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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은 어머님께 드립니다.2010/01/06
관리자

보고싶은 어머님께 드립니다.


황성수


   


오늘도 하루하루 한 끼 한 끼 살아갈 걱정 때문에 고생하시는 어머님,


안녕하십니까?


아파트의 베란다에서 불 밝은 도시를 감상하셔서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고향에 대한 노래 소리를 들으니 저도 모르게 고향과 어머님 생각에 이렇게 몇 자 전하게 됩니다.


   


내가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 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이 편지가 갈 수 없고 또 받아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렇게 몇 자 쓰고 나면 마치 고향과 그리운 어머님을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마음도 한결 진정되고 그리움도 순간이나마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정말 저의 고향은 노래 가사에 나오는 곳처럼 꽃피는 산천이었지요.


   


번화한 대도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한적한 산골마을도 아닌 동해 바다가 평범한 마을. 동쪽에는 검푸른 바다가 출렁이는 동해바다, 뱃길 따라 뱃고동 소리 울리면서 오가는 짐배와 고기잡이에 신바람이 난 어로공(어부)들의 구성진 노래 소리 들려오고 남쪽과 북쪽에는 함경산맥의 줄기 따라 흘러내리는 맑은 물소리 정답게 들려오는 주북천과 주남천, 서쪽에는 병풍처럼 둘러싸인 높고 낮은 산봉우리들 그 한 가운데는 끝없이 펼쳐진 논밭, 언덕진 곳에는 봄이면 배꽃, 봉숭아꽃, 살구꽃이 만발하고 가을이면 주렁진(주렁주렁 열려있는) 과일들,


정말 그림 같은 고향 산천을 등지고 가깝고도 머나먼 이곳에 와서 그리움으로 살아가는 이마음 어찌 몇 자의 글로 다 표현하겠습니까?


   


“처자식은 버려도 부모만은 버리지 못한다”의 말뜻을 지금에 와서 어느 정도 알게 될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언제 어니서나 항상 저의 영원한 동행자, 동반자, 버팀목이 되여 주시였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항상 저의 곁에서 저의 편이 되어주셨고 불면 날아갈까봐 다치면 터질 것 같아 항상 감싸주시고 토닥여주시고 때로는 가슴 아픈 모진 매까지 때려 가시면서 엄하고도 따뜻한 사랑으로 키워주셨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님의 올바르고 대바른(강직한) 교양으로 체계적인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으로 그 누구보다 어엿하고 당당하게 자란 저였습니다. 사회생활의 첫 걸음부터 한걸음, 한걸음 손잡아 이끌어 주신 어머님. 제가 당에 입당하던 날 어머님은 “자식한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을 마련하였다”라고 하시면서 눈물 흘리시면서 기뻐하시고 축하해 주시던 그 모습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또한 군급기관의 행동일꾼으로 임명되던 날 저의 등을 쓰다듬어 주시면서 신임에 곡 보답하라고 진정으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고 고무 격려해주시고 당부하시던 어머님의 모습!


   


다 자라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나이에도 항상 어머님은 저의 영원한 동행자, 동반자, 희망의 등대가 되여 주시였습니다. 이런 어머님이 계시기에 오늘의 제가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어머님께 영원한 하늘땅이 되여 주시겠다고 맹세하였건만 그 결심 끝까지 지켜 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불효를 하는 이 못난 자식을 욕해주시고 그리고 또 용서해주십시오. 제가 혈연단신 이곳에 와서 어떻게 살아가겠는가에 대하여 늘 걱정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걱정 말아주십시오. 천신만고 사선을 넘어 이곳 대한민국에 와서 저는 새로운 제2의 삶과 행복 제2의 고향을 찾았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에 올 때 정말 두 주먹 뿐. 알몸으로 왔으며 더욱이 대한민국을 위해 나무 한 그루 심은 적 없고 벽돌 한 장 쌓은 일도 흙 한 삽 뜬 일도 없었습니다. 했다면 오직 남한 사회에 대한 비방중상(비방과 중상모략)과 시비질, 즉 남한 사회에 대한 적대시 정책의 옹호자, 관찰자로 교양 받았고 또 그 실천자로 살아왔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은 하늘땅과 같은 넓은 한품에 알아주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품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 두 칸짜리 방과 화장실까지 있는 고급아파트를 배례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에서 생계비가지 챙겨주고 있습니다. 병이 나면 무상으로 치료해주고 있으며 여러 가지 암 검진도 무상으로 하며 의사가 집까지 찾아와서 정기적으로 검진해주며 정말 건강한 몸으로 행복하게 근심 걱정 없이 살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아버지 어머니 대와 달리 저는 몇 달 기간에 다 갖추 놓고 살고 있습니다.


