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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순 선생님께 드립니다200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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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은 주


선생님, 행여 저의 이름을 잊으시지는 않으셨는지요?

이번 홍수 피해로 제가 나서 자란 고향 땅에서 많은 인명과 재산 손실이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철부지였던 저를 고등중학교 6년 동안 담임하면서 애만 태우던 이 제자를 지금도 걱정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저 보다 후에 그곳을 떠나 이곳에 온 친구들을 통해 전해 듣고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답니다. 성깔이 사나워 사내애들 보다 더 심하게 장난치고 사고를 치고 그때마다 선생님은 저를 꾸중대신 사랑으로 감싸 안아 주셨지요. 그때에는 선생님의 그 심정을 잘 몰랐습니다.

농촌 지원 나갔다 너무도 집에 오고 싶어 가만히 도망쳐 나오던 중 부 교장 선생님한테 붙잡혔을 때 선생님은 “제가 은주 어머니가 아프다고 하기에 집에 갔다 오라고 승인했습니다.” 하면서 저를 보호해 주셨지요. 엄한 추궁을 겨우 면하였을 때 선생님은 저에게 “바보 같은 녀석...” 하면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요. 그 바보가 무슨 뜻인지 저는 잘 알고 있었으며 그래서 그때 큰언니, 이모와도 같은 선생님에게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참말로 보고 싶은 선생님! 세월의 흐름과 함께 우리도 성장하였지요.
제가 학급에서 1등의 성적을 쟁취하고 청진 제 1사범대학에 추천 받았을 때 선생님은 얼마나 기뻐하셨습니까. 그런데 평남도 어느 학교의 졸업생 전원이 당의 부름 따라 농촌으로의 집단 진출을 발기하여 그것이 전국에 확산되었고 급기야 우리 학교에서도 학년에서 제일 우수했던 우리학급이 전원 농촌에 진출하게 되었지요. 군적인 시범으로 농촌에 나가게 되었고 농촌에 뿌리를 내린 나라의 주인이 되라고 군당 책임비서랑 위원장이 연설할 때 청춘의 푸른 꿈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얼마나 억울했는지 모른답니다. 속으로는 울고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면서 웃었지만 그때 그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들의 협동 농장 생활이 시작되었고 선생님은 20여 년간 몸담았던 교단을 떠나 우리와 함께 농장원이 되었지요.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어머니만 옆에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던 그 시절 선생님은 저희들의 어머니가 되어주시었고 청년 작업반 반장이 되어 주셨지요.
뙤약볕이 내려 쪼이는 오뉴월 삼복 더위 속에서 땀을 줄줄 흘리며 일하셔도 선생님은 그 누구를 탓하지 않으셨지요. 희고 곱던 선생님의 얼굴이 황동색으로 변해도 언제나 저희들의 믿음직한 보호자로 서 계셨기에 우리들도 함께 울고 웃으며 성장하였지요.

더욱이 제가 23살 되던 해 큰 농장의 청년 조직인 김일성사회주의 청년동맹의 부 위원장으로 선거 받았을 때 그렇게도 기뻐하시고 저를 얼싸안고 눈물지시면서 “우리 은주가 용구나. 꼭 일을 잘해 훌륭한 당원이 되어라” 하시던선생님의 모습과 그날의 그 감격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던 제가 더는 되돌아 갈 수 없는 탈북이라는 길에 들어섰고 생사운명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살아나 오늘은 대한민국에 와있습니다. 저는 이곳에 와서 참말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웠습니다.

저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오늘은 중소기업의 한 일꾼으로 자리 매김을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약혼했던 남자를 여기에 와서 다시 만나 서울 장안을 떠들썩하게 만들며 결혼했고 지금은 어여쁜 공주도 보았답니다. 현재 4살인데 얼마나 귀엽고 영리한지 모릅니다.

지금 저는 한 가정의 주부로, 우리애기 영순이의 어머니로, 한 남자의 아내로, 밖에서는 어엿한 회사원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저의 청년시절 그처럼 존경했고 사랑했던 선생님을 영원히 잊지 않으려고 제 딸의 이름을 정 영순이라고 지었습니다.

선생님,
이곳에서는 매년마다 ‘스승의 날’이 5월 8일로 정해져 이 날에 제자들은 자기들을 키워주고 가르쳐준 스승을 찾아가 인사와 축하를 해 드린답니다. 그날이면 저는 제일 먼저 선생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선생님 용서해 주세요. 제가 선생님을 배신하고 여기까지 와있습니다. 그러나 곡 훌륭한 사람이 되어 통일되면 떳떳한 모습으로 찾아 뵙겠습니다.”라고 마음속으로 맹세합니다.

저와 우리 가족은 한국 행을 도와준 아버지의 ‘죄’ 때문에 야밤에 두만강 찬 얼음 속에 몸을 던지었고 수많은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서 한번도 택한 길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귀밑머리에  때 아닌 흰 서리가 내리지는 않으셨는지요?

선생님, 부디 건강에 주의하십시오. 우리는 꼭 만나야 합니다. 그날은 반드시 옵니다. 저는 이곳 서울에서 있는 힘을 다해 이날을 앞당기는데 도움이 될만한 일에 전심하겠습니다. 참말로 보고 싶습니다. 참, 문안인사가 늦었는데 선생님의 두 딸과 아들, 남편 되시는 분한테도 이 제자의 인사를 꼭 전해주십시오.

저 하늘에 나는 새들은 38선을 넘어 내 고향 북녘 땅에 가는데 우리는 언제... 하면서 새들을 부러워 할 때가 있답니다.

벌써 자정이 되어옵니다. 저의 남편과 딸 영순이는 자고 있습니다.
그들의 머리맡에서 이 글을 씁니다.
부디 만나는 날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서울에서 제자 은희 올립니다.
2006년 8월 8일 박은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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