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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언니를 그리며2010/01/06
관리자

사랑하는 언니를 그리며


                                                                        민순송


   


사랑하는 언니,


이렇게 불러만 보아도 어느새 목이 메어 오고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그 동안 안녕하셨어요?


   


제가 북한을 떠난 지도 올해로 11년이 됩니다. 통행증 떼기(발급)가 쉽지 않아서 언니를 만나지 못 한지도 2년이 넘었을 때 강을 건넜으니 참, 언니를 못 본지가  13년이 다 되어 오는군요.


   


사랑하는 언니와 네 조카들 모두가 눈에 선한데 어느새 세월이 훌쩍 지나 할머니가 다 되었을 언니와 애 엄마, 아빠가 된 조카들의 모습은 아무리 상상하려 해도 상상이 안 됩니다. 저의 눈앞에는 항상 시간에 쫓겨 종종 걸음으로 출근길을 재촉하시던 소박한 회색양복차림의 언니의 모습이 시도 때도 없이 안겨오곤 합니다.


   


단정한 교복차림으로 학교 다니던 조카들도 인제는 결혼하여 애 엄마가 되었을 테니 참, 세월이 빠르기는 빠른가 봅니다. 그 긴 세월을 그리움으로 가슴 적시며 오늘에나 내일에나 좋은 소식이라도 있으려나 막연한 기대감으로 버텨 온 우리들입니다.


   


언니, 인제는 기대감보다 불안감이 더 커가는 것이 저로서도 겁이 납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면 어쩌면 영영 만나지 못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예감마저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눈만 감으면 어리어 오는 그리운 고향산천과 정든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나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고난의 행군”시기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했던 가슴 아픈 사연들과 한 끼 식량을 위한 처절한 생존투쟁의 그 숨 막힐 것 같은 어려움도 이제는 아득한 옛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서로 헤어져 소식조차 모르고 이렇게 긴 세월을 살아가다보니 가끔은 힘들고 어려웠던 생각보다는 함께 여서 즐거웠던 가지가지 추억들을 떠올리게 되는군요.


   


오늘도 언니에게 보내지도 못하는 편지인 줄 알면서도 이렇게 펜을 들고 보니 언니와 함께 보냈던 지난 추억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오르는군요. 언제나 고기를 주기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어 저에게 홀로서기를 할 수 있게 이끌어 주시던 언니의 그 속 깊은 마음을 저는 언제나 잊지 못 합니다.


   


제가 인민학교에 입학하였을 때에는 농장 일에 바쁜 어머니가 언제 너까지 챙겨 주시겠냐고 시냇가에 데리고 나가서 빨래하는 법도 알려주고 설거지와 방안청소에 이르기까지 모든 집안일도 하나하나 가르쳐 주셨지요.  당시의 교복은 거의 면으로 만든 것이어서 빨래한 후에는 다림질을 하지 않으면 입을 수 없는 것들이어서 다림질하는 법과 치마 주름 잡는 법도 가르쳐 주셨지요.


   


더욱이 소문난 최우등생이었던 언니는 복습도 중요하지만 예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쳐 주었고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이해하지는 못 해도 꼭 교과서를 먼저 읽어보고 수업에 참가하는 습관을 키워 주셨지요. 그 덕분인지 저는 어렸을 때부터 숙제는 물론 집에서 준비해야 하는 과제들까지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제 힘으로 해결하곤 하였답니다. 아마도 제가 뛰어나게 공부를 잘 한다고 소문이 난 것도 언니의 공부비법이 제일 큰 공로라는 생각을 늘 하곤 했어요.


   


언니, 이렇게 편지지를 마주하고 앉으니 잊을 수 없는 사연이 또 생각나요. 어느 해 여름, 외화벌이 과제 때문에 제가 기차로 하루가 걸리는 언니가 사는 곳으로 송이버섯을 구입하러 갔을 때 말이예요. 언니네 고장은 소문난 송이 생산지라 여름만 되면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리곤 하더군요.


   


저는 외화벌이 계획도 계획이지만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한 언니네 식구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서 직장에 신청서를 내고 여행증을 발급 받았지요. 언니네 집은 기차역에서도 한참을 더 가야 하는 탄광 사택이었지요. 집집마다 장작을 패서 쌓아놓은 북방과는 달리 탄광마을에는 여기저기 석탄무지들이 줄지어 있고 언니네 집에도 예외 없이 창고엔 구들장처럼 넙적넙적한 석탄 덩어리들이 쌓여 있었지요.


   


그 날 저녁 몇 년 만에 만난 우리지만 회포를 나눌 새도 없이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가 자명종소리에 놀라 깨니 새벽 2시, 그 때부터 주먹밥을 챙겨서 배낭 속에 넣고 길을 떠났지요. 그 동안 궁금했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오래간만에 언니와 함께 걷는 길은 전혀 힘든 줄도 몰랐지요, 2시간 정도 걸어 산기슭에 도착하È그 직 날도 밝기 전인데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웅크리고 앉아서 날 밝기를 기다리는 진풍경이 펼쳐졌었죠. 산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는 터라 산마루는 빗자루로 쓸어놓은 듯 솔 검불 하나 없을 정도였는데 그래도 송이 캐기에 터득이 된 사람들은 날이 밝기 전부터 산으로 오르더군요.


