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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큰 집 형님에게200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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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 영 석


형님! 연로한 몸에 건강은 어떠하신지요?

제가 형님을 마지막으로 뵈옵는지도 어느덧 십년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때가 1995년 8월도 다 저물어가는 어느날이었지요. 이해 북한에서는 경제난, 식량난으로 하여 온 나라가 배고픔에 시달리여 몸부림치고 아우성쳐도 살아갈 길은 그 어데서도 찾아 볼수 없었습닐다. 이러한 난국에서 오직 살아날 길은 앉아서 죽느냐, 그렇지 않으면 쓰러져 죽는한이 있더라도 자유를 찾아 험난한 가시덤불길을 헤쳐나가야 할 갈림길에 놓여있었습니다.

저는 이 갈림길에서 좌왕 우왕하며 동요하고 주춤거렸으나 결국 제가 선택한 길은 자유를 찾아떠나는것이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막상 북한을 탈출할 결심을 확정해놓고도 형님과 다시 헤여진다고 생각하니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미 내가 결심한일인 만큼 뒤로 미룰수는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헤여지기 앞서 형님 얼굴이라도 다시 보고떠나는 것이 내가 지켜야할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고혈압진단을 받고 안정치료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이라도 형님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나로써도 더는 억제할수 없었어요. 이제 형님과 헤여지면 영영 다시 만날 기회가 없는 것은 뻔한 일이였기 때문이었지요. 나는 더 생각할 여유없이 여행길에 나섰지요.

그런데 기차가 제대로 운행되지 못해 며칠을 기다려서야 겨우 차에 오를수 있었어요. 그것도 통행증(여행증명서)없이 겨우 차에 올랐으니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기 짝이 없었지요. 죄를 지은 사람의 심정이니 가슴이 떨릴 수밖에 없었지요.

차표검열이 걱정되어 나는 가슴을 조이고 안절부절 하였으나 이것을 모면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나는 차표검열에서 단속되어 벌금을 내라고 욕설을 퍼부어도 단 한마디도 변명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나는 생각다못해 형님에게 드리자고 준비한 술 한병을 섬기고서야 위기의 고비를 넘길수 있었습니다. 차는 열시간 넘게 연착되어 날이 밝을 새벽녘에야 목적지에 도착했어요. 그때 내가 아무런 연락도 없이 형님네집 대문앞에 불쑥 나타났을때 형님이 두팔을 벌려 나를 끌어안고 눈시울 적시던 감격스러운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그때 나는 이틀동안 형님네집에 머무르면서 저녁 잠자리를 형님과 나란히 하고 지나간 추억들을 되새겨보며 한 많은 세상을 한탄해보기도 했지요. 그때 형님과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향에 대한 깊은 명상에 빠져 들고 말았지요. 이것이 부모처자를 고향에 두고온 이산가족의 가슴아픈 고통이 이었으니 이고통을 그 누구와 함께 나눌수 없고 오직 가슴속 깊은곳에  묻어둔채 묵묵히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형님!  저는 지금도 저와 마지막으로 헤여지던 날 아침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새날이 밝아오고 동이 훤이 트기 시작했지요. 이제 형님곁을 떠날 시간도 얼마남자 않았지요. 이제 형님과  헤어지면 영영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인줄을 뻔히 알면서도 형님에게 말할수 없는 것이 너무나 가슴아프고 마음쓰라리었습니다.

이날 아침 밥상우에는 토끼 한 마리를 통째로 삶아 올려놓았습니다. 형님께서는 이것을 나의 앞에 밀어놓으시며 나에게 많이 먹으라고 은정깊은 사랑을 베풀어주었습니다. 나는 밥상을 마주하고는 선 듯 수저를 들수 없었습니다. 형님의 지극한 정성에 뜨거운 눈물이 자꾸 목구멍을 적시였기 때문이었지요. 이 일이 어제인 듯 지금도 나의 머릿속에 영원히 간직되어 있습니다.

형님, 나에게는 두분의 형님이 있었으니 그중 한분은 친형이요, 다른 한분은 큰 집형님이었습니다. 두분 다 나에게는 귀중한 혈육입니다. 그러나 내가 큰 집형님에게 남다른 애착을 가지게 된 것은 나보다 형님이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고향에서 태어나 6.25전쟁이 일어날 때까지만 해도 나는 고향에 줄곧 못박혀 형님과 함께 살아왔으니까요. 나는 이곳에서 조부모님과 함께 세식구가 살았으니 고향에 대한 애착이 남달리 클 수밖에 없지요. 큰 집과 우리집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으니 집안의 대소사까지도 함께 의논하며 한 집안식구처럼 살아왔지요.

