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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어머니, 그립습니다2008/10/24
관리자




어머니, 그립습니다


김성진



어머니 이 세상 수억의 어머니가 있지만 저에게는 오직 하나뿐인 소중한 그 이름  “어머니” 란 말을 목메어 불러봅니다.



제가 그 땅을 떠난지 벌써 3년하고도 5개월이 다 되어옵니다. 아프시던 아버지는 좀 괜찮으신지? 출가한 누이동생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군복무 중이던 막내는... 그립고 그리운 얼굴 너머로 연줄연줄 꼬리를 무는 궁금증, 아니 가족의 정에 목마른 이 아들의 안타까움입니다.



어머니!


제가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할 때 기차역에서 온 가족이 눈물 흘리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때는 미처 다 몰랐던 가족의 소중함을 12년 동안 군복무기간 정말 뼈에 사무치게 느꼈습니다. 훈련과 작업이 너무 힘들고 배고플 때...억울한 처벌과 매질이 가해질 때... 병영 뒷산과 병영 앞 시냇가에서 홀로 눈물 흘리며 치밀어 오르는 그리움을 애써 삼켜야 했습니다. 훈련과 작업을 마치고 귀대하는 저녁의 산촌에 감도는 연기냄새, 밥 짓는 구수한 냄새, 집집마다에서 울려나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창가의 불빛, 그 하나하나가 짜릿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학창시절에는 너무도 모르고 스쳐 지났던 가족과의 평범한 일상이 그렇게 애잔하고 절절한 그리움이 되어 가슴을 허볐습니다.



군복무의 연륜이 돌기를 더하고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다시는 추억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의 비정함과 시공간의 무상함에 소스라치게 놀란 적도 많았습니다. 20대 청년으로 겉모양은 성인일지 몰라도 마음속엔 어머니 치마폭을 잡고 칭얼거리던 유년의 세계, 응석과 어리광 , 고집과 말대꾸로 어머니의 애간장을 태우던 장난스럽고 심술궂은 소년의 세계가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어느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인 인간의 속성인가 봅니다. 장남으로 태어나 “맏이는 집안의 기둥이다. 맏이가 잘되야 동생들도 잘 되고 그 집안이 잘 된다”는 훈계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라 어쩌면 사랑보다 책임을, 권리보다 의무를 숙명처럼 감수하며 가끔은(나도 막내로 태어났더라면)하는 생각을 해본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말이지만 손아래 누이동생들이 막내인 남동생을 이뻐 해주는 것을 보면서 (내게도 누나가 있었으면...)하는 생각도 해보았고, 아직도 이루어질 수없는 그 바람은 여전하답니다.



가부장적이고 남성 권위주의적이며 봉건 유교적 관습이 다분한 그 사회에서 부모님의 기대와 사랑, 믿음을 한껏 받으며 유족하지는 못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가정의 장남으로 성적도 우수하고 학교생활도 모범적으로 하면서 구김살 없이 자랐지만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싶은 제 욕심은 그렇게 과했었나 봅니다.



