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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불러보고 그려보는 동생에게2011/04/28
관리자

조용히 불러보고 그려보는 동생에게


정경화



   사무치게 보고 싶은 사랑하는 동생 기성아!!  
너와 헤어져 올해로 딱 10년이 되어오는구나.
그동안 이 누나는 막 미칠 정도로 네가 긍금해 죽을 지경 이였지만 할 수 없는 저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참고 견디다 더는 이 마음을 억제 못하고 네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한자 두자 이글을 쓰고 있구나.

정말이지 내가 너희 귀동 딸 윤희와 윤희엄마를 다신 못 만날 줄 뻔히 알면서도 너에게 한마디 말없이 떠난 것도 있지만 내가 그쪽(북한)을 꼭 떠나야 하기에 이제 떠나면 너희들을 영영 못 볼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있어 우정 너희 집에 잠간 들렸던 것 이였어.

정말 그대로 현실로 눈앞에 다가온 10년,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이 땅 남한엔 혈 언 단신 한 사람뿐이 된 이 누나는 너무도 외롭고, 또한 너 나이 3살 때 어머니와 헤어져 새엄마의 손에 불쌍하게 자란 너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아직도 눈물이 흐르고  있구나,

기성아! 10년 되어 오도록  소식 한 장 없이  이 세월을 살아온 것이 내가 너에겐 <죄>가 되겠지만 이 누나의 마음속엔 네가 있음을 알고 용서해주길 바란다.

사랑하는 내 동생 기성아,
늦게 나마 너의 안부를  물어 보는구나, 무사히 살아 있지,
그리고 진짜 별일 없는 거지?

내가 여기 어머니 고향에까지 올 줄은 그 때로선 생각도 못했는데 나 혼자 남한에 내려 오게 되니  정말 너와 오빠에게 미안하다.
  참, 어머니 소리가 났으니 말이지,  지금도 가끔 눈감고 흘러간 세월 더듬어 생각해 보면 너 나이 3살 때고 내 나이  5살 되던 해 어머니와 (외) 큰아버지가  남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공화국 정부는 큰 아버지의 말 한마디 잘못했다는 이유 한가지로 산산 쪼각 내듯이 무참히 짓밟아 결국은 큰아버지는 물론 저의 어머니를 강제로 아버지와 자동 이혼시켜 영원히 우리들의 곁을 떠나게 하였어.  그이후로 네가 어린 때여서  너 에겐 차마 엄마 잃은 아픈 상처를 주지 않자고 나와 언니, 오빠는 약속 하였지만 하도 악독한 <새엄마> 의 구박과 자주 있는 매질과, 배 고품에 네가 먼저 눈치 채고 나에게 묻던 말이 생각나는구나.
“누~나~  암만 생각해도 저 엄마가 우리 엄마 같지 않아, 이제도 또 욕하고 때렸어, 난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 하더니 또 큰 눈에 눈물이 그렁해서 내 무릎에 엎뎌  잉~잉~ ... 섧게 울던,  네 그때나이 5살 애기 때의 추억이 가슴 꺽 막히게 저려와 어느새 눈엔 눈물이 핑 돌아 쓰는 글이 보이지 않고 또 막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지만 네가 있어야 실컷 울음을 울 것 같은데,
  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참으며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 닦으며 흘러간 어린 때의 생각을 해본다. 정말 우리들은 아버지가 비록 옆에 있다지만 일직 부모 잃은 고아였지,

