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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친구들에게...2008/10/24
관리자



To: 친구들에게...


허영철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려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 종종 부르던 노래 중의 하나였지?...


누구에게서 배우든지 이 노래는 북한에서도 대중가요 중의 하나였지만 여기 남한에서도 이 노래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거 같아... 나는 이 노래를 어머님에게서 배웠었다. 아버님, 어머님 두 분 모두 고향이 남쪽 끝이어서 그런지 즐겨 부르시곤 하셨다. 살아생전에 그토록 바라고 바라셨던 두 분의 염원이 담긴 노래여서 그런지 지금도 가끔 이 노래를 혼자서 흥얼거리곤 한단다.



그리고 1998년 여름에 행방불명 된 형들을 찾겠다고 단신의 몸으로 두만강을 헤엄쳐 건너서 5년 동안의 중국에서의 방랑 생활과 2002년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지금까지 10여년에 이르는 타향살이 동안 나는 항상 이 노래를 혼자 부르면서 고향을 그리워했고 "짜개 바지"시절부터 친구였던 너희들을 못 잊어 하였다.


모두 잘 지내고들 있지?


공부 안한다고 매일같이 선생님들에게 야단맞던 형규, 그때마다 넌 "조선 인민군대"에 간다고 큰소리 뻥뻥 치다가 학교 졸업하자마자 군대로 갔잖아... 학생교복 대신에 군복을 입고 우리 집 찾아와서 이별의 인사를 나누던 기억이 나는구나.. 그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제대로 된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떠나보냈던 것이 지금도 마음 한편에는 미안함으로 자리 잡고 있구나.. 아버지가 <안전원> 이었던 덕에 어렸을 때부터 권총을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던 형규..


해군에 입대한 네 형 모습이 부러워 너도 군대 가면 해군에 갈 거라며 여름만 되면 강에서 살았었지……. 그리고 "원숭이"도 잘 있는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 추천해 준다고 선생님들이 그렇게 말려도 군대 간다고 고집피우면서 철봉 죽어라 하던 친구 있잖아?


철봉, 평행봉 매일 밤 혼자서 연습하고 익혀 막힘없이 너무 잘해서 방과 후 우리들의 유일한 볼거리(?)를 제공해 주던 친구, 나중에 "원숭이" 라는 그럴듯한 닉네임도 가졌지만...


학교 졸업한지, 아니 너희들과 헤어진 지 12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너희들 이름하며 얼굴들이 기억이 난다.



아마도 북한의 교육 환경상 컴퓨터를 통한 온라인 게임을 접하지 못하여서 우리들의 유일한 놀이 이었던 제기차기, 말 타기(여기서는 말뚝 박기라고 하더라.)등 주로 격렬한 스킨십을 요구하는 놀이를 통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깊이 각인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우리들에게 "김부자 를 위한 충성"을 매일같이 가르치던  학교의 모습은 그대로인지...


숙제를 안 해왔다고 애태우던 선생님들의 머리에 흰서리는 내리지 않았는지...


가끔씩 산에 오를 기회가 생길 때마다 북녘 하늘을 바라보면서 맘속으로 선생님들의 건강과 평안을 맘속으로 빌곤 한단다... 고향을 떠나보니 고향의 소중함을 알겠더구나...



그리고 차츰 알게 모르게 내 맘속에 고향에 대한 자긍심 같은 것도 생기고  학습에서 나태함을 보일 때마다 망설임 없이 "매"를 드시던 선생님들이 그렇게 보고 싶을 수가 없더라... 북한에서도 그랬지만 사실 우리 학교만큼 학생들을 위한  체력 단련 시설을 꾸려놓은 학교가 별로 없어... 좀 쌀밥 먹게 됐다고 뻐기는 중국에서도 보지 못하였고 여기 남한의 중, 고등학교들에도 그런 시설을 만들지 못하였더구나... 이런걸 보면서  선생님들과 선배들의 후대 교육을 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그 기대에 부응해야 겠다는 도전의식 같은 것이 생겨나더구나...



나는 지금 남한의 5대 명문 사립대학 중 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우리가 96년도에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공부를 잘했던 몇몇 친구들은 상급학교에 진학 할수 있었잖아..? 성적이 우수해서 "김일성 종합대학"에 간 친구도 있었고, 전자통신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머나먼 타지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겠다며 봇짐 싸들고 학구열에 불타서 고향을 떠났던 친구들이 몇 달 만에 축 늘어진 어깨들을 하고 고향으로 하나, 둘씩 돌아오기 시작했었지...



왜 돌아왔냐고, 왜 학업을 포기했냐고 다그치는 물음에 너희들 대답은 하나같이 기숙사 생활 여건의 말도 못할 열악함을 이야기 하곤 했었다. 그때 한창 북한 전국에서 시행되던 고난의 행군 노선에 따라 대학교 기숙사들에서도 학생들 끼니를 질과 양에 있어서 기준치에 훨씬 미치지 못한 수준으로 공급하고 있었다고 하나같이 이야기 하던 것이 기억나...



