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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전상서2008/10/23
관리자

어머님 전상서

김금산

그리운 어머님.

 

세월은 흘러 제가 집을 떠 난지도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간 어머님 병세는 어떠한지 궁금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찾아뵙지 못하고 서신으로 대신합니다. 1년이면 돈을 벌어 어머님께 효도하겠다고 떠난 이 몸이 제 목숨도 제대로 보존하기 힘든 나날들을 보내며 동북의 골목골목을 헤매었으나 저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리 밀리고 저리 부대끼다 겨우 도착한 곳이 남한 땅 이었습니다.

 

따뜻이 맞아주는 형제들도 있지만 저 같은 사람은 이방인으로 박대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습니다. 허나 어떻든 한민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생활 하도록 배려하고 있으니 그리 아시고 조만간 어머님에게 도움을 드릴려고 많이 애쓰고 있으니 기대해주십시오.

 

보고 싶은 어머님, 제가 이곳에 있는 것을 그들이 안다면 아마도 반역자의 부모가 되어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 까지도 발길에 채이겠지요. 때문에 나는 3년 여세월 중국의 곳곳에서 장사도 해보았고 품도 팔아보았고, 위험하다는 탄광에서 일도 해보았으나 차례진 것은 모진 고난과 학대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탈북자라는 죄 아닌 죄인으로 항상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었고 한, 두 달의 임금은 받지도 못한 채 중국공안의 눈길을 뒤로 한 채 피해 다니느라 지옥 속을 헤매는 심정이었습니다. 내일의 생을 담보할 수 없는 기막힌 나날이었으니까요.

 

보고 싶은 어머님.

 

어머님께서도 젊으셨을 때 중국에 사셨다니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연길시는 조선족 사람이 많이 산다는 곳이지요. 지금은 조선족 자치주의 소재지입니다. 어느 날 제가 택시를 타려고 서툰 중국말로 제 의사를 전달하니 저를 위 아래로 흝어 보고는 제 말은 들은 척도 아니하고 저보다 더 서툰 중국말을 하는 남한 아주머니한테는 연신 허리를 굽신 거리며 택시에 태우고 가는 것 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라 없는 탈북자의 신세, 못사는 탈북자의 제 신세가 너무나 초라하고 가련하여 슬픔을 주체 할 수 없는 아픈 마음을 달래며 <그래, 나는 중국 땅에 들어서면서 인간의 존엄과 자존심 따위는 이미 버린 지가 오래되지 않았는가>라고 자문하였습니다. 오직 목숨하나 부지하는데 급급하였으니까요.

 

사랑하는 어머님.

 

언제부터인가 제 마음속에는 북한에서 해마다 반복되는 식량난과 추켜세우지 못하는 나라의 살림 형편을 보고 더 이상의 미련을 가질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우여곡절 끝에 이곳 남한에 오게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이곳에 오게 됨으로 하여 어머님과의 사이는 점점 더 멀어지고 넘을 수 없는 장벽이 가로막혀 험난한 저의 생활을 예고하지만 제가 가는 길이 옳다고 생각하고 후회하지 않으며 보람 있게 살게 될 것을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물론 저의 노력 하에 달렸지만 모든 조건이 구비된 이 땅에서 못 살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허망하게 보낸 한 생을 생각하면 원한과 분노가 이 가슴에 차고 넘쳐 때 아닌 폭풍이 휘몰아칩니다. 굶주림에 몸부림치고 오열하였지만 헤어날 길은 없었고 몸은 점점 쇠약해져 젊음을 잃고 병마에 시달렸고 종당에는 비통한 삶을 원망하며 생을 마치려고 까지 하였었죠. 그런 저를 부둥켜안고 너무나 슬피 우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고 발길에 밟혀 먼 산을 바라보며 허구한 나날 눈물을 짓습니다.

 

불쌍하고 가엾은 고향의 친척들, 너나없이 굶주린 창자를 끌어안고 허덕이는 고향의 친구들, 신음하는 고향마을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먹지 못하여 영양실조로 죽은 내 손녀와 어린이들, 허약에 걸려 밭이랑을 타고 김을 매다 돌아가신 아버님과 어르신들,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잠재울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머님 저를 믿어주십시오.

 

언젠가는 어머님을 찾아뵈러 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이를 악물고 늦은 나이에 배우고 익혀 자랑스러운 어머님의 아들임을 새겨갈 것입니다. 저는 오늘도 달려갑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남한의 지방과 도시들을 희망을 안고 누벼갑니다.

 

보고 싶은 어머님, 몸 건강하셔서 다시 만나는 것이 이 못난 자식의 소망이니 어떤 고난이 있어도 참고 이기시길 빌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만나는 그날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2008년 4월 아들 김 금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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