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 38, page : 1 / 2, connect : 0
: 전체 : 2004년 (28) : 2005년 (54) : 2006년 (66) : 2007년 (70) : 2008년 (51) : 2009년 (38) : 2010년 (39) :
불러보고 싶은 이름 아들!2010/01/06
관리자

불러보고 싶은 이름 아들!


조은실


아들아!


이 세상 많은 아이들이 있다지만 나에게는 단 하나뿐인 소중한 너를 불러보며 흐르는 눈물과 함께 불러 보게 되는구나.


너를 두고 떠난 지도 이젠 벌써 3년이 넘었구나, 키는 얼마나 컸는지, 잘 먹고 건강한지, 큰엄마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매일 같이 엄마 오기만을 기다린다는 작은 소망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지…. 걱정과 불안, 그리고 너를 매일 감시한다는 보위부의 눈길이 너의 작은 가슴을 조인다고 생각하니 오늘따라 눈물이 나의 시야를 덮는구나.


   


아들아! 이별 아닌 이별로 너를 업고 두만강 건너 중국에서의 4년 생활, “니디워디”도 모르는 낯선 외국 땅에서 엄마는 너 하나만을 위해,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남의 집 석탄도 날라주고 볏모도 꽂으면서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일하였고 매일같이 공안의 발걸음에 쫗기며 널 업고 산 속으로 들어가 숨어산 적도 있었단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너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탈북자라는 설음과 이방인의 나라 없는 설음과 고통을 겪으면서 너 하나만은 잘 먹이고 잘 키워보려는 생각에 너를 중국 사람에게 맡기고 돈벌이를 하였단다. 아침 6시에 일 나가서 저녁 10시에 돌아와서 너한테 갈 때면 젖 먹던 그 때 너는 하루 종일 배고파 입술이 갈라터지고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나의 옷깃을 적시며 가지 말라고 나에게 매달렸지, 너무도 서러워 엄마 젖꼭지를 꽉 깨물고 서럽도록 울던 너 “으아 꺼억 꺽 응아 꺼억 꺽…”. 더듬거리며 말을 시작할 때는 “엄마, 나 이젠 사달라는 말 안하게, 응? 배고프다고 안 그럴게…. 응? 가지 마”하며, 엄마하고는 절대로 안 떨어지겠다고 발을 동동 굴렀지, 장난감 사달라고 조르는 너에게 사주지는 못하고 매를 안기고는 퍼렇게 멍든 다리와 엉덩이의 자국을 손으로 만져보며 밤새도록 눈물을 흘리던 아픈 추억이 오늘따라 가슴을 저미는구나.


   


고향으로 다 시 돌아가 가족의 행복을 찾겠다던 소박한 꿈을 안고 북한 영사관을 거쳐 고향에 갔지만 “어머니 조국”이라는 따스한 품은 어디로 가고 차디찬 감방으로 고스란히 넘겨지고…. 그 다음, 무섭고 끔찍하고도 잔인한 폭행과 욕설, 고통이 뒤따를 줄 누가 알았겠니?  


   


40일의 감옥생활이 너와 나, 내 일생의 고통과 한 맺힌 원한으로 남아 오늘의 한 페이지를 눈물로 써나가는구나. 이와 벼룩이 득실한 어둡고 침침한 3평 남짓한 독방, 한쪽에는 5명의 시체가 쌓여있고 그 속엔 구더기와 쥐들이 낮이고 밤이고 사람의 뼈와 살을 먹고 있었단다.


북한의 3월은 너무나 추었었지, 뼛속까지 얼어드는 추위와 홑옷 하나 걸치고 오돌오돌 춥다고 우는 너를 몸에 안고 하루가 천년으로 느껴지던 그날, 흙과 돌이 있는 무시래기에 옥수수 껍질을 가루 내어 버무린 가루 밥을 놓고 4살 된 너에게 차마 먹일 수가 없어 나의 빈 젖을 물려야 했던 그 시절, 숟가락으로 3숟갈 되는 밥을 놓고 한쪽에선 생존을 위한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는 비명소리가 매일 그치지 않았단다.


