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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춘희어머니에게2010/01/05
관리자

그리운 춘희어머니에게


   


김명희


   


안녕하세요. 저 소정입니다.


차마 안녕하냐는 인사는 솔직히 못하겠습니다. 아마 절 많이 욕하겠지요?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단 한 순간도 춘희 어머니와 그 가족들을 잊어 본적은 없었습니다.


   


제가 어찌 잊겠어요.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그 시절에 저에게 따뜻하고 포근한 사랑의 손길을 주었던 그 마음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그 어떤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해도 그때만큼은 기억 속에서 지울 수 없는 소중한 추억 속의 하나일 것 입니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북송되어 나갔을 때 정말 눈앞이 캄캄했었습니다.  집도 없고 갈 데도 없고 돈도 없고 거기에 페렴까지 와서 많이 아프기도 했었고요.  그 때 그 몸 상태로서는 두만강을 다시 건널 수도 없었습니다.


다행이 어릴적 저의 어머니와 친분이 있었던 춘희 어머니를 만나서 천만요행이었고 저에겐 크나큰 행운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춘희네 집에 들어 갔을 때 너무 어려운 집 형편에 많이 망설였습니다.


더 다른 선택이 없어서 전 정말 얼굴에 철판을 깔고 머무를 수밖에 없었어요.


결핵으로 페인이 다 되신 춘희 아버지와 척추골수염으로 자리에서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둘째 은희와 80세를 훨씬 넘긴 늙은 시어머니까지.....


아! 지금 생각 만해도 제가 너무 너무 나빴던 것 갔습니다. 아무리 다른 선택이 없었다 해도 춘희네 집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었는데 그 땐 추운 겨울이기도 해서 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미련한 절 용서해주세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값을 수 있다는 옛날 속담도 있지만 전 천 마디, 억 마디 그 어떤 말로도 용서를 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춘희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 제일 힘들었던 것은 아마 때마다 일 것 입니다.  집에 중 한자가 2명이나 있고 늙은 시어머니까지 있는데 저 또한 많이 아픈 상태인지라 그 어렵고 힘든 살림에 따로 밥을 해야 하는 춘희 어머니의 심정이 오죽 했겠습니까?


   


저도 매 끼니 때마다 정말 목구멍에 가시가 걸려 있는 것 같아 잘 넘어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밥을 남기기라도 하면 입맛이 없어 그런다고 입쌀을 좀 더 많이 섞으면 낳을 건데 그렇다고 미안해하시던 춘희 어머니의 그 안쓰러운 얼굴을 눈앞에서 지울 수가 없습니다.  또한 자기 몸도 가늘기 힘든 둘째 은희가 이웃에서 아픈 은희에게 내어온 색다른 음식이라도 생기면 몰래 숨겨 두었다가 나의 이불 속에 넣어주던 그 모습은 그 손의 따뜻함은 지금도 나의 마음속에서 심하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또한 춘희 아버지, 은희 약도 대기 힘에 부치는데 저한테도 약을 사주시던 그 마음은 진정 친어머니 마음 같았습니다.


   


한 번 한 번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전 눈물을 머금고 자신에게 약속했어요. 꼭 다시 중국에 가서 돈을 많이 벌어 춘희어머니와 온 가족의 은혜에 보답할 것이라고요.


제가 더욱더 용서를 구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자신과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럭저럭 4개월씩이나 춘희네 집에 머무르다가 어느덧 몸도 나아지고 두만강을 다시 건널 수 있었을 때 잘 가라고 따뜻하게 밥을 싸주시면서 멀리 바래다주던 온 가족의 사랑이 있어 무사히 전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5년 후 전 대한민국에(남조선)에 소의 북에서 말하는 월남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 그렇게 하고 싶던 나의 희망과 꿈을 실현하기위해 대학에 가려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많이 놀랍죠. 저도 꿈같은데 어찌 놀라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그때와는 달라서 조금이라도 한국에 대해 알고 계시겠지요. 정말로 자신의 노력한 만큼 살 수 있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전 행운에 행운아 인 것 같습니다.


   


항상 어렵고 힘든 고비마다 춘희 어머니와 그 가족들처럼 옥으로 닦아도 티가 없는 깨끗함과 훌륭한 인격을 갖추신 귀인들이 절도와 주어서 오늘날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항상 춘희어머니를 생가하면서 저도 많이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지금 특급장애인들 봉사하러 갈 적마다 자리에서도 일어도 못 나는 그들의 아픈 모습을 보면서 은희의 모습을 떠올려 부끄럽지 않게 또 나도 은희처럼 힘들고 아픈 그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길 한번이라도 더 주고 사랑을 심어 주려고 애씁니다.


   


사실 그때 춘희네 집을 떠나 여기까지 오기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많이 힘들기도 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픈 일들도 엄청 많았고요. 하지만 그것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내가 넘어야 할 하나의 큰 산이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도 더 마음이 아프고 견딜 수 없게 한 것은 따로 있었어요.


