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 70, page : 3 / 4, connect : 0
: 전체 : 2004년 (28) : 2005년 (54) : 2006년 (66) : 2007년 (70) : 2008년 (51) : 2009년 (38) : 2010년 (39) :
철준동지에게 이 글을 드립니다2007/10/12
관리자

철준동지에게 이 글을 드립니다 

정용석 


  철준동지!

  동지의 이름을 소리 없이 불러보노라니 흘러간 10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많이는 살지 못했어도 내 생애에서 가장 어려운 시절,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던 시련의 연속이었던 그 시절, 저는 나 자신보다 동지를 더 믿었고, 혈육 정을 나눈 친 형님처럼 나의 믿음직한 보호자로, 혁명동지로 언제나 함께 있어준 동지를 나는 심장의 고동이 멈추는 한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 편지에서 서두에 동지라고 썼지만 저는 그 시절 언제나 “형님, 형님” 하였던 것처럼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형님!

  혈육 한 점 없는 북방의 탄광마을에 <민족반역자 가족>으로 몰리어 추방되어온 우리 가족 앞에는 모든 것이 무서웠고 희망의 빛이라고는 실오리만큼도 없었습니다. 큰 형님이 한국행을 먼저 택한 결과, 우리 온 가족은 순식간에 <혁명가 유가족>으로부터 <민족 반역자 가족>으로 바뀌었고 눈보라가 기승을 부려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1월초에 북방의 그곳에 가서 누우면 하늘이 바라보이고 다리를 뻗으면 발이 가마뚜껑 속으로 들어가는 쓰러져가는 오막살이집에 약간의 이삿짐을 풀어놓았습니다.


  군 노동과에서 배치해준 종이공장에 가서 처음 형님을 만났지요. 형님은 그때 생산반 반장이었고 시도청위원장이었지요. 군에서 제대로 그 기백이 온몸에 철철 넘쳐나고 불의에 대해서는 추호도 용납하지 않는 참말로 모든 것이 겸비된 초급 지휘만이었습니다.


  모든 종업원들이 나를 ‘반동처럼 여기면서 정을 주지 않고, 경각심 높은’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음을 저는 온몸으로 느꼈으나 그 어디에 대고도 하소연할 길이 없었습니다. 만경대 혁명학원을 졸업하고 전투비행기의 조종사로 갓 자리매김을 한 저는 하늘을 훨훨 나는 “매”가 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하루아침에 “파지”를 선별해서 재생시키는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너무나도 가혹한 운명 앞에서 다시는 일어설 용기조차 없었습니다.



  일을 시작한지 며칠 후, 퇴근시간에 형님은 저한테 다가와 얼어터지고 부어오른 저의 손을 꼭 쥐고 “건이야! 사내대장부가 이게 무슨 꼴이야. 힘내!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란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해라. 열심히 일하면 당에서는 너를 알아줄 것이다. 힘들면 나한테 와.”라면서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저에게 삶에 대한 용기를 안겨주었지요. 그러면서 형님은 공적으로는 반장이라고 부르고, 사석에서는 형님이라고 부르라면서 친 혈육의 정을 안겨주었지요.


  형님! 그때 겨울은 왜 그렇게도 추웠던지요. 산에 올라가 종이 원료로 쓸 나무를 찍어 공장 뒤 울타리 안에 쌓아놓고 경비원들이 계속 지키도록 하였지요. 그런데 공장 간부들은 자기 권한대로 상부의 친인척에게 무작위로 떼어주고 그곳 토착민과 다른 친구들 역시 경비당번 차례가 되면 자기 집 물건처럼 날라다 갔습니다. 저도 경비원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나무 몇 토막을 가져갔는데, 어느 날 높이 쌓아놓았던 나무가 동강이 나자 당 비서와 지배인은 마치 자신들은 너무나 결백한 것처럼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도적놈>을 찾아내라고 길길이 날뛰었지요. 그 <도적놈>의 굴레가 몽땅 나한테 쏠려왔고 <간부님>들은 나를 공장 정문 기둥에 밧줄로 묶어놓고 “이 자식은 민족 반역자 종자인데 거기에 도적질까지 했으니 용서치 말고 순번대로 돌아가면서 힘껏 때려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자 동료들은 나를 슬쩍 밀치면서 지나갔고 다시 그들은 소리치면서 힘껏 때리는 시범동작까지 하였지요. 이때 형님이 앞으로 나서서 “이 나무를 가져간 사람은 모두 앞으로 나와. 나부터 가져갔어…….” 그러자 종업원 전체가 앞으로 나섰고 <간부님>들은 급기야 반장인 형님에게 “어디, 당 생활총화에서 보자!”라고 큰소리치고는 뺑소니치듯 방에 들어갔지요. 그 후 형님이 당 회의에서 많이 비판받았는데 제가 물으니 “일없어, 저들도 가져갔는데 그들은 우리보다 10배는 더 가져갔을 거야. 그러니 나한테 어떻게 큰소리치겠니?”라고 말하는 형님을 바라보면서 나는 속으로 사나이 눈물을 흘리었습니다.