탈출을 시도했다 총에 맞아 죽어가는 탈북자들, 천정이 보이는 3월의 북방, 눈이 와서 바람에 비닐박막은 몸부림치듯 울어대는데 너의 살을 뜯어먹는 큰 쥐 한 마리에 정신을 잃었던 어제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는구나.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평생 감옥에서 살아야 하나, 너만이라도 집에 보내 달라”고 보위원의 발에 매달려 사정했건만 한 줄기 빛이 지나가며 쓰러진 나를 붙잡고 너는 죽으면 안 된다고 엄마에게 매달려 울었지.


   


어린 나이에 보지 말아야 할 일들을 보여준 것이 평생 죄가 되어 지금도 자다가도 소스라쳐 잠에서 깨어 공포에 떨곤 한단다. 매일 같이 따스한 온돌방과 가족의 향수가 그리워 하늘을 바라보며 고향 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건만 우리 모자에게 찾아온 어머니 조국, 고향이라는 단어는 감옥의 고초와 심문, 냉대와 차가운 구둣발이었단다.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여 너를 큰 집에 맡기고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조국이라는 그 땅, 엄마는 결심했단다. “나는 꼭 살아서 행복한 그 날을 찾을 거야, 나는 두 번 다시 오늘의 고통을 겪지 않을 거야. 내가 평생을 바쳐서라도 너에게 준 고통의 대가를 꼭 씻어 줄 거야,” 하고 말이다.


   


중국을 거쳐 한국에 와서 엄마는 정부가 준 아파트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었단다. 혈연단신으로 이 땅에 내려와서 언어도 같다지만 보이지 않는 장벽을 바라보며 한 치 한 치 벽을 허물었단다.


   


아들아, 우리가 북한에서 보았던 남조선은 참 좋은 세상이란다. 중국은 우리가 살기에는 가슴 조이고 맘 편 편있을만한 곳은 아니지만 한국은 한민족이라고 엄마와 같은 북한 동포들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 그리고 살아갈 수편있도록그리정부가 많이 지원해주고 있단다.


   


북한과 달리 여기 남조선이라 불리는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라 하지만 좋은 사람들이 많고 내가 얼마만큼 노력했는가에 따라 잘 살 수 있는 땅이란다. 엄마는 정부에서 준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고 북한에서 만큼은 잘 먹고 잘 입지는 않아도 많이 근검절약하면서 열심히 잘 살고 있단다.


   


어제의 자존심을 버리고 항상 겸손하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지금은 30대에 늦깎이 대학생이지만 내일의 꿈과 포부를 안고 잘 견디어 내고 있단다. 다시 시작하는 의학공부가 너무 힘들단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고 돈 많이 벌어서 너에게 돈도 보내주고 정말 다른 사람들처럼 눌러도 가고 잘 입고 예쁜 몸매도 꾸미고 싶을 때도 많단다. 내일도 좋지만 오늘에 충실하고 후회 없는 오늘이 되기 위해 엄마는 정말 많이 노력하고 있단다. 엄마의 꿈은 의학박사가 되는 꿈이란다.


   


참 너는 커서 경찰이 되겠다고 했지, 3살 된 너의 입에서 경찰이 되어 엄마와 나를 못살게 구는 경찰들 다 쏴 죽인다고 했었지, 이젠 그런 말보다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해주고 지키는 경찰이 되어야지, 엄마는 네가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매일 기도하고 있단다.


