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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엄마, 사랑하는 동생에게2011/04/28
관리자

보고 싶은 엄마, 사랑하는 동생에게


김지윤



엄마! 안녕하냐고 물어본다는 것도 사치로 생각 되여 감히 인사말도 할 수 없는 이딸을 용서해주세요.

어릴 때 엄마라고 불렀던 것이 지금도 어머니라는 말이 더 어색하고 엄마라는 말이 아직 가슴속 깊이 자리를 잡고 있는 같아서 그냥 엄마라고 부를게요.

엄마! 엄마라는 이 한 단어가 이렇게도 소중하다는 것을 엄마와 함께 있었을 때에는 왜 미처 몰랐을까요...

지금은 엄마라고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도 없는데 지금에 와서야 그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어요.

외동딸인 내가 외로워한다고 동생을 입양하여 나에게 선물로 주셨고 인민학교(초등학교)때는 학급반장이니 그 누구보다 모든 것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몸소 꼬마계획의 한 종류였던 토끼가죽 계획을 한다고 집에서 토끼를 150마리나 기르면서 고생하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그때는 미처 몰랐던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그리운지...

엄마도 이 불효한 딸을 그리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 생각을 하니 마음이 미여져서 엄마가 더 그리워지네요.

엄마 생각나죠.

난 아직 그때 일을 생각하면 엄마한테 너무 미안하고 내가 왜 엄마 가슴에 대못을 박았는지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 지금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할 수 없네요.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 23살의 어린나이에 철도 없이 시집가겠다고 하며 엄마의 속을 썩이더니 도시에서 나서 자란 이 딸이 농촌으로 간다고 하니 더더욱 기가 막혀 한동안 할 말도 잃어버렸던 아버지와 엄마는 이 딸의 선택을 결국은 승낙하였고 나는 농촌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죠.


그렇게 아버지와 엄마의 속을 썩이면서 시집을 갔으면 잘 살아야 할 것이 시집을 간지 3년 만에 이혼녀가 돼서 너무나 달라진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온 이 딸을 보며 한동안 아무 말씀도 못하시고 눈물만 흘리시던 아버지와 엄마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결혼하여 내가 좋아서 간 시집생활은 고되고 도시에서 농촌 일을 한번 해보지 못한 나는 밭에서는 눈치만 봐야 했고 내가 하는 일은 내가 봐도 한심하기만 하였어요.
그래도 그 고된 생활은 결혼하여 1년 만에 태여난 너무나 사랑스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딸을 바라보며 견디고 이겨나갔어요.

그러나 그 행복한 시간마저 나에게는 허락이 되지 않았어요.

너무나 사랑스럽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딸이 2돐을 몇 달 남기고 이 불쌍한 엄마를 남겨두고 먼저 하늘나라로 갈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아이를 잃은 슬픔이 채 가셔지기도 전에 나는 아이를 죽인 살인자가 되었고 결국은 이혼에 이르게 되었어요.

이혼만은 죽어도 안된다고 버티던 나는 하늘나라에서 외롭게 혼자 지냈을 딸과 함께 하리라 마음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게 되었죠.

그러나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것이 이 작은 몸뚱이라는 것을 알고는 내가 징그러운 거머리 마냥 소름이 끼치고 또 내 자신이 얼마나 싫어졌는지 몰라요.

또한 자기들이 제시한 이혼조건에 승인을 안 하면 정치범인으로 수용소로 보내겠다는 협박까지 받았을 때 내가 정말로 인간되기를 포기하고 짐승으로 태여 나도 이렇게 까지는 믿고 의지하던 사람들한테 배신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답니다.


그때에야 그 나라에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이 정말로 맞는 말이구나 하는 것도 실감하게 되었어요.

정치범인으로 세상빛을 못보고 살아갈바에는 이혼해주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으로 이혼에 동의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죠.

그런데 그때 처음으로 시집간 딸이 다시 집에 돌아오면 외간인이 된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어요.

부모님과 동생은 내가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이겨나가는 것이 안쓰러워 함부로 말도 못하고 나의 눈치만 보게 되었고 나 또한 그들이 내가 집에 와있는 것이 거치장스럽고(귀찮고) 미워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때부터 나의 성격은 나날이 포악해져 갔고 9년이나 어린 동생과 싸움도 잦았으며  엄마와 큰소리로 화도 내며 짜증도 많이 부리게 되었어요.
그때 엄마는 아무말 없이 나의 말을 다 들어주시고 나 모르게 돌아서서 눈물을 흠치군 하였죠.

더 기막힌 일은 그 뒤에 일어났죠.

집에서 이렇게 생활하는 것이 지겹고 또한 외로웠던 나는 이혼한 남편을 그리게 되었고 내가 이혼한 것을 엄마의 탓으로 돌리게 되었죠.