  평양에서 나서 부러운 것 없이 자란 나는 체력적으로 공장에서 으뜸이었고 그에 맞게 어렵고 힘든 일을 공장에서는 모두 나에게 맡기었지요. 오직 열심히 일할 권리밖에 없어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한 것을 동료들과 형님은 너무나 잘 알기에 그 후에 <군시도청위원장> 표창에 저를 추천하였지요. 너무나 비중이 낮은 표창이고 또 그때 당시 당 비서가 없어 시도청위원장인 형님이 독단으로 나를 추천했는데 운이 좋게도 그 표창이 내려왔습니다. 그때서야 당 비서가 그 사실을 알고 성이 나서 “누가 이런 민족 반역자에게 표창을 주라했어. 당장 군에 환원하시오.”라고 욕설을 하였지요. 형님은 너무나 어이가 없지만 그 앞에서는 알겠다고 대답해놓고 그날 밤에 우리 집에 와서 “건이야! 동맹원들 앞에서 너한테 주려고 했는데. 그래야 그들도 너한테 잘 대해줄 것이라고 믿었는데…….” 하면서 그 사연을 이야기하고 나한테 군시도청위원장 표창을 주고 갔지요. 그보다 더 급 높은 표창을 수없이 받을 저였지만 저도 그때 형님의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마워 깊은 장속에 넣어두었다가 우리가 그곳을 떠날 때에는 소각해버렸습니다. 우리가 간 다음 우리 집 가택수색을 할 것이고 그것이 발각되면 형님한테 누가 될까봐서요.


  정말로 힘든 세월이었지만 형님은 저를 친동생처럼 사랑해주었고 저는 그 사랑과 믿음이 너무나 고마워 내 한 몸을 던지면서 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형님! 정말로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우리가 큰형님이 보낸 인편을 따라 그곳을 떠나려던 일이 사전에 발각되어 둘째형님은 군 보위부에, 나와 어머니는 마을 보위부에 체포되어 모진 욕설과 매질을 당하는 것을 형님은 자기 살점을 오려내는 것처럼 아파하셨죠. 이웃들의 도움으로 보위부 철창을 나오자 형님은 저와 저의 어머니를 데리고 무작정 두만강 기슭으로 나왔지요. 둘째형이 체포 되었기에 자신은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저의 어머니를 저의 등에 억지로 업혀주면서 “어머니! 어머니는 여기 있으나 없으나 둘째형은 우리 곁에 못 옵니다. 우리 당이 어떤 당입니까? 어머니! 꼭 건강하세요. 그리고 살아계셔야 합니다. 통일된 다음 반드시 만납시다.”라고 하시던 형님의 두 눈에는 비장한 각오와 피맺힌 눈물이 흘러내림을 저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한국행으로 이어질 우리의 운명을 뻔히 알면서 우리를 끝까지 도와준 형님! 만일 그 사실이 알려지면 우리보다 더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 정의감과 의리에 불타는 형님은 모든 것을 각오하고 우리를 도와주었지요.


  그 길로부터 1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우리 뒤로 그곳을 떠나 이곳에 온 사람들을 통해 형님이 그 후 1개월 정도 보위부 조사를 받았으나 끝까지 버텨 무혐의로 처리되었음을 듣고는 우리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지금 저는 한국에서 아무런 걱정이 없이 살고 있습니다.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크지 않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며 결혼도 했고 어여쁜 딸도 하나 두었습니다. 어머니는 형님 이야기를 자주합니다. “그래서 철준이 처가 몹시 앓는다 했는데……. 온 가족이 굶지나 않는지…….” 여러 가지로 걱정하곤 합니다. 이곳 생활의 풍요로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모든 것에 얽매여 사는 형님에게 전한다는 것 자체가 죄스럽기만 합니다.


형님!

꼭 만납시다. 건강하세요.

형수님과 딸 명순이에게 이 삼촌이 인사를 전해주세요.


2007년 6월 13일

서울에서 

 


덧글 개


260

 [2007년] 꿈에서도 너무 그리운 큰언니에게

관리자

2007/10/12

9014

259

 [2007년] 보고 싶은 아들 철이에게

관리자

2007/10/12

8815

258

 [2007년] 그리운 조카에게 보내오

관리자

2007/10/12

8660

257

 [2007년] 사랑하는 이모님께 이 글을 보냅니다

관리자

2007/10/12

9117

256

 [2007년] 보고 싶은 아들에게

관리자

2007/10/12

8994

255

 [2007년] 항상 보고 싶고 안기고 싶은 어머님께 드립니다

관리자

2007/10/12

9637

254

 [2007년] 보고 싶은 딸 혜경, 은경에게

관리자

2007/10/12

9267

253

 [2007년] 그리운 친구 진숙에게

관리자

2007/10/12

9659

252

 [2007년] 사랑하는 딸 은희와 금희에게

관리자

2007/10/12

8999

251

 [2007년] 감옥에서 고생하고 있는 내 딸에게

관리자

2007/10/12

9040

250

 [2007년] 사랑하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관리자

2007/10/12

9640

249

 [2007년] 그립고 보고 싶은 오빠에게 전합니다

관리자

2007/10/12

9491

248

 [2007년] 철준동지에게 이 글을 드립니다

관리자

2007/10/12

9728

247

 [2007년] 사랑하는 철이에게

관리자

2007/10/12

9028

246

 [2007년] 사랑하는 내 딸 옥에게

관리자

2007/10/12

9168

245

 [2007년] 편지

관리자

2007/10/12

9058

244

 [2007년] 꿈속에서나마 잊을 수 없는 사랑하는 나의 사랑하는 선희, 은희

관리자

2007/10/12

9058

243

 [2007년] 스승에게 전합니다

관리자

2007/10/12

9112

242

 [2007년] 보고싶은 오빠에게 전합니다

관리자

2007/10/12

9122

241

 [2007년] 어머니의 생신

관리자

2007/10/12

9124
 [1][2] 3 [4] 
Copyright 1999-2021 Zero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