엄마의 생각과 믿음은 아마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아들아, 지금도 동구 밖에 나와서 엄마 기다리며 울고 있을 너의 모습 그리며 어제도 그러하였지만 오늘도 길가나 지하철에서 어린아이를 보면 멈춰서 너를 생각해 본단다. 내 아들도 8살이면 학교 가는데 다른 애들한테 엄마 없는 애라고 놀림 받지는 않는지, 저만큼 컸을 텐데, 살이 많이 빠져 영양실조 걸렸다는데 키는 얼마나 크고 생김새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많이 보고 싶구나,


중국에서 악몽 같은 4년을 견디어 낸 것은 해맑은 웃음과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너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마도 힘든 역경도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구나, 지금도 집에 들어오면 눈앞에서 네가 뛰어 노는 것 같고 어느 날 까치가 울면 너 소식이 올가 하며 기다리고 있단다. 이젠 소식이 단절된 지도 2년이 되어오는데 살아있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란다. 내 안에 아들이라는 네가 자리 잡고 있어 엄마에겐 큰 힘이 된단다.


   


통일은 멀지 않았단다.


우리가 바라는 통일, 그리고 너와 나와의 만남은 우리가 서로 노력하고 서로 마음을 터놓을 때 이루어지는 거란다. 너도 지금은 많이 힘들겠지, 어린 나이에 엄마 곁을 떨어져서 눈칫밥에, 배고픔, 외로움과 말 못할 설움이 가슴 저미고 있을 테지,


   


우리 참고 이겨내자, 그리고 엄마를 꼭 만날 때까지 아프지 말고 밥도 잘 먹고 공부도 잘해서 너와 엄마 자신 혼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 많이 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자. 너는 나의 전부이며 빛이라는 것을 간직하며 하루의 첫 시작을 너 사진을 보며 시작하고 끝나고 나서 너의 사진과 함께 마무리한단다.


   


세상에서 내가 존경하는 위대한 분이 나에게 속삭이듯이 다정하게 말씀해주셨단다. “당신의 아들은 미래의 대통령이 될 인재이고 엄마가 흘린 오늘의 땀방울을 꼭 잊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아들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2009.3.10 서울에서 엄마가


덧글 개


403

 [2009년] 헤어짐과 만남이 가져오는 만남의 그날 통일

관리자

2010/01/06

9868

406

 [2009년]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떠나간 어린이들과 동포들을 그리면서...

관리자

2010/01/06

9954

397

 [2009년] 항상 보고 싶은 언니에게...

관리자

2010/01/05

9288

402

 [2009년]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면서 살았던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얼마나 나의...

관리자

2010/01/05

10051

388

 [2009년] 언제나 보고 싶은 동생에게 몇 자 적는다.항상 마음속에 그리운 동생 희옥아!

관리자

2010/01/05

9893

386

 [2009년] 언제나 그리운 오빠들에게

관리자

2010/01/05

9467

393

 [2009년]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관리자

2010/01/05

9174

407

 [2009년] 사랑하는 언니를 그리며

관리자

2010/01/06

9860

399

 [2009년] 사랑하는 딸 은순이에게...

관리자

2010/01/05

9173

391

 [2009년] 사랑하는 동생에게...

관리자

2010/01/05

9190

413

 [2009년] 사랑하는 동생에게

관리자

2010/01/06

10018

416

 [2009년] 불러보고 싶은 이름 아들!

관리자

2010/01/06

9927

415

 [2009년] 보고싶은 어머님께 드립니다.

관리자

2010/01/06

9954

414

 [2009년] 보고싶은 동생에게

관리자

2010/01/06

9834

412

 [2009년] 보고 싶은 언니에게 이 글을 드립니다.

관리자

2010/01/06

9837

401

 [2009년] 보고 싶은 아빠, 엄마 그리고 동생에게...

관리자

2010/01/05

9512

392

 [2009년] 보고 싶은 아들에게...

관리자

2010/01/05

9181

396

 [2009년] 보고 싶은 딸 진옥에게...

관리자

2010/01/05

9307

411

 [2009년] 보고 싶은 그리운 당신께 드리는 전상서

관리자

2010/01/06

10096

389

 [2009년] 누님께...

관리자

2010/01/05

8967
  1 [2] 
Copyright 1999-2021 Zero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