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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그리운 부모님께2010/01/06
관리자

[금상]


   

그리운 부모님께


김준영


   


아버지, 어머니...


생각할수록 가슴속 가득히 차오르는 그리움에 목메어 오늘도 맘속 깊은 곳 저변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격정의 떨림으로 가만히 속삭여봅니다.


   


안녕히 계신지요?


오늘은 경칩, 서울의 하늘에선 저녁 내내 하염없이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잠들 줄 모르는 캠퍼스의 밤, 도서관 창 밖의 낙수소리가 이 밤 따라 더욱 가슴 속을 파고들며 가까스로 잠재우고 있던 그리움의 금선을 울려놓고야 말았습니다.


   


그리움과 격정의 파도가 밀물이 되어 평상심과 자제의 “둑”을 넘는 이런 밤이면 의례히 뒤척이며 잠 못 이루곤 합니다. 부모님의 심정은 이 아들보다 몇 백 곱절 더 하시겠지요?


“지척이 천리”라더니 서울에서 차로 달리면 반나절 길밖에 안 되는 거리에 부모님이 계시지만 뵙지 못하고 소식도 못 전한지 벌써 4년째 되어옵니다.


   


저는 여기 서울에서 건강한 몸으로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 곳에서 이루지 못한 학업의 꿈을 이루고자 대학 강당에서 띠동갑보다 더 어린 학생들과 나란히 앉아 지식의 탑, 남한사회정착과 인생의 기초를 하나하나 쌓아가고 있습니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늦깎이 대학생활을 하자니  면구(송구)러울 때도 있고 여기 학생들과의 문화적 차이, 세대차이의 “벽”을 절감할 때도 많지만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하는 즐거움은 그런 것들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감사한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 사회의 오늘을 위해 땀 한 방울 흘리기는커녕 왜곡되고 뒤틀린 선전과 교육의 포로가 되어 언젠가는 숙명의 한 판싸움을 벌려야 할 계급적 원수들의 총본산으로 오인한 채 대결의 현장에서 장장 12년을 군인으로 살아온 저에게 같은 민족이고 제 발로 찾아왔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이 나라는 보금자리를 주었고 새 생활의 꿈과 희망과 도전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등록금과 장학금지원까지 받으며 학업에만 정진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고등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대학예비시험에 합격했지만 신체검사통과자들은 모두 군에 입대시키는 바람에 다음을 기약해야 했고 90년대의 국가적 파국과 부모님의 갑작스런 병환으로 인한 한 가정의 몰락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면서 대학진학의 꿈을 접고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저입니다.


   


철없는 열일곱 나이에 시작된 군복무는 성장발육과 배움의 황금기인 20대 청춘이 다 소진된 서른이 되어서야 끝났었죠. 중세조선의 변방 수(戍)자리생활도 아마 그렇게 길고 고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10~13년의 병역기간에 정기휴가는 고사하고 외박도 없는 군 생활에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고된 훈련과 작업, 농사일에 내 몰리다보니 대부분의 병사들이 영양부족과 건강악화로 병들어 갔고 일부는 잘못되기도 하였었습니다. 고생 끝에 전역하고 사회생활의 첫 발을 막 내디디려하던 그때, 얄궂은 운명의 희롱은 저를  다시 한 번 선택의 갈림길에 세웠습니다. 아직은 인생의 쓰고 단 맛을 다 보지 못해 “겁도 없고” 한창나이의 젊음을 연소하며 정열과 도전정신에 충만해 있던 저였습니다.


   


한국행...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때 어떻게 그리도 선뜻 결심할 수 있었는지 스스로도 놀라울 뿐입니다. “모범생의 변신은 무죄”라 항변하며 제 자신의 일탈을 합리화할 생각은 없지만 그때의 제 선택과 결정에 후회는 없습니다.


   


만남은 물론이고 생사도 기약할 수 없는 먼 길을 떠나보내시는 어머니의 가슴 찢어지는 고통과 너무 우셔서 퉁퉁 붓긴 얼굴을 애써 외면하며 저는 떠났었습니다. 격한 것이 왈칵 치밀어 올라 눈물이 솟구치려 했지만 군에 입대 할 때처럼 나약한 눈물은 보이지 않으리라 모질게 마음 다잡으며 그렇게 성큼한 보폭으로 길을 재촉했었습니다.


   


“모름지기 사내란 대의명분을 위해 사사로운 인정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하니라”...


그때 아마 옛 성현의 이 말을 생각하면서 제가 마치 세계정복의 길에 나서는 칭기즈칸이나 나폴레옹이라도 된 양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쯤은 아셨겠지만 “다녀오겠습니다”는 여느 때처럼의 인사말을 남기고 떠날 때 아프셔서 영문도 모르셨던 아버지는 웃으시며 “그래, 빨리 들어오너라”라고 하셨었죠. 어머니얼굴을 타고 내리던 눈물과 아무것도 모르신채 어린애마냥 맑게 웃으시던 아버지의 엇갈린 그 미소가 떠오를 때면 더더욱 가슴이 미여지군 합니다.


   


전전긍긍, 노심초사...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질려 맘 순편한 날이 없었던 중국에서의 1년과 동남아에서의 4개월.