이불장과 양복장 고급 침대며 색 텔레비전에다 녹화기, 녹음기, 선풍기, 청소기, 정수기 (물을 정제하는 기계)며 냉장고, 세탁기...


   


정말 없는 것이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 컴퓨터란 말은 들었으나 보시지는 못하셨지요.


저는 이 컴퓨터를 가지고 전 세계를 보고 있답니다. 이뿐만 아니라 일체 음식은 다 가스로 하며 밥도 쌀을 씻어 밥솥에 넣으면 자동적으로 말을 해가면서 밥이 다 됩니다. 그리고 전자렌즈란 기계는 음식물을 데워 먹는 기계랍니다. 그리고 보면 북한 고위급 간부층 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셈입니다.


   


어머니!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는 사람이 있고 천만 사람들 속에서도 외로운 사람이 있다.”는 말과 같이 비록 혼자의 몸이지만 외롭거나 고독이란 전혀 모르고 살아갑니다. 오직 어머님과 고향의 그리움만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어머님. 대한국민 모두가 저의 부모형제들입니다.


어머니도 알다시피 남한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란 “너도 나를 위하여 나도 나를 위하여”라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아는 개인이기주의적 사상으로 일관된 사람으로 생각하시지요. 그러나 이 곳 남한 세상은 저나 어머님께서 알고 있는 사실과 너무나도 현실은 다릅니다. 국민 모두가 자기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도와주는 자원봉사 활동으로 살아가는 인간 중의 참된 인간들입니다. 이들은 그 누가 시킨 것도 없고 또 그렇다고 해서 로임(생활비)을 주고 배급을 주는 것도 아니고 신문, 방송에 얼굴이나 이름을 내자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본인 스스로가 의무와 권리로 생각하시면서 응당한 일로 찾아서 봉사하는 즉, 모두가 서로 서로 함께 더불어 사는 참된 사랑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대집단체라고 볼 수 있는 세상입니다.


   


북한에서 표준어가 아닌 표준어 “이 새끼, 저 새끼, 개 새끼”란 말을 들어볼 수 없으며 그 어디 가보아도 거리와 마을을 항상 깨끗하고 모든 것들이 질서정연하게 정돈되었으며 마치  전람관이나 표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사람들의 문화 도덕 생활은 얼마나 문명화 되었는지?


   


어찌 몇 자 글로 다 표현하겠습니까?


어느 곳이 공산주의 도덕 교양을 받았는지? 어느 것이 자본주의 도덕교양인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여기 와서 제일 아까운 것이 무엇이 되었는지 아십니까? 화장지였습니다.  흰 종이를 한 번 쓰고 그냥 내리는 것이 어찌나 아까운지?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을 이렇게 품을 들려 고급스럽게 들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얼마나 낙후되고 뒤떨어진 생각입니까? 또 한번 울 일이지요. 뒤떨어진 북한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단적이지만 엄연한 현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님. 저에게는 초고층 빌딩도 억대의 통장도 없습니다.


   


그러나 순간순간 기쁨과 행복, 만족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도 한 치의 차별도 없이 모든 혜택을 다 보장받으면서 살아가게끔 최선을 다해 배려해주고 도와주는 고마운 대한민국 정부와 그리고 국민들을 위하여 국민으로써의 임무와 권리를 무조건 철저히 준수함으로써 조금이나마 보답해 나갈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가장 존경하시는 어머님의 몸 건강을 진심으로 바라면서 안녕히 계십시오.


   


2009년 6월  아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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