밥공기 절반을 조금 넘는 강냉이밥과 소금 국물 ,무절인 것 몇 조각 그것으로 허기를 달래며 그래도 공부를 하겠다고 버티다가 결국에는 "영양실조"에 걸려 더는 학업을 계속할 수 없어 학업을 포기하고 "生業"의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장사하러 다니기 시작하고... 나 사실 이렇게 서면으로 너희들에게 공개용서 구할 것이 하나 있다.



중국에 들어와서 힘든 방랑의 시기를 거치다가 어느 선교사님 도움으로 한 2년간 중국어와 컴퓨터 그리고 세계의 최대 교단을 자랑하는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배울 기회가 생겨서 밥 먹고 공부만 하는 시기가 있었어... 그 선교사님 vision 은 중국에 나와서 유리방황하는 탈북동포들을 돕고 그중에 인재들을 선발하여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전도하고 가르쳐서 무너져 가는 북한 땅을 재건하는데 합당한 인재들로 키우려고 하였었다. 기간은 3년으로 정하셨는데 나는 그중에 2년을 공부하였지만... 그 공부하는 도중에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북한에 있을 때보다 월등한 대접(?) 을 받으며 분에 넘치게 공부까지 하게 되었는데.. 그 목적은 북한을 재건하는데 있어야 하는데... 내가 혹시 중국의 풍요로움에 익숙해져서 가난과 고통의 북한 땅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선교사님하고 상의하여 허락을 받고 강이 얼어붙은 겨울에 고향을 몰래 갔었다...


그때 고향 기차 역전에서 몇몇 낯익은 친구들 얼굴을 보았지만 차마 알은척을 할 수가 없더구나... 고향에 도착하여 먼저 만났던 게 "원숭이"였는데 (원숭이도 나를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음. 중국에 나와서 3년 있는 동안 내 외모가 많이 변했던 거 같아..) 하는 말이 내가 행방불명 됐다. 중국으로 도망갔다더라. 머 이런 소문이 나 돈다고 하기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고향에서 볼일 다 보고 다시 중국으로 들어오려고 기차 역전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그때 까지도 "生業"의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던 너희들이 기차역에서 찬 강냉이밥에 김치를 찢어 먹으며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었다...



나는 보니까 너희들 모색이 하나도 변하지 않아서 한눈에 다 알아보았는데 너희들은 옆에 서있는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더구나...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끼리 회포도 나누지 못하는 현실이 못내 야속하기도 했었다.


용서해라 ! 친구들아~


너희들을 알아보면서도 알은척을 못하고 뒤 돌아 서야 했던 나를...


지금까지 지내왔던 이야기들을 쏟아놓자니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해야 할지 분간이 잘 가지를 않는구나...


그간에 겪었던... 죽을 만큼 힘들었던 상황들과 그 상황들을 이겨낸 이야기들, 또 세상은 참으로 넓고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귀중한 가치라는 자긍심을 심어준 사람들, 나에게도 희망과 꿈을 꾸어야 한다고 도전 의식을 심어준 사람들...모두 열거하자면 끝이 없기에 내 인생의 향로를 바꾸어 주었던 사건들, 사람들만 먼저 얘기해 보련다.


지금 남한에는 1만 5천 명가량의  탈 북민 들이 정부의 관심어린 정책과 교회, 인권단체들의 지원 활동 속에서 "김부자" 정권하에서 받아보지 못했던 자유와 인간의 소중한 권리를 찾고 누리며 살고 있단다.


35세를 기준으로 공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대학에도 보내주고 정말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은 의대, 한의대에도 입학하여 공부를 하고 있단다...


이미 한의대를 졸업하여 개인병원 차려서 돈 잘 벌고 있는 선배들도 계시고....



내가 처음 중국에 나와서 느꼈던 것이 무엇인지 아니?


풍요. 이 두 글자 속에 내 느낌이 다 담길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엄마 품에서 젖을 떼면서부터 배우던 말 "세상에 부럼 없어라“ 는 중국의 현실에 더 잘 맞는 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풍요-여기는 농사짓는 농부들의 남아도는 “시간”의 풍요가 있었고 농사가 잘 돼서 쌀이 남아도는 풍요가 있었고 등소평 주석의 개혁개방 정책 덕분에 외국문물이 도시, 농촌 곳곳에 퍼져있는 “풍요” 가 존재하고 있었다...


중국도 체제는 “사회주의 체제”인데 같은 체제아래서 중국은 잘 살고 북한은 못살다 못해 대량의 탈북자 발생 사태를 낳고... 모순된 현실 속에서 그 원인이 어디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질문 하면서 많은 시간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내린 결론이 “불법 월경” 이지만 이렇게 외국에 나와 있을 수 있는가도 기회라는 생각에 이 기회에 좀 더 많이 보고 좀 더 배워서 내 자신의 식견을 넓히려고 하였다.