기성아 , 내가 여기 남한에 내려와서 인간답게 먹고 인간답게 편하게 살다보니 그때 어린 시절 17살까지,  너도 그렇고 나도 왜 그리도 굶주림에 살았을가? 하는 의문이 난다.  옛날 속담에 <개구리 올챙이 때 생각을 안 한다.> 고 하였지만  한 맺힌 17살 전의 일은 나도 너도 잊지 못하리라 본다.
   아무리 아버지가 자식들을 잘 해먹이고 잘 해 입히라고  집에 들여오지만 그 반대로 새엄만 꿍꿍 집에 붙어있는 창고란 창고에 다 처 놓고 썩 일지 망정 먹이지 않아 결국에는 도적 아닌 <도적>이 되어 창고 열쇠를 재간 것 열어 훔쳐 먹기도 많이 훔쳐 먹던 일도 생각나 웃음절반 설음 절반 나온다. ㅠ ㅜ ㅋ
그러다 발각 되여서는 멍들게 매 맞아 팔다리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학교에 못나가는 일들이 종종 많이 벌어져 끝내는 새엄마의 흉이 소문나 너와 나를 <함흥 학원> 에 보내겠다고 너의 담임 선생님과 저의 담임 선생님이 며칠 벅적대며 떠들고 하여 끝내는 새엄마를 잘 혼쌀 내였던 일도 난 아직 잊혀 지질 않는다.

이런 저런 고생 끝에 나는 사회에 나와 일하여 적은 돈이나마 손에 쥐게 되어  배고픔은 면 할 수 있었고 너에 대한 나의 배려도 조금이나마 있어 좋아 지려는데 너는 오히려 내가 걱정되어 졸업하기도 전인데
지겨운 새엄마의 손에 벗어나 빨리 집을 나오기 위해 군대 나가겠다고 학교 교장선생님 방에 몇 번이나 찾아다녔지.   너무 작아 군대 못나간다는 말은 못해주고 사회생활 1년 더하고 오면 그때 군사동원 부에 등록 해준다는 교장 선생님의 말에 기가 축 쳐져 혼자 꿍꿍 앓다가 끝내는 너의 남자 담임 선생님이 많이 힘을 써 준덕에 군대 입대가 되었지.

난 그때 네가 군대 나가면 온갖 새엄마 눈치 안보고 잘되었다 생각은
했어도 45kg 도 안되는 몸과 155cm도 안 되는 키에 오히려 총이 너를 잡아끌고 다니면 어쩌랴? 하는 걱정이 들어 생고생 또 사서 하는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팠구나.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고생은 누구나 하번은 겪는 법이고 서로 고생길이 다를 뿐이라 하였다 한다.
너와 나는 부모 잘못 만난 덕에, 태어나기를 그 땅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혹시, 고생은 면 할수 있으련만 깨진 운명이라 생각하고, 그리고 피 할 수 없는 길이라 생각해, 알았지!

그러니 그렇게도 힘들게 군사복무 11년을 끝내고도 당이 부르는 곳에 청년들이 앞장서야 한다며 광산으로 무리 배치 받아 제대 배낭을 광산 기숙사 침침한곳에 내려 놓았지.

또 거기에 장가를 들었다는 것이 어쩌면, 그 꼴 이였니?  내가 듣기에도 광산 골 안에 마음 예쁜 처녀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하필이면  외동딸에 버릇없이 못된 처녀를 만나 한참이나 마음 고생도 했는데 너희 장부와 장모는 오히려 너를 광산에서 시내로 나갈 궁리 안한다고 몹시도 너를 괴롭혔지,  네가 더 참지 못하고  좀 성질을 부렸다하여 이혼도 하지 않은 사위를 광산 안전부에 고발하여 재판도 없이 함흥 영광 교도소 에 끌려가게 하고 그 덕에 너는 억울하게  감옥에서 말 못할 인간이하의 사람대우를 받으며 굶주림에 죽지 못해 살았고 1년 끝에 감옥에서 나오긴 했어도  허약이 된 체질에 기름끼 있는 음식을 갑작스레 먹다나니 한동안 온몸이 퉁퉁 부어 많은 고생하였지.  
어쩌면 너는 그리도 살기 힘드냐?  
다행히도 로동 교양소 나온 이후 함북에 있는 사촌형이 힘써 광산일은 안하고 너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잡아 일하게 되어 나의 마음은 가벼워 좋았는데,  마침 더 경사스러운 일은 알뜰한 색시를 만나 결혼하여 귀동 딸 두고 잘사는 모습에  얼마나 장해 보였는데, ... 지금도 그때처럼 사는 건지? 아니면 험한 일을 당하고 또 어떤 고생 겪고 사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너의 생각을 해본다.