   


다름이 아니라 양심에 손을 얹고 말해도 거짓 없이 전 어떡하나 돈을 벌어 춘희네를 도와주려고 또 중국에 있는 언니도 찾고 나 국적도 만들어야 했고 언제 까지 숨어 살수 없는 상황이라 정말 가장 소중한 20대 청춘시절에 즐거움이란게 무엇인지 행복이라는게 무엇인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돈 버는 것 만 나의 모든 걸 바쳤어요.


그래서 가장 소중하고 꼭 있어야 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도 포기 했어요.


   


하지만 언니도 찾고 또 내가 그처럼 바라면 한국에 와서 국적도 땄지만 춘희네를 못 도와 준 것이 항상 절 힘들고 아프게 했어요. 빌어먹어도 은혜도 모르는 그런 인간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된 것 같아서 저 자신이 한 없이 원망스럽습니다.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왠지 내가 최선을 다하지는 못한 것 같아 힘든 것 입니다.그때 몇 번이나 중국에 있을 때 다문 얼마라도 보내 주려고 연락을 했지만 번마다 실패하고 연락이 되지 않아서 많이 속상 했습니다. 한국에 와서 또 다시 연락을 했지만 그것도 소식이 없네요. 혹시 잘못 되신 건 아닐까? 불길한 예감에 잠 못 든 날도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좀 더 일찍이 연락을 할 수 있었더라면 이렇게 연락이 되지 않아 속상하고 안타까운 일은 없지 않을까 많이 생각해 보았어요. 설마 잘못 되신 건 그런 건 아니시죠? 절대 그런 일은 없죠?  만약에 만약에 그렇다면 전 어떡해야 하나요? 죽어서도 그 죄을 못 갚으면 어떡해요? 네 ?


   


아니라고 믿어요. 그처럼 착한 분들인데 그럴 일은 없죠.


전 생각해요. 강산이 변한다 해도 한심하고 나쁜 말로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죽는다고 해도 춘희 어머니와 가족들은 살아 계실 거라고 전 확신해요.


   


저에게 다시 한 번이라고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니 나구요.


몇 번이고 소식이 끊길 적에도 전 그래도 언젠가는 통일이 되어 다시 만나면 그 때라도 용서를 구하고 저의 심장이라도 떼어 드리려고 마음 잡곤 했어요.


헌데 최근에 더욱 더 악화된 남북의 정세를 듣고 또한 비디오로 2007, 2008년도 최근에 다시 더 비극적으로 된 북한의 동포들의 생활하는 모습을 보곤 마음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이럴적 마다 더욱더 그립고 미안하고 죄송스러워 마음이 아픕니다.


언제면 이런 날에서 해방이 될까요? 과연 그런 날은 올런지요?


눈앞이 캄캄해 납니다.



봄은 오고 온갖 산에도 들에도 연분홍 진달래가 활짝 피고 벚꽃이 황홀한 향기가 이 가슴속에 와 닿지만 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이렇게 쓴 편지도 받아 볼 수 없는 안타까운 우리의 이 아픔은 그 누가 달래 주고 안아 줄 수 있겠어요.


흘러가는 세월은 흘러가고 우리의 아픈 추억도 하나 둘 가슴속에 쌓여 가고 또 다시 새 봄은 오건만 우리의 심장엔 봄이 오지 않네요.


한 가닥의 언제든 통일이 올 것 이라는 희망이라도 있었건만 점점 더 심해 가는 남북관의 갈등 때문에 이젠 그런 희망도 없어지니 찹찹한 마음 달래길 없지만 그래도 그 소중하고 따뜻한 마음은 항상 가슴속에 깊이 새겨두고 살아 갈 것 입니다.


   


춘희 어머니와 가족들도 지금도 항상 착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비록 어둡고 힘든 세상 일지라도 꿋꿋하게 이 세상 그 어디에서라도 살아 있을 거라고 온 몸으로 바라면서 오늘은 펜을 놓을까 합니다. 또한 살아계신다면 언젠가는 아프지 않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것입니다.


   


전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마시고 못나고도 못나고 나쁜 저 이지만 그래도 기다려 주시고 용서해 주세요. 안녕히 계세요.


   


이전엔 항상 편지 끝에 통일된 조국에서 다시 만나요. 이였지만 지금은 그게 아닌 서로의 마음으로 다시 만나요 에요.


   


다시 건강하게 나의 마음이 닿는 그 날까지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 기원하고 빌면서 죄 많은 한 가엾은 아이 소연이가 대한민국 서울에서 이처럼 못난 편지를 써 봅니다.


안녕. 정말 정말 너무 너무 보고 싶고 건강하시고 무사하시기를 빕니다.


2009년 4월 23일 서울에서


김명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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