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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채 옥
오빠, 나 채옥이야. 오빠에게 무엇이든 주고 싶어 했던 채옥이야.
어제 꿈에서 오빠를 봤어. 집 앞에서 오빠와 너무 재미있게 놀았는데 아침에 상쾌히 잠에서 깨니까 꿈이 아니야.
얼마나 아쉬웠는지 몰라.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어?
잘 있는거야?
남들처럼 가정환경도 좋고 키도 크고 하루 한끼만이라도 이밥 먹고 건강했으면 나 걱정하지도 않아. 아무리 못 만난다 해도 나 슬프기는 하겠지만 걱정은 하지 않을거라고. 내가 오빠네 집에 갔을 때 얼마나 마음 아팠는지 알아?
옥수수밥이 먹기 싫어 학교 갈 때 아침마다 부모님 한데 야단맞고 매일 울면서 가던 거 보고 나도 갑자기 울고 싶어지더라. 나 거기서 제일 가슴 아팠던 게 식사 때였어. 밥은 맨 옥수수뿐이었고 반찬이라곤 감자 장조림 하나 뎅그라니 놓여 있는거 보았을 때 정말 마음이 아프더라.
나 외국에 있다가 아빠가 한국으로 가자고 그러실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오빠였고 제일 마음에 걸리는 것도 오빠였어. 오빠는 내 사촌 오빠였지만 난 한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언제나 친 오빠로만 생각하고 따랐어. 어린 마음에도 오빠가 자꾸만 가여워져서 무엇이든 내가 가지기전에 오빠에게 주곤하였지. 어릴 때부터 힘든 환경에서 자라는 오빠가 안쓰럽기만 했어.
이제는 1고등중학교 졸업할 때가 됐겠네.
오빠가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학교에도 잘 적응 못하고 가정형편이 어렵다고 애들에게서 놀림까지 당했다는 말 듣고 나 해외에 나갔을 때 얼마나 벼르고 벼뤘는지 몰라. 오빠 놀린 그 자식들 내 손으로 때려 치겠다고...
오빠 그거 알아? 나 매일 밤 속으로 기도하고 잔다는 거. 정말이야.
여기 한국은 달이 가끔씩 떠. 그래서 자주 달 보며 기도하기는 어려워.
그리고 다른 한 가지 이유는 달 보면 가족들도 저 달 보고 우리를 생각하고 있겠지 하는 생각에 차마 달을 보지 못하겠더라고.
오빠, 난 통일 전망대에 두 번씩이나 갔었어. 그냥 북한 땅이라도 보고 싶어서.나 해외에 나갈 때 오빠네 집 앞에 있는 흙을 주머니에 담아서 갖고 가려고 했었어. 근데 정말 그렇게 했을 걸 그랬나 봐.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서 흙냄새라도 맡아보면 좋잖아. 옛날 생각도 주마등처럼 하나, 둘 떠오를 것이고…
오빤 세상에서 제일 원하는 게 뭐야? 나는 딱 한 가지 있어. 물론 그 밖에도 원하는 건 많지만 가장 원하는 것은 가족들과의 만남이야. 내가 원하는 거 모두 실현되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가족들과의 만남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루어졌으면 좋겠어. 내가 죽을 때까지 가장 원하는 건 이것 하나가 될거야.
오빠, 나 누군가에게서 책 한 권 선물로 받은 게 있어. 진짜 멋있는 책이야. 100년 동안 썩지 않는대. 근데 나 그 책 쓰지 않고 있어.
왜 그런지 알아? 통일된 다음에 오빠랑 함께 쓰고 싶어서...
그 책에 글을 쓰려고 펜을 드니까 손이 안 움직여. 오빠가 기다렸다가 같이 쓰자고 말하는 거 같아서. 난 지금도 예전처럼 자꾸 주려고 하나 봐. 내가 늙어서 할머니 될 때까지도 통일이 안 되면 난 저 책에 오빠와 내가 쌓았던 어린시절 추억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써 넣을거야. 그런 다음 그 책을 대대손손 물려주고 싶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말아야겠지만.
오빠, 미안해. 내가 왜 이 말 하는지 알지? 나 혼자 잘 살아보겠다고 가족들은 안중에도 없이 한국으로 온 것만 같아 얼마나 죄책감이 드는지 몰라. 꿈에서 오빠를 보고 나면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슬퍼. 내가 한국에 온 후에 생활이 더 어려워졌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밖엔 없어.
아, 참. 오빠 얘기만 하느라고 큰아버지, 큰어머니 안부도 물어보지 못했네. 모두 잘 지내시니? 여기 오기 얼마 전 아빠가 북한에 들어갔다 오셨을 때 큰아버지 몸무게가 43킬로그램 이라고 하시더라. 그 얘기 듣고 눈물 나오는 거 겨우 참았어. 정말 그때는 이빨로 입술을 꽉 깨물었는데 전혀 아프지 않았어. 한 집안의 장정이 43킬로그램이 뭐야.
큰어머니는 어때? 나랑 사이가 안 좋았었는데 내가 떠나오기 전에 용서를 구했어. 지금 생각하면 미안한 일이야. 내가 아무리 옳았다 하더라도 그렇게 행동하는 게 아니었는데. 지금이라도 다시 사죄하고 싶어. 큰어머니, 정말 죄송해요. 그땐 제가 철없어서 그랬을 뿐이에요.
오빠, 나 사실 한국에 오니 좋아. 지금 초등학교6학년인데 친구들이 많아. 친구들과 영화구경도 가고 놀이공원에도 가군 해. 물론 그 애들은 내가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전혀 몰라. 그리고 난 컴퓨터 자격증을 2개나 땄어. 오빠가 컴퓨터를 무지 부러워하면서 옆집의 대학교수에게서 배우고 싶어 하던 기억이 나. 오빠를 만나면 내가 컴퓨터도 가르쳐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 줄 텐데…
오빠, 주위가 조용한걸 보니 밤이 깊었나 봐. 내일 또 학원에 가야 하거든.많은 말을 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고 오빠 정이 가슴에 넘쳐. 오빠, 멀리 있어도 잊으면 안돼 는 거 알지?
언제까지나 건강하구. 옥수수밥이라도 푹푹 먹어야 해. 그래야 앓지 않지. 오빠가 건강해야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고 미안해
2006년 8월 19일 멀리 남쪽에서 채옥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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