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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아들 욱이에게 전하련다.2008/10/24
관리자



그리운 아들 욱이에게 전하련다.


장용철



욱이 내 아들아 그동안 어떻게 지내는지?


너와 헤어진지도 벌써 3년이란 기나긴 세월이 지났구나.


아들아!


네가 부모 없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아나 있는지 아버진 자나 깨나 네 생각밖에 없구나.


정말 보고싶다.



욱이야!


그 생지옥 같은 보위부 감방 생활과 보안서 생활에서 쓴맛을 볼대로 보고 사람대접도 못 받는 북한 땅에서 혼자서 사는 너를 생각하니 말라버렸다고 생각했던 눈물이 대한민국에서 다시 봇물 터지듯 터져 울고 또 울었단다.



보고 싶은 내 아들아!


네가 없던 2006년 할머니를 그곳에서 잃고 유선에선 청진으로 가라해 갔고, 청진에선 회령으로 다시 가라해서 아버진 어디서 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니 조상묘를 다 관리하면서 살아온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다는 모를꺼야. 너는 알거다. 아버지가 중국 땅을 넘어 갔다가 잡혀 감옥에서 1년간 죽음에서 살았고 네 할머니와 네 고모의 감금으로 1년간 여유가 있었던 것이 복이 되여 나는 중국, 미얀마, 라오스, 태국을 거쳐 5년간의 타국살이 끝에 오늘날엔 대한민국에 자리를 잡게 되었구나. 그 과정을 글로 쓰자면 소설을 써야 될 것 같다. 그래도 너에게 간단히 경로를 적어 보내려고 한다.  



너와 헤어져 9월 유선에 갔다가 회령시내로 친구의 도움으로 비 내리는 두만강을 대낮에 혼자 넘어 해발 1,000m을 훨씬 넘는 산줄기로 올라 이틀을 걸어서 개산툰에 도착하였다. 보름 간 남의 집 일을 해주면서 몸을 추스른 다음, 걸어서 룡정시 삼봉동 우리가 붙잡혀갔던 집에 가보니 그놈의 자식은 없고 딴 사람이 살더구나. 영철, 철수 이놈들 다 잡아 원을 풀어보자고 차 한 번 타지 않고 조양천진에 가보았으나 이미 거기에도 없었단다. 그 놈들을 잡자고 연길까지 산을 타고 걸어갔지만 그들은 없었고 해서 리영억형한테 한국 가는 선을 부탁했거든. 그리고 먹고 살아야 하니 화룡시 목재 가공공사에서 일하면서 소식을 기다렸더니 밤중에 사람(리영억)이 택시를 타고 와서 2006년 6월 8일 연길에서 북경으로 버스를 타고 2일간, 북경-곤명- 곤명- 미얀마, 미얀마에서 무릎 뼈가 어긋나 다른 사람들이 참대로 지팽이를 만들어 메콩강 강에서 배를 타고 태국이란 나라에 왔다고 내려났는데 그곳이 미얀마였구나. 그것도 모르고 태국 수도 방콕까지 가야겠다고 걸어가다가 경찰에 단속되었는데 알고 보니 미얀마였다. 말이 통하지 않아 한국말로 하니 라오스에 밤에 배로 넘기겠다고 했는데 내가 갈 땐 가더라도 저녁이나 먹고 가자고 해 저녁을 먹으며 술을 사서 경찰들에게 먹여 그들이 취했을 때 다른 사람 둘도 도망쳤지만 알다 싶이 다리를 다쳐 얼마 도망못가고 다시 경찰에 붙잡혔단다. 그때 그 사람과도 헤어졌고 경찰들은 나를 라오스 땅에 버려두고 돌아갔단다.



참, 낯선 타향에 혼자의 몸으로 그것도 한 다리를 끌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앞이 캄캄해 좀 쉬었다. 1시간 오솔길로 철조망을 따라 걸으니 뜨락또르가 오더군, 무작정 길을 막고 세워서 말이 통하지 않아 안타까워 코리아라고 소리치니 북한 사람인 것을 알더라, 그분의 밭으로 가서 천막에 들어가니 그분의 점심사온 밥을 먹고 손짓으로 대화하면서 아버지의 다리를 위해 기도하며 염불을 외우며 안마해 주더군. 나와 언어가 안통해도 더 잘 이해하고 동정하며 끔찍이 생각하는 첫 번째 벗 이였거든.