그 사회와 가정적 환경이 저를 “무조건 잘해야 한다. 남들보다 더 잘되어야한다” 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하기도 했습니다. 완벽한 인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렇게 행동하면 남들이 어떻게 볼까? 이런 말을 하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자기 속박의 굴레 속에서 늘 자기 강박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장장 12년 군복무기간 더더욱 외로움 잘 타고, 향수와 애수에 젖어 부모형제와 고향을 그리는 감상주의자가 되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그 긴 군복무를 마치던 날, 고독과 그리움은 영원히 “굿바이” 인줄 알았습니다. 어차피 홀로 왔다 홀로 가는 인생은 홀로서기 인줄 망각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부모님과 형제들, 고향은 어젯 날의 그 모습 그대로가 아니었습니다. 많이 늙으시고 아픈 부모님들...12년 전보다 훨씬 열악해진 집안형편, 출가한 누이동생의 가난, 나무 한그루 없이 자그마한 언덕으로 변해버린 고향 뒷산... 사람도 산천도 어젯 날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이상의 세월 나름대로 열과 성을 다해 “총대로 지켜온” 조국은 아들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가난이 싫었습니다. 가난의 대물림은 더욱 싫습니다. 그리고 장남이지만 부모님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의 무능력과 숨막히는 압제가 싫었습니다. 희망이니 비젼이니 하는 단어 자체가 사치고 오직 내일의 한끼 끼니마련에 집착해야 하는 그 사회의 현실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마침 운명처럼 저에게 건네진 한국행의 기회를 긴 생각할 것 없이 잡았습니다. 나름대로는 북한보다 기회가 더 주어지고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민주주의적 발전과 풍요, 자유가 마련된 남한에서 보다 나은 삶을 살고 부모형제들도 돕고 싶었습니다. 한국행을 결심하고 말씀 드렸을 때, 3일 동안을 식사도 못하시고 소리죽여 3일 밤을 울고 우시던 어머니의 속마음을 그때는 다는 몰랐습니다. 지금도 다는 모릅니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다 알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러시아 속담에 “어머니의 마음은 아들에게 가 있고 아들의 마음은 초원에 가 있다” 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사랑이 그렇게 유별나시던 어머니에게 있어서 자식과의 이별은 살을 저미고 뼈를 깍는 아픔과 고통이 된다는걸 불효한 이 자식이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자라면서 어머니 잔속을 많이 태웠을망정 성적 상위권에 항상 들고 다른 애들이 다 피워보는 담배 한 대도 안 물어 봤던 저입니다. 군에서 이를 악물고 동기들 먼저 입당하고 군관도 되었습니다. 너무 대견해하고 기뻐하시면서도 당신이 부모구실을 못해서 그렇게 가고 싶던 대학에 못가고 군관이 되었다면서 미안해하고 속상해 하시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믿는 도끼 발등 찍는다” 고 했지요?



그러나 그때 저는 남한에 와서 성공하고 부모형제들을 도와주는 것이 효도하고 장남으로서의 구실을 다하는 길이며 당시 상황에서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책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탈북과정에서의 위험과 남겨진 분들의 신변문제나 불안감, 이별의 아픔등은 대의를 위해 일정 정도는 감수해야 할 기회비용 같은 것으로 치부해 버렸습니다. 얼마나 철없고 단순한 생각입니까? 그 땅이 어떤 곳인데... 남북한 간의 분단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어떻게 알고?



어머니 기억나세요? 떠나기 전 제가 “어머니 앞날을 기약 못하겠기에 입빠르게 장담 같은 건 하지 않겠습니다. 절 믿으시죠? 지금 힘들더라도 참고 믿고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라고 했던 것 말입니다. 저 지금 여기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중국과 동남아를 거치는 15개월의 긴 여정 끝에 한국행에는 성공했지만 도착하자마자 그렇게 믿었던 아내와 이혼하고 집도 없이 여기저기 떠돌며 식당일과 아르바이트로 연명했습니다. 배신감과 증오, 분노와 고독, 절망감 때문에 모진 마음도 먹어보았습니다. 눈물도 참 많이 흘렀습니다. 하늘도 무심하다며 헛된 욕도 해보았습니다. 아무런 기술도 없고, 저학력이라서 언어나 문화적 차이 때문에 차별도 받아 보았습니다. 그렇게 소망했던 대학 입학시험에서 여러 차례 고배도 마셨습니다. 혈혈단신 이 땅에 와서 저나 다른 분들이 겪은 몸 고생, 마음고생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때마다 북한에 계신 부모님과 동생들을 생각했고, 어머니와의 약속을 상기했습니다. 물론 제 운명이 소중했음은 두말 할 것 없었고요.