   


1년 남짓의 긴 여정 끝에 3년 전 드디어 서울에 도착했을 때 저는 그날이 생각 키워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고야 말았습니다. 그렇게 떠나와 자리 잡은 이곳은 인간생활의 세 가지 기본요소를 “식의주(食衣住)”라 고쳐 부르며 당과 국가가 “먹는 문제”의 우선적 해결을 떠들었어도 90년대 중반이후 수많은 아사자를 속출시킨 그곳에 비해 멀찍이 앞서 기본적인 의식주문제가 해결되고 하루가 멀다하게 생활의 편리를 도모하는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곳입니다.


   


국가의 이익보다는 개개인의 행복과 인권이 더 우선시 되는 사회가 바로 한국입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간존엄과 자유, 평등이 진리와 상식으로 인정되고 거목처럼 튼튼히 뿌리내리고 있는 그런 사회가 바로 한국입니다.


   


3년여 이곳 생활을 하면서 어려움도 정말 많고 심적 고통도 컸지만 제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물론 인간세상이 에덴동산이나 유토피아가 아닌 까닭에 이곳에도 사회악과 부조리가 존재하지만 분명한 점은 온갖 정치적, 물리적 억압과 위선이 공존하는 그 땅보다 살만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피타는 노력과 도전, 경쟁과 세계인이 경탄하는 교육열, 세계를 향해 열린 마인드로 발전과 성장을 지속하며 한민족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작지만 큰 나라, 자랑스러운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열린 만큼 깨어있어 노력한 만큼 거두고 준비된 만큼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기에 때론 연민과 동정, 비난과 경멸의 엇갈린 시선이 저희를 힘들게 하지만 꿈과 희망을 그곳보다 더 크고 넓게, 높이 가질 수 있어 감내할 수 있는 곳입니다.


   


처음 서울생활을 시작할 때 청소, 식당일, 주차관리,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걸음을 뗐습니다. 사기와 배신도 당해보고 또 다른 이별과 아픔을 겪으면서, 차별의 “벽”에도 부딪쳐보면서 저는 그렇게 이 사회를 알아가고 인생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너무도 외롭고 힘들지만 결코 포기하면 안 되는 꿈이 있기에, 사랑하는 북녘의 가족들이 저로 인해 겪는 고통의 반대급부를 제가 누리고 있기에 이를 악물고 견뎌내고 뚫고 나가려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지금까지 나름대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려 노력했다고 자부해왔지만 사실은 “빚진 것”이 많은 적자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도 그렇고 이곳에서도 말입니다. 그곳에서는 부모님의 아낌없는 헌신과 지극한 사랑을 자양분으로 구김살 없이 자랐고 다 자란 오늘에는 또 이렇게 “가깝고도 먼 곳”으로 떠나와 가족들이 오명을 쓰고 감시와 시달림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항상 부모님의 헌신과 희생위에 저의 존재가 있었습니다. 북에 있을 때 잠시나마 가졌던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 간간히 부모님 맘을 아프게 하고 가슴속을 멍들게 했던 불효한 말과 행동들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힘들고 외로울 때는 물론이고 명절날이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불쑥불쑥 떠오르는 가족들 생각에 눈물이 절로 나군 합니다.


   


(이런 때 아버지, 어머니랑 함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에 와서 개인적 명예와 부, 성공을 누리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 참된 인생의 가치관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부모님과의 상봉의 날을 앞당기는 심정으로 미약하나마 내 민족의 번영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보람된 인생이고 싶습니다. 비록 보잘것없는 일개인에 불과하지만 저를 통하여, 저희들을 통하여 사람들이 통일의 당위성을 개연성에서 확실성으로 바꾸고 통일 후의 사회통합과정을 아우를 수 있는 모델로 삼을 수 있게 통일 예행자, 선구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렵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미소 짓는다”고 합니다. 이별의 고통과 그리움, 고독이라는 인생의 비애를 처절하게 체험하고 있지만 낙담하지 않고 청춘을 불태워 다시 한 번 비상할 꿈을 꾸며 캠퍼스의 밤을 밝혀가는 제 자신이 때론 자랑스럽고 대견합니다.


   


그리움으로 써내려갔지만 부치지 못한 이런 편지들이 지금 제게는 어릴 적 아버지가 드시던 “아픈” 매가 되고 어머니가 하시던 “지청구”를 대신하고 있답니다. 이 편지 또한 번번이 “작심삼일”, “3일천하”로 끝나고 마는 “요란한” 결심과 초심의 흔들림을 바로잡아줄 채찍이고 탈선하지 않으려는 스스로의 주문과 부모님 앞에의 다짐입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그만큼 새벽은 더 가까이 와있습니다.


간절히 원하면 그 소망이 꼭 이루어진다지요? 부모님께서 부디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시고 다시 만나게 될 통일의 그날 가슴속에 서리고 쌓였던 이별의 아픔을 한꺼번에 날려 보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이만 펜을 놓으렵니다. 퍼내고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부모님을 향한 이 아들의 그리움엔 끝도, 바닥도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쑥스러워 한 번도 못했던 말, 세상을 향해 소리쳐봅니다.  


   


“사랑 합니다~”


부모님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고 또 언제까지나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아들이고 싶은 준영 올림


2009. 3. 5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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