그분이 산을 넘어 큰 길까지 부축해서 큰 길까지 태워져 그곳에서 큰 트럭이 오는 것이 보여 무조건 막아 세웠지. 30대의 운전자더군. 손짓으로 다리가 아파 걷지 못하니 좀 태워 달라 무조건 올라탔지. 손짓하며 1시간가량 담배를 권하면서 강을 따라 돌아갔었지. 그곳에 작은 시내였는데 내리라면서 돈을 내라더군, 내가 북한에서 오는 게 무슨 돈이 있겠냐며 생떼를 써서 내렸는데 그 사람도 나 때문에 20리가량 더 태워줬거든. 할 수 없이 차를 돌려 되돌아가는 거야. 생각이 많았지. 아직 갈 길이 한없이 많고 많은데 돈을 아껴야 했거든. 그곳에서 메콩강가로 내려가 상점집 주인을 만나 배를 타고 태국까지 가야한다고 손짓하니 이해 못해 그 윗집 한족 사람 사는 집에 데려다 주더군. 한족은 조선말 전혀 모르니 아버진 약간 아는 한족말로 대화를 나누니 리해하는거야.



중국 땅에서 라오스에 온 식구가 망명해사는 한족 이였지. 그분이 하는 말이 망명객이니 나를 재울 수 없다며 건너면 숲에서 자라고 자리를 마련해 주니 그곳에서 여러 밤을 잤지. 그러던 어느 날 숲속에서 온 밤 비를 맞으며 물에 빠진 병아리신세가 되어 다음날 아침이 장날 이였지. 그 중국집 앞마당이 주 장마당인데 미얀마 사람들이 배를 타고 상품을 싣고 강을 건너와 장사를 하고 오후면 배를 타고 자기 나라에 가더라. 그래 주머니에 있는 모든 돈을 다 털어 고깃배가 집으로 가는 사람을 만나 목숨이 위험하지 않는 가고 물었더니 경찰이 낮에 없기에 마음 놓으라며 폭이 700m 정도인 강을 무사히 건너 태국 땅에 도착했지.



태국에서도 돈이 없어 주변사람들에게 손시늉으로 사정하다 그만 그곳 경찰에 붙잡혔지, 그래도 다리가 부러진 내 모습이 애처로워 놓아주었다. 그곳에서 겨우 버스를 얻어 타고 태국 수도로 향하던 중 말이 통하는 화교를 만나 내가 조선 사람인데 한국까지 가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두 손 모아 경찰이 잡아간다는 거야. 잡아야 일없다. 초소에서 경찰이 버스에 올라서 검열하였지. 자는 척 했는데 기어이 깨워 걸렸지. 내려서 확인하겠다는 거야 어디에서... 무작정 내려 놓는 거야. 운전기사도 말했지만 안 들어주는 거야. 그곳 대장을 만났지. 못 간다는 거야. 경찰서에 호송되여 감옥에 잡혀들어 갔지. 들어가면서 나는 무조건 수도까지 가야한다면서 웃으며 손짓하였지.



다음날 아침 나오라면서 가라는 거야. 두 손 모아 고마움을 표시하고 나오는데 차를 대더군. 타라는 거지. 다시 도로 경비중대까지 와 그곳 대장한테 인계하고 가더군. 그곳에서 3시간 기다려 버스에 돈이 없다고 하고 100원 대장한테 받아 버스차비 물고 떠나 방콕 수도로 왔다했지. 경찰하고 수용소로 모이니 이곳이 수도가 아니라 여기서 갈라하니 저녁 9시 때나 다음날 새벽5시 도착한다는 거야. 표를 사자고 하니 160원 내라하더군. 없다고 했지. 그러면 못 간다는 거야. 뒤돌아와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다가 어제 버스표를 가지고 매표소에 가서 보여주니 그 표로 그냥 가라고 하더군. 일이 잘되었지. 떠나서 다음날 새벽 방콕 수도까지 무사히 도착. 택시타고 이민국에 태워달라니 내 가방을 들어주면서 차에 타라는 거지. 5분이면 간다면서 탔지만 1시간 돌아다니다 내려놓으면서 왕궁을 가리키며 저게 수용소라는 거야. 정문 앞까지 태워다가 그러면 거기에 돈을 꿔서 주겠다고 하니 경찰서로 가자는 거야. 가자했지. 재판에 접했지. 태국의 교원 한국어 교원인 처녀가 통역을 해서 45일 국제 감옥생활 재판받고 그 처녀선생이 이 사람 다리가 꺾이었는데 감소해달라고 재판장한테 빌어 20일로 판정되었지. 이렇게 국제 감옥 20일 살고 이민국 수도 넘어다 2006년 10월 19일 드디어 대한민국 인천 비행장에 착륙 하여 성공한거란다.



욱이야 내가 왜 이글을 써주는지 알겠지? 아버진 너를 기어이 아버지 품으로 데려오고 싶으니 너도 이 길을 걸을 걸 각오하여라. 사람을 보냈으니 곧 잘 되리라 믿는다. 앞으로 상봉의 그날 그리며 꼭 성공할거야. 우리 다시 만나 통일된 그날 다시 추억하며 대한민국 국민답게 부자 되어 잘 살아보자. 그리운 아들 욱이를 그리며 이만 서신 하련다. 만나는 그날까지.



2008년 3월 23일


안녕히 건강히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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