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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고향으로 보내는 편지.2008/10/24
관리자



북녘고향으로 보내는 편지.


채학석


혜신에게...


안녕...


참 오랜만에 너에게 편지를 쓴다. 물론 너에게 이 편지가 도착하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쓰는 까닭은 혹시나 이 편지가 바람이나 바다를 통해 우연히 너에게 도착할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을 품어서 쓰는 것인지도 몰라. 다른 사람들이 이런 소리를 들으면 미친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간절한 바램,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몰라. 그래서 난 이 편지가 너에게 도착 할 수 있기를 신에게 기도한다.



이렇게 갑자기 편지를 쓰려고 하려니 어떻게 서두를 떼야할지 난감해, 평소 너를 만나면 어떻게 인사하고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줘야지 늘 생각했는데 정작 이렇게 편지를 쓰려고 하니 생각나는 것이 하나도 없어. 흔히 소설 속에 등장하는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듯이 모든 사고가 정지해 버렸어. 그래서 이렇게 서두 없이, 아무런 말이나 기억이 나는 대로 적고 있어.



넌 어떻게 지내고 있니? 밥은 먹었니? 아직도 예전처럼 소설책을 즐겨 읽으며 희망이 없는 그런 꿈을 꾸고 있니? 아직도 호련천의 물은 마르지 않고 흐르고 있니? 아직도 고향의 밤하늘에는 별이 많니? 또 아픈 데는 없고? 너무 많은 것을 물어보는것 같은 미안한 마음도 들어, 물론 이렇게 물어도 대답해 줄 사람도 없고 이 글을 읽을 사람도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이렇게 쓰고 있는 내 자신이 미치지는 않았는지 잠깐 생각도 해봐.



이제는 고향을 떠나 온지도 6년이 흘렀어. 시간이란, 지우개로 그렇게 지울 수 없을 것 같던 내 기억도 조금씩 지워가고 있어. 사람은 그래서 망각의 동물이라고 불려 지는지도 몰라. 우리 고향의 맑은 물도, 시원한 공기도, 또 도흥산에 피어있던 진달래도 이제는 조금씩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 그것이 너무 슬퍼,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생각하기 싫던 아니 꿈에서 조차 떠올릴까 두렵던 죽음들과 배고픔에 대한 기억만이 시간이라는 화살을 빗겨가듯이 악몽으로 또는 다른 이의 입을 통해 여전히 내 주변에서 떠나지 않고 있어. 아름다웠던 것들은 다 잊혀 가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편지를 쓰면서 너무 우울한 소리만 했다. 네가 만약 이 편지를 받으면 아마 이 땅이 사람살기 힘들어 내가 푸념하는 소리로 착각하겠다. 물론 사람살기는 아무 곳이나 다 힘든 건 마찬가지야 그래도 이곳에는 기회와 희망이 있어. 그곳에 없던 희망 말이야... 물론 넌 그곳에서 헛된 희망을 품고서 꿈을 꾸며 살았지, 내가 그곳을, 너에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떠나온 것은 그곳에는 나에게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야.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배고품 때문이었을 지도 모르지. 다만 변명이라도 하고 싶어... 꿈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던 그 곳에서 희망이라는 단어조차 모르고 살았던 고향에 대한 마지막 변명처럼 말이야.



너에게 고향과 조국에 대해 헐뜯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야. 다만 아직도 그 체제 속에서 자신의 나라가 세계 최고인줄 알면서 한줌의 미숫가루에 감격하며 살아갈 너와 그리고 나의 가족과 내 기억 속에 있는 모든 사람, 아니 북한의 모든 국민들이 불쌍해서 이렇게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겠어.



세상에 천국은 존재하지 않아. 다만 천국에 가까운 축복의 땅이 존재할 뿐이지. 이곳은 그런 곳 가운데 하나야. 지금은 나는 새로운 신분으로 이 땅의 국민으로 살아가. 우리가 배운 기아와 병인이 지천으로 깔린 그런 곳이 아니라 오히려 비만을 걱정하며 너무 오래 살아서 걱정하는 그런 곳 바로 대한민국 말이야.



난 지금 할 수만 있다면 너와 우리 가족을 이곳으로 데려오고 싶지만 나에겐 날개도 없고 그렇다고 판타지에서 나오는 순간이동 기술도 없어. 가끔 통일전망대에 올라가 힘껏 소리치며 너에 대한 그리움과 잊혀져가는 나의 기억들에 대한 반항으로 소리를 질러 보기도 해. 또 가끔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욕망이 꿈으로 표출되어 너를 만나 수많은 이야기를 해. 어쩌면 이 편지를 쓰는 것도 그런 간절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어 쓰는지도 몰라.



이렇게 문법도, 철자도, 서두도 없는 서투른 편지를 쓰다 보니 너와의 즐거웠던 기억들도 조금씩 떠올라. 시간이라는 지우개에 의해서 지워질까 두려워 마음속 제일 깊은 방에 꽁꽁 숨겨놓았던 우리들의 추억이 한꺼번에 봉인이 풀렸어. 철없던 소년과 소녀의 기억들이. 여기서 흔해빠진 키스도 아니고 손을 한번 잡고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들뜨고 환희에 차서 잠 못 이르던 철부지 소년의 모습과 내가 손을 잡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약간 숙이던 철없던 소녀의 모습이 떠올라서 슬며시 미소를 지어보았어. 지금 생각만 해봐도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고 가슴에 무언가 꽉 차는 느낌이 들어. 기억은 조금씩 흩어져가지만 가슴은 아직도 너를 기억하나봐. 첫사랑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머리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기억한다면 말이야.



밤은 이제 새벽으로 치닫고 있어. 초저녁부터 어떤 말들을 할까 고민도 하고 또 한동안 기억이라는 기억은 다 풀어놓고 정리도 해보고 또 한동안은 울분을 토해 내기도 했는데 이제는 서서히 날이 밝고 있어. 어쩌면 난 이 편지가 마무리되면 또 어제와 변함없이 너와 고향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어제와 똑같은 시간에 어제와 똑같은 곳으로 어제와 똑같은 것을 하러 가겠지, 그리고 너 또한 뫼비우스의 띠를 벗어나지 못하고 어제와 오늘 또 내일 변함없는 기아와 그리고 죽음을 마주 대하면서 살아가겠지. 그래도 지금은 너에게 그리고 이 편지를 쓸 수 있는 기회를 준 시간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이젠 편지의 끝을 내야 하는데 난 두려워, 이렇게 끝내버리면 너의 모습을 영원히 떠올리지 못할까 두려운 마음. 어릴 때 공포영화 한편을 보고 잠들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것 같던 그런 두려움 말이야. 그래도 이젠 정말 편지를 끝내고 현실 속으로 다시 돌아가야겠지. 조금만 더 너를 떠올리며 나의 기억이라는 바다 속에 몸 담그고 싶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으니 정말 끝내야겠다.



혜신야 오늘의 편지는 벌써 끝내지만 아직 난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시작도 못 했어. 그리고 언젠가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언젠가는 만날 날이 오겠지, 그때가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서 나와 너의 모습과 기억까지 바꿀지 모르지만, 그저 만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축복이니까 난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아. 나의 첫사랑이자 편한 친구 같던 혜신야 부디 행복해 그리고 사랑한다는 이 말 꼭 하고 싶었어.



부디 행복하기를 빌어... 아프지 말고, 울지도 말고, 항상 밝게 웃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너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어린 소년이 변해버린 것 모습에 추억이라는 향수를 떠올리며 이렇게 몇 자 적었다.


부디 행복하기를...




-밝아오는 아침을 맞으며 2008년 3월 20일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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