더구나 나는 어릴적부터 큰 집형님들을 따라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워왔습니다. 산에 나무하러가면 형님들과 같이 지게를 지고 따라 나섰고 소꼴을 베러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갈때면 나만은 소잔등에 올려 앉히고 형님들은 길잡이로 나섰지요. 참으로 나에게서 어린시절은 형님들이 곁에 있어 늘 마음 든든하고 즐겁기만 하였지요.

그러나 이러한 나의 행복한 순간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으니 그것이 바로 6.25의 피비린 내란이었습니다. 평화로웠던 마을을 고요한 정적에서 깨우고 삽시에 사람들을 전쟁에 대한 공포와 불안속에 질식시켜버리었습니다.

남으로 진격하던 인민군은 유엔군의 저항에 부딪쳐 북으로 뒤걸음치며 밀려들어왔고 국군은 승전고를 울리며 북진의 길에 들어섰지요.
당시 고향마을도 군사요충지와 가까운거리에 있었으니  적아간의 치열한 격전장이기도 하였습니다. 하늘에서는 비행기가 우르릉 거리고 지상에서는 천지를 뒤흔드는 포성이 고막을 터질 듯 요란하게 울리었습니다. 주변도로와 산과 마을은 포연탄우에 휩사여 산천초목도 몸부림을 치고 있었지요.

이런 긴박한 정황에서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 살길을 찾아 피난길에 나섰고 그때 형님은 읍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 들를 사이도 없이 마을에 가족들을 남겨든채 피난길에 나섰고 그뒤를 이어 며칠지나 저도 피난길에 들어섰는데 저는 그때 향방도 모른채 무턱대고 남을 따라 피난대열에 끼여들어 북으로, 북으로 끝없이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 후 형님은 피난길에서 곧바로 인민군에 징집되어 총을 잡고 전쟁에 참가했고 나도 그 후 어린몸으로 인민군에 입대하여 쓰디쓴 전쟁의 참화를 직접 목격할수 있었습니다.

1953년 7월 전쟁의 포화가 멎고 그 후 몇 년이지나 형님과 나는 다시 사회에 진출하여 뜻깊은 상봉을 할수 있었지요. 이렇게 형님과 저는 전쟁의 풍파속에서도 끄떡없이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살아왔지요.  그 후 형님은 사리원에 자리잡고 살았고 저는 함흥에서 살고 있어 서로 멀리 떨어져있어도 마음만은 항상 형님에게 달려가고 있었지요.

또 좋은 소식이 있으면 서로 편지를 통해 알려주고, 보고싶으면 서로 오가면서 의지하고 정을 나누면서 다시는 헤여지지 않으리라고 굳게 확신하며 살아왔건만 그 약속을 버리고 형님곁을 떠난 이 동생의 죄책감  말로써는 다 표현할수 없습니다. 널리 양해 해주십시요.

세월은 흘러 우리가 정든 고향을 떠난지도 반세기가 넘었건만 우리 민족은 아직 통일을 이룩하지 못한채 부모처자가 헤어져 서로 안부조차 모르고 있으니 이보다 더 큰 고통과 아픔이 어디 있겠어요. 이제 분단의 비극이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됩니다. 이제라도 우리 민족은 남북이 힘을 합쳐 화해하고 협력하며 서로 돕고 이끌어 통일의 위업을 이룩해 나가야 합니다.

형님! 저는 북한을 탈출하여 수없이 많은 사선의 고비를 넘고 넘어 2001년 꿈에도 그리던 고향땅을 다시 밟을수 있었습니다.  귀국하자 제일 먼저 찾은 곳이 고향 마을이었습니다. 고향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나를 반겨주었고 친척들과 친구들도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형님! 저는 이곳에서 형님께서 그토록 그리워하며 애타게 가슴을 태우던 형수님과 조카(아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건강한 몸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형님의 소식을 접하자 너무도 기쁘고 반가워 감격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아마 형님도 이 소식을 접하면 만시름이 놓이고 가슴에 맺힌 한도 풀리리라고 생각합니다.

형님! 형님은 비록 연로한 몸이어도 지금까지 꿋꿋이 살아왔던 것처럼 더욱 억세게 마음을  먹고 반드시 형수님과 아들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더욱더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리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동생 영석으로부터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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