그러던 중에 “선교사” 님을 한분 만났는데 우리가 배웠던 “땅에 떨어진 사과 한 알 때문에 어린 아이의 이마에 청강수로 도적 이라고 새기는 사악한 악당”이 아닌 북한 땅을 가슴에 품고  죽어가는 그 땅을 살리려는 “사랑”을 품으신 따뜻한 분이셨다.


“인권”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저 “당”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가에 익숙해진 우리들을 매우 안쓰럽게 여기면서도 한번도 “김부자” 비방하는 얘기나 미워하는 얘기를 하지 않고 그 악순환의 고리를 우리가 끊고 대물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늘 말씀해주곤 하였다.


“그리스도 교”는 “사랑”을 말하는 종교이다.


“남, 여”간의 사랑이 아닌 그보다 훨씬 더 큰 개념인 “아가페 적인 사랑”을 얘기하고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인” 들이고 이런 분들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이다.


2년을 이분과 같이 먹고 자고 배우고 하면서 그동안 한국에서 <단기 선교>형태로 중국과 북한 땅을 위해 기도하려고 중국에 나오는 한국 대학생들도 만나보았다.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피를 나눈 친지가 아님에도 한 동포라는 의미 안에서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를 수 있는 교인들이라는 의미 안에서 우리는 갈라져 반세기가 가져온 모든 반목과 질시, 왜곡된 관념들이 아무 소용없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우리는 갈라져 결코 살수 없는 한 가족 같은 관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에 적을 두시고 선교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만나보았고 그러한 만남을 통해  사람은 많이 배워야 갰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에 오게 된 계기나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에 얘기하기로 하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남한 생활에 대해서 간단히 얘기하마...


내가 한국을 향해서 길을 떠났던 때는 2002년 월드컵이 한창 남한에서 진행되고 있을 때였어...중국에서 더 이상 머무룰수 없는 형편이 돼서 한국으로 갈려고 했던 것인데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할 때마다 우울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더구나..


다른 사람들은 한국정부에서 집도 주고 정착금도 주고 한다니 그저 좋아하는 눈치들이었는데 나는 한창 꿈꾸고 공부하다가 그 모든 것을 엎어버리고 또 다시 새 터전으로 가야하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그저 암담하기만 하였다.


북한에서 “재일북송교포”들 대우하던 것처럼 남한에서도 “탈북자”들을 대우하면 우리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개인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었고..


그래서 한국 정부에서 대학교 공부를 희망하는 젊은이들은 원하는 대학에 보내준다고 하는데도 공부해봤자 인정받지 못할 거 그 시간에 “돈”이나 번다고 생각하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을 강요하지 않아서 좋아...단지 자신의 “노동”이 없으면 그만큼 가난하게 살게 되겠지?)


식당 홀 써빙 이라고 음식 주문받고 날라주는 아르바이트를 하였는데 같이 일하던 형들이랑 아주머니들이 나의 잘못된 생각을 많이 고쳐주었다..


이 사회는 개인이 노력한 만큼 살게 돼 있으며 피나는 노력에는 그에 상응하는 보답이 꼭 주어진다는 원리를 틈이 날 때마다 나에게 얘기해 주셨지...


그리고 학력위주로 돌아가는 사회현상을 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졸업자 이상인 것을 보면서 나의 잘못된 생각을 알게 되었고 공부 시켜준다고 할 때 해야 겠다고 결심하고 대학교로 오게 되었다.


나의 대학생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자.


끝으로 우리가 북한에서 고등중학교 시절 선생님들이 그렇게 얘기하던 “김정일 장군님”의 영도 따라 이루어지는 “적화 통일”은 한낱 백일몽 에 지나지 않더구나...


외국에 나와 조금 넓은 세상을 보니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장군님”은 지금 세계적으로 거의 “모서리”(왕따) 급에 해당하는  “황당한 분” 이시더구나..


중국 한 개 省 의 절반보다도 더 작은 땅에서 2천만 국민들 위에서 자신이 제일 잘 났다고 큰소리 잘 치는 골목대장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가 있어야 “당”이 있고 “조국”이 있고 “인민”이 있다던 그 아버지 “김일성”의 정신세계를 그대로 이어받아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


요즘 들리는 소문에는 북한에도 중국 문물 뿐 아니라 남한 VDO, 음반 같은 것들이 밀매거래가 이루어진다고 하던데 너희들도 많이 보고 깨닫고 안목이 넓어졌으리라고 본다.


일부 열렬한 선교사 들 덕분에 성경도 북한으로 들어간다고 하던데 너희들도 기회가 된다면 성경을 읽어보길 권한다.


신앙을 가지면 우리가 알지 못하던 세계를 알 수 있고 우리가 가진 능력 밖의 일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체험했다.


한반도 땅의 통일은 역사의 주관자 이신 “하나님”이 남한과 세계 각국에서 매일같이  부르짖는 동포들의 기도를 들어 응답 하시는 날 분명히 “평화 통일”을 선물로 주실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날을 위해 너도 나도 준비된 사람이 되자 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하여서 우리가 이 땅에 살다간 흔적을  후대들에게 남겨주자!!!



              2008년 3월의 끝자락에서 옛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 꽃망울이 가득한 서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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