어차피 제가 선택한 길입니다. 되돌릴 수도 없고 되돌려서도 안되는 제 운명의 길입니다. 제가 떠난 후에 어머니가 그렇게 가슴아파하고 후회하시며 몇 달을 줄곧 앓아 누워계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국물을 먹어도 같이 먹고 살아야 할 것을... 못난 부모 만나서 그렇게 하고 싶어 하던 공부도 못하고 부모 곁을 떠나 그 험한 길을 떠나게 만들었다시며...



그곳에서 대학 못간 것이 왜 어머니 탓입니까! 모든 선택은 제가 다 했는데... 군복무는 의무복무였고, 아무리 제 의견을 존중한다 하더라도 그때 가지 말라고, 안된다고 속시원히 말씀 하시지 그랬습니까.. “부모도 다 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가는 그런 나쁜 자식이 어디 있냐?” 고 어릴 적 어머니 말씀 안 듣고 애태우던 그때처럼 매도 들고 욕도 하시지 그랬어요. 어머니의 자식사랑에 천만분의 일도 헤아리지 못하는 이 못난 아들 때문에 그렇게 마음 아파하시고 괴로워하시면서 왜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으셨습니까? 홀연히 처가식구들과 사라져버린 저 때문에 보위부의 조사와 감시, 시달림을 받아 몇 년은 더 늙으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혼자 울었습니다. 몸의 한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그런 아픔을 느끼시면서도 굳이 붇잡지 않고 “그래, 너희들이라도 거기 가서 잘 살아라 하시며 흔연히 떠나보내신 어머니... 그리고는 그 아픔, 그 고통의 백분의 일, 천분의 일도 안되는 제 외로움과 어려움. 슬픔이 부끄러워지는 건 그 때문입니다.



북한에 있을 땐 먼 다른 세계의 이야기, “남”의 일이던 이산가족의 슬픔과 고통이 이제는 우리 가족의 것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하고 온 가족이 저 때문에 그곳에서 항상 불안 속에 떨게 만든 이 아들, 엎드려 용서를 빕니다. 무슨  로 사죄드리고 무엇으로 다 보상해 드릴 수 있겠습니까? 부모형제들에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큰 죄를 지은 이 몸. 여기서 정말 열심히 살아 조금이라도 그 죄를 씼고 싶습니다.



모르고서는 한발 짝도 움직일 수 없는 이 사회에서 어떻게 하나 배움의 꿈을 이루어보려고 전문대학에 입학 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꼭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렵니다. 헌신적 사랑과 희생위에 오늘이 존재함을 항상 명심하렵니다. 명예와 부, 화려한 성공의 금자탑은 당장 쌓아올리지 못해도 항상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이 사회정착의 기초를 닦고 당당한 일원이 되겠습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저를 낳아주시고 바르게 키워주시고 이 세상 살아나가는데서 가장 기본적인 인성과 교양을 주셔서...



제 인생의 자양분이 되어주셔서 그곳에서 군복무 할 때나마 이곳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고 외로울 때도 포기와 타락의 길에 들어서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바람이 어디에 가 있든 이 아들이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사랑이고 마음 이라는걸... 어머니의 희생과 그 바람이 헛되지 않게 부단히 채찍질하고 수양하여 탈선했다가도 다시 궤도를 수정하고 넘어졌다가도 백번 다시 일어서는 부끄럽지 않은 그런 사람을 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통일의 그날 부모형제들 앞에 떳떳이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다시 만나는 날 어머니 무릎에 지치고 힘든 이 몸 기대어 어린 날의 자장가도 듣고 바래지 않은 젊은 시절의 솜씨로 만들어 주신 음식도 먹고 싶습니다. 자나 깨나 이 아들 걱정에 잠 못 이루시고 뜬 눈으로 긴 밤 지새우실 어머니. 다시 만날 그날까지 부디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앉아계십시오.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



2008.3.10 서울에서 아들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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