  정말 나 혼자 여기에서 근심 걱정 없이 사는데다 또 없는 것 없이 다 갖춰 놓고 차 까지 몰고 다니며 살다보니 마음은 달려가 너를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구나.   에휴:: 제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면 원이 없겠는데, ...

하나 밖에 없는 사랑 하는 동생 기성아!!
너는 이 누나에게 있어서,  물론 오빠와 형님, 조카들도 생각나고 가슴 아프지만 네가 제일 내 가슴에서 불쌍한 추억만 있어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리는데 , 어쩌면 좋냐? 제발 함께 모여 실컷 보며 살았으면 원이 없을 것 같은데 언제면 그런 날이 오겠는지, 기다려진다.

   기성아 , 그리고 많은 말 하다 보니 순서가 엇갈렸는데 참 13년 전, 너의 광산 병원에서 주사 맞고 야단 들썩 했던 일 생각나니?

내가 휴가는 없고 진단 받고 어쩌다 너희 집에 놀려갔다가 땅땅 굳은 강냉이를 먹고 체하여 그냥 토하며 설사하고 다 죽는다고 했을 때 나를 살리겠다고 많이 고생 했지. 그때 너는 나를 업고  병원 까지 가야 되는데 힘이 모자라 안 되자  너 친구에게 안타까이 사정하며 “우리 누나,... 우리 누나 살려야 해, 빨리 빨리!!”   하며 거의 40분 되는 거리를 친구의 등에 업혀 광산 병원에 데려가 빨리 대책을 세워 살려주었거든.  정말이지 나에겐 둘도 없는 귀한 동생이자 <은인>이구나. 같이 있을 땐 응당한 일로 여기였는데,... 참 감사하고 사랑스럽다.
내가 지금도 그때 이 일을 생각 하는데 너 로서도 드문 일이고 몹시도  들볶아 대던 일이여서 가끔 생각하고 있으리라 본다.  하여튼 형제간의 뜻 깊은 추억 거리가 있어 좋은 것 같다.
그래, 지금도 그때의 다정했던 친구들과 변함없이 소식도 오가며 잘 지내고 있겠지?
  하긴 나도 그때 신세진 값을 톡톡히 뱉어 났지,

네가 한창 광산 <돼지 동산> 부업 책임자로 있을 때 광산에서 대주는 돈이 없어 현금을 마련한다고 부업지에서 돼지 한 마리를 잡았지.
그  돼지 한 마리를 잡아 시골에서 팔다 더 팔 방법이 없어 나를 업어준 광산 제대군인 친구와 함께 룡양역 에서 오후 4시에 떠난 것이 단천 역에서 6시간 정전되어 함흥에 내려 보니 자정이 훨씬 넘은 새볔 2시였다고 했지.  차마 잠자는 저를  깨우기 미안해 역에서 잠간 눈을 붙이고 아침 4시에 들어 왔었는데  참, 가뜩이나 큰 눈은 벌겋게 되어있어 너를 보는 내가 피곤 하였어, 그래도 네 정신은 똑바로 돼 가지고 나를 다짜고짜 없이 재촉하더라.ㅋ ㅎ
난데없는 돼지고기를 내놓으며  새볔 장 때 팔아 달라고 울상 되어 부탁 하 길래  그따위 책임자 일이 사람의 뼈를 갉아 먹는 줄 모르는 네가 가엾어 새볔 삼일장마당에 고기 팔러 나갔었지,

정말이지 남이 하는 일은 다 쉽고 잘 되는 줄 알았는데 정작 내가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라 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그때야 알았어,
또, 그땐 시장 규정이 고기류와 공업품은 단속 품이여 마음대로 팔수 없다는 것도 알 수 없는 저희들은 안타깝게도 몇 키로 못 팔고 성천구역 감찰과에  단속 걸려 고기도 뺏기고 또 나는 출근도 못하고 구류장에 들어갔지. 하긴, 그래서 남이 힘들다는 <똥칸>도 앉아 봤구나,ㅋ ㅎ
너는 비록 그 장소에서 달아나 몸은 건졌지만 고기 값은 네가 변상하고, 몸은 몸대로  고생하고 또 나는 더 비참한 꼴을 당 하였고, ...