엄마가 이혼을 막았더라면 내가 어떻게 하나 이겨내여 결국은 이혼까지 안갔을것을 엄마가 이혼하라고 해서 이혼하게 됬다고 말도 안되는 억지까지 부리게 되었어요.

얼마나 기가 막혔을가 엄마는 아무말 안하시고 혼자서 흘린 눈물이 얼마이고 이불속에서 남모르게 흘린 눈물이 얼마였을까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원쑤(왠수)가 따로 없다는 생각에 후회막심하고 미안하다고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이 현실이 너무나 가까운 현실로 다가와 가슴에 와닿는 것을 어쩔수 없네요.



그러나 엄마
나 지금 깨달았어요

그때 엄마의 그 큰 사랑과 무한한 사랑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이딸이 있었을까. 또 그때 엄마의 눈물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이딸이 과연 존재할까

엄마 그때 옹졸했던 이딸을 용서해 주세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높은 하늘과 드넓은 땅, 검푸른 바다에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였어요


또 엄마! 난 엄마 때문에 지금 이 대한민국이라는 넓고 넓은 자유의 땅에서 나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고 북한의 고위층 못지 않은 좋은 집에서 부자처럼 잘 살 수 있었어요

엄마가 아니였다면 정말로 지금의 나를 생각할 수 없었고 엄마가 아니였다면 이 좋은 세상을 경험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엄마. 사랑하는 엄마 그리고 사랑하는 동생아

엄마와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 사랑하는 동생이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세계에서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고 또 보여주고 싶어서 이 편지를 썼지만 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를 그리면서 나와 피 한방울 안 섞였지만 지금도 나대신 엄마를 모시고 살고 있을 사랑하는 동생을 그리며 나의 마음이라도 전달이 되기를 빌면서 이 편지를 썼어요


엄마. 이제는 이 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요

난 엄마의 딸이잖아요

난 지금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떳떳하고 당당한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북한에 있을 때 이루지 못한 꿈인 대학생이 되어 남 부럽지 않은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기자가 되고 싶었던 그 꿈을 대학생기자로 활동하게 되면서 이루게 되였어요

참 엄마 또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나 여기 대한민국에서 정말 멋진, 엄마가 봐도 한눈에 반할 남편을 만나 지금 너무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어요

나만 행복해서 너무 미안한 생각도 가끔 하지만 엄마도 진심으로 축복해 주리라는 것을 난 알아요

남편도 엄마이야기를 하면서 장모님이 해주신 토종닭을 먹을 날이 언제면 올까 기다리고 있어요

엄마 너무 멋진 사위에게 토종닭을 먹일 그날까지 앓지 마시고 더 늙지 마시고 건강하게 이 딸과 사위를 만나게 될 그날까지 꼭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사랑하는 동생아!

지금 생각해 보니 너에게는 누나로써 해준 것이 아무 것도 없구나

엄마를 이 누나대신 잘 모시고 행복하게 살고 있으리라 난 믿는다.

이 못난 누나가 너에게 해준 것이란 욕설과, 기억에 남는 것은 싸웠던 일 뿐이구나
너무 미안하다. 너도 이제는 장가를 가고 나의 귀여운 조카들도 태여나면 그들에게 이 고모가 아빠에게 못된짓만 했다고 말하지 말고 좋은 기억이 될 수 있게 네가 말을 만들어서라도 잘 말해주라


그럼 이제 통일된 그날 이 고모가 조카들 보기 부끄럽지 않게 말이다

엄마를 잘 모시고 통일되면 우리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서 옛말을 할 그날이 꼭 온다는 것을 잊지 말고 힘을 내여 열심히 잘 살기를 바랄뿐이다.

엄마 할 말이 너무 많은데, 긴긴밤을 새워가며 다 말해도 끝이 없을 것 같애. 엄마 미
안하다는 말밖에는 더 할 말이 없는 이 불효한 딸을 용서해줘요.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쓰면 뭐하나 하고 스쳐지나갔던 것이 대한민국에 있는 통일을 위해 일하는 “새조위”라는데서 보낼 수 없어도 마음만이라도 전 할 수 있는 편지를 써보라고 해서 썼더니 어느덧 내 마음이 저 하늘 구름을 타고 엄마의 가슴으로 들어간 것 같아 그나마 엄마한테 지은죄 용서받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어요



통일되면 “새조위”라는 이름이 뭐하는 곳인가도 설명해 줄게요

날아가는 새를 연상하는 말은 아니구...



통일 되는 그날 까지 건강하게 이 딸을 만날 그 순간을 위하여 우리 서로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서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서 꼭 만나자

엄마 사랑해

동생아 사랑한다  이렇게 간단한 말을 잊고 살았던 것이 후회된다





대한민국에서 행복한 딸 김지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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