포로들이 탄광마을에 무리로 배치되어 왔고 그 중 한분과 한 가정을 이루었다고……. 남편 되시는 분은 참말로 인정도 많고 좋으신 분이였는데 <국군포로>라는 이유 때문에 당에도 입당하지 못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의 최전선에 몰리면서도 싫은 기색 한번 내지 못하였다고...



그러던 남편께서 올망졸망하고 3남매를 남기고 탄광굴이 붕괴되는 통에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갔다고 말하면서 언젠가는 꼭 남편 고향에 자식들을 앞세우고 가려고 악착같이 일하면서 살아왔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중학교 농촌동원에 나갔다가 사고로 언니를 버리고 저 세상으로 갔을 때 언니는 그렇게 외로워 슬피 울었다는 말을 들으며 저 역시 많이도 울었지요, 세월이 흘러 두고 온 저의 아들이 엄마를 찾아왔고 자식들의 성장을 큰 락으로 여기며 우리는 살았지요.



고난의 행군시절, 한 줌의 쌀로 풀죽을 해서 우리는 함께 나누어 먹었고 산과 들을 헤매면서 풀도 뜯어 왔고 가을에는 농장원들한테 쫓기면서 <이삭 줍기>도 함께 했지요. 이삭줍기, 나물 캐기에서 돌아올 때면 내 배낭은 항상 언니보다 작았지만 언니는 이런 나를 보면서 “너도 조금 있으면 나만큼 할 수 있어…….”하면서 내 배낭에 언니 몫을 넣어져서 결국 집에 오면 항상 제 몫이 더 많아져 있었지요, 힘들고 외로웠지만 언니가 항상 곁에서 친 혈육 이상으로 저를 아끼고 도와주었기에 저는 살아남을 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저의 아들이 인편을 보냈는데 중국에 가서 자리도 잡았고 곧 사람을 보내겠으니 엄마도 따라오라 했을 때 저는 너무나도 놀랐습니다. 이 사실이 탄로되는 날이 곧 인생 마지막 길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저는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 버린 것 같았고 이 사실을 알고 어느 순간에 안전원, 보위 원들이 우리 집에 들이닥쳐 나를 체포해 가는 환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저를 찾아온 언니에게 이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 했는데 그때 언니는 “네가 나를 얼마나 믿는지 잘 안다.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말고 사람이 오면 곧 떠나라. 아직은 살날이 많은데……. 나도 너를 정말 보내고 싶지는 않다만 그래야만 너만이라도 살 수 있겠구나. 하면서 쉼 없이 눈물이 흘렀지요. 인편에 보낸 약간의 돈으로 장마당에 가서 빵과 꽈배기 몇 개를 사놓고 우리는 마주 앉았지만 음식물은 입안에서 뱅뱅 돌뿐 목구멍으로는 넘어가기 않았지요, 함께 손잡고 집으로 오면서 우리는 아무 말도 안했지만 앞으로 닥쳐올 상황, 지나온 나날이 서로의 마음을 눈빛으로 충분히 읽었지요. 혹시나 그 누가 우리 집을 감시하지 않는가 하고 언니는 저보다 더 신경을 쓰면서 저를 지켜 주었지요.



몇 일후 찾아온 인편을 따라 제가 떠나게 될 때 언니는 “동생, 절대로 뒤돌아보지 마, 그러면 길을 못 떠나네, 굳게 마음먹고 꼭 성공하길 바라네…….” 하면서 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저를 멀리서 지켜준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들과 함께 한국행을 떠나면서 그동안 중국에서 돈 몇 푼을 다 모아 언니한테 보냈는데 그 인편이 와서 하는 말이 “다시는 오지 말게, 이 늙은이는 아무렇게 해도 살 수 있네. 자네가 피땀으로 번 돈을 보내다니, 내가 어떻게 편히 앉아서 이 돈을 쓰겠나? 부디 내 동생이 무사하길 바랄뿐이네…….”하면서 몹시도 서럽게 울더라고 했습니다. 갔다 온 그 사람은 우리를 친자매인줄 알았고 저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다시 언니한테 사람을 보냈는데 언니는 황해도로 시집간 큰딸이 모셔갔다고 하더군요,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아무쪼록 무사하길 바랍니다.



언니는 통일될 때까지 죽을 권리가 없습니다.


딸과 손자 손녀를 데리고 형부 고향에 꼭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니!


우리는 지금 아무 걱정 없이 살고 있습니다.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서 돈을 잘 벌고 일 년 전에는 며느리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당에서 이혼시키었으나 저의 남편도 그 후 새 가정을 꾸리지 않고 남은 오누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저와 저의 아들이 모진 노력 끝에 지금은 3국까지 왔고 조만간 한국에 올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동안 쌓인 설음과 고통, 외로움이 모두 없어지고 행복만일 차례질 것입니다. 그럴수록 언니한테 죄송합니다.



가장 어려웠던 그 시절 온갖 위험을 가리지 않고 저를 친 혈육처럼 아껴주신 언니를 저는 저의 심장의 고동이 멈추지 않는 한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통일 되는 날 형부님의 광릉에 언니랑 같이 갈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언니 많이 사랑합니다.


부디 건강히 살아만 있어 주세요,


만나는 날까지 안녕히


2008년 3월 25일


한국의 아담한 등지에서 동생 수희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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