여기저기 송이버섯을 찾은 듯 환성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어쩐지 저에게는 모든 것이 생소하고 힘들기만 하였습니다. 언니는 해마다 송이버섯 철이 되면 직장에서 시간을 내어 외화벌이에 동원되곤 했는데 아무 일이나 막힘이 없는 언니는 송이 캐기에서도 소문난 명수였지요. 산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언니에게 인사를 건네며 아는 체를 하는 것을 보니 언니가 얼마나 산에서 고생하시는지를  실감하게 되더군요. 산에서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다고 자부하던 저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무리 열심히 찾아보아도 송이버섯은 하나도 캐지 못 했지요.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무렵 사정없이 내려쬐는 뙤약볕 아래서 온 몸은 땀투성이가 되었고 소득도 없이 산을 오르내리기에 기진맥진한 나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송이를 캐시는 언니만 곁에 없다면 그만 주저앉아 버리고만 싶을 정도였어요. “힘들지? 처음이어서 많이 힘들게다. 그래도 이 송이가 우리 식구를 살린다고 생각하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마저 없다면 정말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른단다." 좀 쉬면서 하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 왔으나 참을 수밖에 없었죠. 언니처럼 되려면 전 아직도 멀었구나 생각하니 제 풀에 무안해졌고 아직도 언니에 비하면 내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언니는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형부를 잃고 네 명의 조카들을 데리고 생활을 유지해 나가시느라 고생이 말이 아니었지요.


   


잠시 후, 언니는 사방 십 여 평 남짓한 펑퍼짐한 공터에 저를 부르시더니 “지금 이 곳에 송이가 세 개 숨어 있단다. 네 손으로 한 번 찾아 보거라” 하시고는 나뭇가지로 여기저기 들춰보시며 저 만큼 앞서 가셨습니다. 큰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밑에는 진달래와 이름 모를 관목들이 여기저기 서 있었고 바닥에는 잔디와 마른 솔잎이며 진달래 잎사귀들이 널려 있는 곳이었어요. 아무리 눈여겨 살펴보아도 송이버섯은커녕 그 흔한 개암버섯 한 송이도 없었어요. 한참을 찾아도 찾을 수가 없어서 인제는 단념해야 되겠다고 생각할 무렵 언니가 나타났지요.


   


“아이고, 요것들이 아직도 안 나타났구나, 우리 동생을 이렇게 애타게 하다니,”


   


언니는 송이를 캐주고 싶지만 제 손으로 찾아내고 제 손으로 캐보게 하시려고 하나하나 가르쳐 주시는 것이었어요. 정말 언니의 말대로 찾아보았더니 솔잎이 널린 바닥에 눈에 알릴 듯 말듯한 봉긋하게 두드러진 것이 보였고 그 옆을 살짝 뒤지니 보기에도 탐스러운 애송이가 수줍은 듯 고개를 내 밀고 있었지요. 나는 너무 기뻐 환성을 올리며 송이를 캐려고 땅을 뒤졌지요. 언니는 큰일이라도 난 듯 절 제지하고는 제가 덤빌세라 조심스럽게 송이 캐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정성스럽게 송이를 캐 낸 다음에는 그 자리를 꼭 덮어주고 자근자근 눌러주어야 다음에 그 자리에서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또 캘 수가 있다는 것도 배워 주셨지요. 그 넓은 산판에서 언제 다시 오겠다고 그런 뒷마무리까지 하시는지 이해가 안 갔지만 누가 보든 말든 고향의 산천을 아끼는 언니의 모습이 나에게는 깊은 감동을 주었지요. 싸 가지고 온 도시락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는 언니가 배워 준 덕에  또 몇 송이를 캤으니 첫 날 치고는 꽤 소득이 크다고 칭찬도 아끼지 않았지요. 돌아오는 길에 수매소(판매소)에 들러 제일 좋은 1등품은 수매를 시키고 나머지는 귀국자(일본에서 온 동포)네 집에 들려 밀가루와 설탕을 바꾸었지요. 직장의 외화벌이 계획을 하면서도 가정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상의 벌이라고 언니는 만족해 하셨지만 하루 종일 그 높은 산속을 헤매고 다니는 언니의 모습을 직접 본 저로서는 뭐라 할 말이 없더군요. 송이 캐기에 실적을 못 냈던 저는 직장에 약속한 외화벌이 계획 때문에 본의 아니게 언니에게 큰 부담을 안겨 드리기는 했지만 평생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던 귀중한 가르침을 받게 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언니, 생활의 어려운 고비마다 하나하나 손잡아 가르쳐주고 일깨워주시던 언니의 그 온정은 내가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커다란 힘과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고향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마저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오던 우리들이 어찌하여 오늘은 이렇게 천리 타향에서 고향을 그리며 살아야 하는지,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지나간 세월의 슬픔을 가슴에 안고 눈물로 세월을 보낼 수는 없잖아요? 슬픔에 잠겨 살아가기에는 남은 인생이 너무 아까운 것 같아서 과거를 딛고 지금은 씩씩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눈물로 쓰는 편지가 아니라 가슴 따뜻한 그 시절의 사연들을 되새겨 보면서 미소를 머금고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언니, 언제나 어머니처럼 저를 돌보아 주고 가르쳐 주시던 사랑하는 언니에게 언제면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만나는 날까지 앓지 마시고 건강하게 지내시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랍니다.


그 때에는 언니의 그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준비한 갖가지 선물을 한 아름 안겨 드릴게요.



사랑하는 손자, 손녀들의 할머니로 살고 있는 저이지만 언니 앞에서는 영원히 가르침을 받는 동생으로, 스승으로 모시는 제자로 살고 싶은 저의 마음을 언니도 잘 알고 계시지요?


   


언니, 다시 한 번 건강하시라고 당부 드려요.


사랑하는 조카들에게도 이모의 인사를 꼭 전해 주세요.

   


언니, 다음 편지에는 이 곳 소식을 자세히 알려 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그칩니다.


안녕히 계세요.


서울에서 동생 순송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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