그 해 사회 안전일(11월19일) 같이 축전에 참가했던 고원 광철과 광일이가 아침교대하고 복도로 들어왔는데 마침 내가 먼저 그들을 보고 얼굴을 푹 숙였지만 더 이상하게 복 광일이가 저 인줄 모르고 얼굴 들라며 고래고래 소리 치더라. 그래도 얼굴 안 들고 있으니 가까이 철창 앞에 와서 소리치려다 말소리가 뚝 끊기는데 저를 알아 본 것 이였지, 전 그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기 싶더라, 후에 감찰과장에게 이야기 해주어 빨리 나왔지만 오후 3시에 나오다나니 연락 없이 출근 안 한 저 때문에 <회고록>공연 시연회도 못하고 난리가 났더라, 여기 남한 같으면 손바닥만 한 핸드폰으로 연락해도 백번은 했을 텐데,
참으로 그 때 일을 생각하면 너무도 가슴 아파 아직도 한숨이 새어 나오는구나, :::
  사랑하는 동생 기성아 ! 너는  판이한 두 세상, 이라는 문자는 교과서 에서만 들어봤지 실지 눈으로 보고 겪어보지는 못하여  너무도 판  이한 그 말뜻을 잘 모르고 있을거다.
  
  더 이상 네가 살고 있는 /김/ 독재자의 정치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되며  민족 분단의 아픔은  하루빨리 가셔지어 너를 비롯해서 북한의 불쌍한 인민들이 내가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처럼 판이한 이 세상처럼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성아,  지금 너의 딸 윤희는 더 예쁘게 크고 많이도 변했겠는데, 어린 9살땐 너를 많이 닮았던데 지금은 누구의 모습이냐?
정말 이 땅! 대한민국엔 아직 저 혼자 이여서인지 미치도록 형제가 그리워 지는구나.  또 어느 한 번도 잊어 본적 없는 너를 그리는 이 누나의 심정을 고맙게 받아주고 때가 되면 꼭 너와 오빠,  조카 들을 음성으로라도 들어 보려 노력하겠어.  그리고 너와 오빠, 언니 몫까지 다해서 어머니 고향을 찾아 불쌍하게 이 세상을 사직하신 어머니의 안부도 전해주겠어

  나의 사랑하는 동생 기성아!
이 누난 항상 너의 걱정에 근심 놓을 날 없이 지내고 있으니 꼭 내말 명심하고 통일 되는 날 까지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  내가 여기에서 살면서 TV 에 피뜩 흘려가는 내 고향 이고 네가 지금 살고 있는 북한이기에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아 북한을 다시 들어다 보지만  너무 눈 감겨 못 볼견이야.
그렇다고 당장 뒤집어 놓을 수도 없는 일이고 , 이때까지 참고 견디 였는데 더 힘을 내여 살아줬으면 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10년 넘게 소식 한번 주지 않은  이 못된 누나를 용서해주길 바란다.
언젠가는 너에게 구원의 손길을 꼭 보낸다고 약속할게!!
사랑하는 기성아!  우리 서로 만나지 못해도  혼자 죽을 권리는 없어!  
이누나가  너만이라도 연결하여 목소리라도 들어 보기 위해 노력 하겠어 , 그리고 예쁜 귀동 딸 잘 키우고, 희망을 잃지 말고  몸조심 안녕.






2010년 8월17일 어머니 고향 충청도에서 누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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