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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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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네가 국가 보위부에서의 감옥살이한지 벌써 10년이 되었구나! 오늘은 이 아버지의 생일인 단오날인데 한국에 귀순한 15명의 가족들과 친척들이 모여 생일축하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랑하는 내 맏아들 천권아! 어이하여 아버지 생일을 축하하는데 주관할 너만이 이 자리에 없느냐?! 왜 너만이 국가보위부 철장 속에서 이다지도 고통을 당해야 하느냐?! 아버지와 어머니의 속은 다 타서 재가 되어 가건만 북한 정부가 한국으로 가려던 너의 죄를 이렇게도 용서해주지 않으니 가슴이 터지도록 아프구나!
보고 싶은 아들아!
보위부 감옥생활에서 배고프고 부모처자가 그리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정치적 멸시와 고달픈 생활환경이 너에게 엄청난 타격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하염없이 조국통일의 그날만 더더욱 기다리게 되는구나. 생사를 알지 못하여 5차례 함경남도 함두군에 사람을 보내보았다. 어떤 사람은 탈북 후 함주군 젖소목장에서 일한다고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출옥 후 식사조절을 잘못한 탓으로 사망하여서 안전부 뒷산에 묘를 썼다고도 하면서 서로 다른 소식이 전해지더라. 얼마 전에 너의 처와 아들 진철이를 한국으로 데려와 이씨 가문의 장손대를 이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소식을 전했더니 며느리는 네가 감옥에서 죽지 않았기 때문에 재가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살아야한다 천권아, 죽으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다. 감옥에서의 한 많은 사연들을 어디 묻고 죽겠느냐? 내 나이 68세. 인생 말년에 사랑하는 아들을 목 타게 기다리며 목놓아 울고 있는데 살아서 통일의 광장에서 부둥켜안을 그날을 기다리자!
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이 감옥에 들어간 후 나서 자란 정든 고향, 선조들의 해골이 묻힌 함경남도를 떠나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을 거쳐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들과 그 가족들, 네 동생 천룡이네 가족, 고모네와 금이네 두 형제까지 자유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귀순하였다. 태극기 휘날리는 그 밑에서 우리 모두는 정부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행복이란 무엇이며 자유란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얼마 전에 한국 분을 만나 배고프고 굶어죽는 북한의 현실을 말했더니 이해조차 못하더라. 천권아 할머니와 이모네 외삼촌이 식량난에 빠져 세상 떠나는 현실을 보면서 피눈물을 흘리지 않았느냐. 하지만 남한은 생지옥 같은 북한과 전혀 다른 경제 강국. 자유의 나라로서 지상낙원이다. 이속에서 15명의 가족들과 친척들은 정부와 통일부, 복지관, 적십자, 교회 등 여러 지원 단체들의 보살핌 속에서 세상에 부러움 없이 행복과 기쁨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천권이와 헤어진 후 있었던 피눈물 나는 사연들을 회고할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지금 생각하면 북한에서 사회생활과 정치생활 전체가 거짓말하지 않으면 안 되고 보수가 없어도 일해야 했지.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기도 하고 어처구니도 없다. 자유를 찾은 우리 모두는 이산가족이 되었으니 조국통일의 그날에 아들을 만나고 싶은 이 마음 하나뿐이다. 우리 모두는 자유의 나라에서 말과 행동을 마음대로 하고 있으며 돈을 많이 벌어 두고 온 너희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은 것이 소망이다. 우리 부자 서로 만나 울고, 웃으며 부둥켜안을 그날을 생각하며 부디 무서운 철장 속에서도 몸 건강하기만을 바란다.
아버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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