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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 옥순에2004/11/09
관리자


순간도 지체할 수 없는 긴박한 그 순간!
서로 부둥켜안고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의 긴 터널를 떠나면서 한없이 눈물만 흘리던 너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히 어려와 이밤도 잠들 수 없구나

옥순아!
귀여운 내 손주 영이와 철이는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박서방은 차디찬 감방안에서 아직도 살아있는지?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는 나오지 못한다는 수용소-
그곳에 들어가 가족들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박서방과 너희들을 생각하면 이곳에 온 우리 모두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슬픔과 괴로움에 숨쉬는 것 자체가 죄스럽단다.

우리는 두만강의 첫 얼음속에 뛰어들어 얼름장 뽑느라 몇 번씩 숨박꼭질을 하면서도,이 모질고 질긴 목숨인지 용케도 살아남아 낮설고 낮선 중국땅에 구사일생으로 살아 나왔단다. 가는 곳마다 언어와 관습이 달랐고 중국 공안대원들과 조교들의 밀고가 언제나 우리 주위를 맴돌면서 한루 밤도 편히 잘수 없었단다.

그런 와중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영희가 그만 병들어 죽었는데 묻힐땅도 없어 우리는 그 어린 것을 어쩔수 없이 화장했다. 병들어도 병원에 가면 온 가족이 잡힐 것 같아 우리 모두가 지켜보면서도 손한번 쓰지 못하는통에 그만 그 어린 것은 우리모두의 가슴에 크나큰 상처를 남겨놓고 저세상으로 갔단다.

요행이 한국행을 인도하는 사람을 따라 몽골의 사막지대에 들어섰다.
풀한포기 없고 아무표적도 없는 100리길을 걸어가면서 모두가 탈진했고 우리운명은 거기서 꿋나는 줄 알았는데 참으로 운명이란 묘한것이여서 우연히 몽골족 청년를 찾아 살아날 수 있었다.

또다시 제3국를 거치면서 그처럼 그리던 자유대한의 품에 안길수 있었다
옥순아! 한끼 한끼를 걱정하면서 오늘도 장사보따리를 지고 몇시간이고 걸어다니는 네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국행을 한 우리와, 수용소에 있는 박서방때문에 얼마나 구박인들 심하겠니. 잡곡밥3끼에 된장국이라도 먹으면 아무것도 바랄것이 없는 우리들인데 누가 우리의 이러한 소박한 소원마저 무참이 빼앗아 갔니!

이곳에 와서 영이와 철이 또래아이를 보고 나이를 뭍으니 3-4살 정도은 더 적더라. ‘세상에 부럼었어라’하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죽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단벌 단체복을 입고 온갖 학교의 규률생활에 시달리고 있는 내 손자들, 네가 살고 있는 그 속은  이세상에 어디에도 없단다. 정말 이곳 아이들이야말로 “왕 중 왕”이란다. 이밥도 맛이 없다고 투정질하고 온갖 간식도 입에 맞는 것을 골라먹으면서 외국어를 외치고 자기 취미에 맞는 학원에 다니는 애들을 보면 영이와 철이 생각에 저절로 눈물이 흘러나온다.

나이에 맞지않게 얼굴에 잔 주름 투성이고 한줌밖에 안되던 나의 허리, 일찍이 등이 굽었던 이 엄마를 지금도 기억하는지? 나는 이곳에 와서 몸무게가 15킬로그램이나 늘고 얼굴주름도 펴지고 배가 나오니 허리도 펴지고 하여 20년은 더 젊어진 것 같다. 집안 구석 구석은 더 마랄것이 없이 만족하고 방마다 TV와 전화가 있고 전기, 전자제품이 갖추어져 있어 불편한 점이란 아무것도 없다. 얼마전에는 네 동생 영순이까지 자가용 승용차를 샀단다. 결국 우리집에도 자동차 2대가 생긴셈이다. 우리는 열심히 살고 있다.금철이는 대학에 다니고 영순이는 **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한단다. 나도 컴퓨터 학원에 다니고 요리학원에도 다녀 자격증도 땃단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어떻게 상상인들 했겠니?
그저 전설같은 이야기로, 희망사황으로만 생각했던 그 모든 사연이 우리들의 실생활로 되였단다. 나도 이웃들고 잘 어울리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자원봉사도 나간단다. 자원봉사란 자원적으로 몸이 불편한 사람, 생활이 어려운 이웃들, 소녀, 소년가장들을 찿아가 사랑과 정성으로 돌봐 주는것이란다.

옥순아!
경의선이 연결된다는데 과연 내가 죽기전에 그곳을 지나갈수 있을가 생각하며 흘러가는 세월이 야속하단다.힘들더라도 꼭 참고 견디여라. 너야 4남매의 맏이로서 언제나 강하지 않았니? 우리는 꼭 살아야 만날 수 있고 또 만나야 한단다. 내 너를 만나면 그동안 못다한 사랑을 몇배로 담아 주련다.네 동생들도 언니와 누나를 만나는 그날이 오면 자기 자신이상으로 사랑하겠다고, 온갖편리를 다해 보장해 주겠다면서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단다.

너 이름으로 저축통장을 따로 만들어 놓고 아무리 없어도 매월 정기적으로 돈을 모아 네 몫을 챙겨놓고 있단다. 우리서로 그리운 마음을 밑거름하여 몸과 마음을 굳건히 다지면서 맡은 일에서 최선을 다하자,
그러면 만나는 그날까지 부디 안녕하기를
2004년 8월
서울시 노원구에서 어머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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