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님께...
차성준
어떻게 안부 인사를 전해야 할지?!
불러본지가 오래 됐고 만나 본지도 다년간의 세월이 흘러갔으니...
항상 생존의 빛이 없고, 영원히 없을 음지의 땅에서 홀로 남아 있는 내 누님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는 근심과 염려로 인사말 제대로 올리지 못해 죄송스럽고 눈물이 나는구만...
매부를 비롯해서 모두들 건강하고 어떻게 지내고 있소.
그 동네와 바로 연결된 절반 이 쪽 땅에 계시는 부모님과 우리 식구는 건강을 되찾고 잘 지내고 있소.
제도가 좋고 민심이 좋아 부모님과 우리들을 비롯한 탈북민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소. 후회스러운 것은 왜 하필이면 왜, 그 땅에서 태어나서 길지도 않은 인생의 절반을 노예 생활로 보냈어야 한단 말이요. 생각할수록 통분할 뿐이오.
누이, 아직도 우리가 탈북하던 때처럼 최악으로 힘든지 너무도 궁금하구만.
펜을 드니 자연히 그 시절 그 광경들이 악마의 화신처럼 떠오르는구만.
꿈속에서도 나타날까 두려운 추억들인데... 역전대합실들과 도시와 농촌의 예약되어 있지도 않은 길가와 들판과 산기슭의 임의의 자리 아닌 자리들에 편안하게 또 힘들게, 또는 괴롭게 자는 듯이 누워있던 굶어죽은 남녀노소의 앙상한 시체들이며...
찌든 때 자국이 남아 있는대로 시장과 길거리의 음식과 물건들을 도둑질하며, 살기 위해 몸 팔고 장사하는 등 필사의 몸부림치다가 맞고 총살당하고, 교수대에 매달려 죽어가던 모습들이 눈에 선하오.
미안하구만 누이한테.
그 때 아무리 고통이 어렵고 배고프고 지친 몸일지라도 어떻게든지 누이한테 찾아가 의견 나누고 누이네 가족과 함께 와야 했을 걸 천백번 후회되기만 하오.
용서하오. 그 때 부모님 돌아가실까봐 걱정되고 애들 굶겨 죽일까봐 서둘러 떠나서 여기 남한으로 왔소. 그리운 내 누님을 다시 만나서 얼싸안고 울고 웃으며 얘기 나누며 같이 지내볼 날이 과연 있을까?
때론 잠자리에서 누님이며 누님식구들 생각에 눈물나고 뼈저리게 누님이 보고 싶소.
물론 통일 되겠지만 그 날이 언제 오겠는지?
어렸을 때처럼 우리 형제 모두가 둘러앉아 밥도 먹고 하던 시절이 다시 있었으면...
참! 나하고 누인 어렸을 땐 많이도 싸우며 자랐지, 누이는 나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고, 난 엄마한테 누이와 싸운 대가로 부지깽이로 매를 맞았었소. 하...하
그러던 우리가 이젠 40대 아저씨, 아줌마가 되었군. 그리고 서로 헤어졌고...
그냥 횡설수설하며 내 감정으로만 쓰다보니 누님이 볼만한 내용이 있을지 모르겠소.
북한식으로 가공하며 보아주오. 그리고 이 편지가 꼭 누님 손에 도착하게 신에게 열심히 기도하겠소. 만일 못 가더라도 이 동생의 음성편지가 누님 귀에 들릴 거요.
부모님 걱정은 마오. 제도가 좋으니 점점 더 건강해지시고 모든 생활에 대만족이시오.
그리고 나와 동생이 부모님을 잘 모실께... 그냥 걱정스러운 건 때론 막걸리 한 잔에 누님 생각에 눈물 흘리시고 슬퍼하시는 모습 때문이지. 참 누님, 우리 영희도 고등학교 3학년생이고 민수도 중학교 2학년생이요.
애들 모두 열심히 공부하고 건강하고 잘 적응하고 있소.
여기 와서 딸 하나 또 낳았소. 난 이젠 자식부자요. 동생도 결혼했고, 이만 끝내겠소.
언젠가는 만날거요. 그 때까지 건강 잘 챙기고 부디 아프지 마오.
매부님, 항상 건강하시고 우리 누이 잘 부탁할게요.
조카들아, 잘 있어라.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잘해.
이 삼촌도 조금은 늙었어. 안녕히...
대한민국에서 동생 올립니다. 2009.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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