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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들과 며느리에게2007/10/12
관리자

사랑하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최정례


  너희들과 헤어져 집을 떠나온 지 벌써 4년의 세월이 흘렀구나. 그간 너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몸은 건강한지…….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모르겠구나. 나는 이곳에 무사히 도착하여 건강히 잘 있으니 안심하여라. 너희들은 지금 이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먹고 있는지, 집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흔희는 얼마나 컸는지…….


  보고 싶다. 퍽 컸겠구나. 유치원을 마치고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구나. 어머니가 집을 떠날 때는 겨우 걷기 시작하고 “할머니가 무엇을 사다줄까” 하고 물으니 “바나나” 하고 겨우 대답하던 그 음성소리만 기억하면서 그려본다. 거리에서나 슈퍼에서나 바나나를 볼 때마다 흔희를 생각하며 어머니의 가슴은 한숨으로 얼굴이 흐려지곤 한다.


  또 어머니와 동생 때문에 네가 보위부에 가서 단련을 받았으며 6개월간 강직 되어 지금 병보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온몸의 피가 끓고 또 끓었다. 네가 그 고통을 다 받아 안고 살자니 원망인들 얼마나 했겠느냐?!


  흔희 어머니와 흔희 아버지! 똑똑히 정신 차리고 이 어머니의 이 글을 한자 한자 무심히 스치지 말고 이 세상에 대해 눈을 떠야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마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세상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상상조차 못하고 살지 않았느냐. 말 한마디에 보위부 귀신이 될까봐 안전부의 귀신이 될까봐 숨죽이며 시키는 대로만 살아 왔건만 뒤늦게야 세상이 이렇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있다. 너희들은 중국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알고 싶다고, 중국에 가면 우리가 마음먹은 물건을 마음대로 살 수 있느냐고, 물건이 그렇게 많냐고 묻던 그 말이 생생하다. 그러나 오늘은 마음대로 말 하련다. 너희들이 친지들과 놀면서 좋다는 말만 해도 잡아가는 험한 세상에서 잘못될까봐 말 한마디도 부모 자식 간에 삼가해야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어머니가 얼마나 마음 고심하며 살았는가 하는 것을 이젠 느껴야 한다. 그런데 남한 도착하니 한국 또한 지상천국이로구나. 이 어머니가 자라서 학교 다닐 때부터 북한의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배우자! 사회주의를 건설하여 행복하게 살자고 “세상에 부럼 없어라” 노래를 부르며 살아왔건만 북한 땅에서 이 어머니의 한생은 글로써 “세상에 부럼 없어라”였다. 노래 구절에 “하늘은 푸르고 내 마음 즐겁다. 손풍금 소리 울라. 사람을 화목하게 사는 내 마음 한없이 좋네. 우리의 아버지 김일성 원수님 우리의 품은 당의 품. 우리는 모두다 친형제 세상에 부럼 없어라” 노래도 그럴듯하게 좋았지만 생활과는 판이하였다. 그런데 이곳 남한의 한국정책은 진정 국민을 위한 시책이고, 자기만 열심히 일하면 먹고, 입고, 사는 것이 근심이 없는 나라다. 마트나 슈퍼에 가면 없는 물건이 없고, 물건을 사면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또 오시라고 친절히 인사까지 하고, 식료품 매점에 가면 맛보시라고 다 조그마하게 잘라서 먹어보고 사라고 권한다. 미안할 정도다. 온 국민이 행복하게 잘 살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모든 정책이 짜여있고, 동사무소에 가면 일보시는 분들이 친절로 단정하게 맞아주고 제 일처럼 해결해주고, 우리 탈북자를 탈북자대로 살 수 있게 상세히 문건에 밝혀져 있다. 경찰들은 무서운 것이 아니고 다정하게 다가와 알려주고 가시곤 하신다. 정말 꿈같은 세상에 와있다. 이렇게 고맙고 은혜로운 한국에서 너희들과 함께 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곳에 와보니 너희 아버지와 어머니는 너무나 정직하게 살아왔고, 너무나 너희들을 순박하게 교양하여 어린양처럼 살아왔다는 것을 절실히 직감하게 되었다. 세상을 몰랐던 이 어머니가 이제 60평생에 세상을 알고 고마운 제도 하에서 무엇인가 해놓을 힘이 없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북한에서는 인민건대 지원을 잘하여 미동대회까지 나가 토론까지 한 이 어머니가 이곳 한국에서 무엇을 해 놓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연리중이다. 많지 않은 너희 형제 같이 모여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최종소원이다.


  흔희 아버지와 흔희 엄마! 이곳에 와서 놀란 것은 이북에서 탈북 하여 나온 사람들이 만 명에 도래했다는 점이다. 94년도 이전에 온 사람도 있지만 김일성이 사망 후 하나원이 설립되어 100기가 지나고 있다. 어머니는 94기다. 한기에 150~200명까지 매달 들어오고 있고 중국에 떠돌고 있는 탈북자가 이곳에 온 사람들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계속 들어오고 있다. 너희들은 무서워 움직이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구나. 이곳 한국에 도착하면 매 사람마다 똑같이 가방에 온갖 상품들, 입을 것, 신발, 간식까지 똑같이 나누어주고 있다. 그러니 정부에서 얼마나 수고를 하고 있겠는가 하는 것을 상상해 보아라. 우리집안식구, 일가친척들이 아직도 세상을 모르고 있으니 안타깝구나. “일어나라” 노래 있듯이 고개를 쳐들고 세상을 봐야겠는데 어떻게 하면 전할 수 있을까? 안타깝다. 너희들을 강하게 담대하게 키우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네 동생이 이곳에 온 것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역사하셔서 내신 것 같다. 북한 땅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살아온 이 어머니는 이젠 떳떳이 예배당에 가 앉아서 마음껏 찬송을 부르며 아멘을 소리 높이 외치고 있다. 너희들은 모를 것이다. 어머니 고향에 사시는 큰 어머니, 큰 아버지가 전쟁 후 남포에서 선교하다가 붙잡혀가셨다. 그래서 큰 어머니는 추방될까봐 친가집 고향으로 건너가신 것이다. 어머니는 6.25전쟁 때도 할머님이랑 비행기가 와 돌격을 하면 온 집안이 무사하게 해달라고 이불을 쓰고 기도하곤 하였다. 남한은 하나님 아버지를 믿게끔 교회가 수풀처럼 일어섰다. 천주교 등 서로 도와주고 사랑해주고 모든 사람들이 선량한 마음으로 친형제처럼 도와주고 있다. 어머니는 숟가락 한 개 없이 왔지만 냉장고, 세탁기, 비디오, 가스렌지, 장롱까지 다 주어 부럼 없이 해놓았다. 탈북동호회, 기독교에서 도와주어 먹고 입고 사는 것이 근심 없다. 오직 두고 온 너희들과 일가친척 때문에 항상 마음 한구석에 근심이 있을 뿐이다.


  얘들아!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이곳에 와 모여 살 그날만을 생각하며 귀를 기울이고 세상을 봐라. 때가 되면 햇빛이 비칠 것이다. 이곳에 온 동생은 열심히 대학 입학준비를 하고 있다. 아침에 영어학원 가고 오후에는 밤 12시까지 공부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러니 너희들도 건강하여 몸과 마음을 다지고 있어라.


  지금 형편에 너희들에게 보내줄 돈이 없다. 이곳에 데려다준 분에게 인사하고 이제부터 모아서 보내주려고 계획하고 있으니 조금만 참아라. 동생들 대학 입학 후 아르바이트를 해서 오빠에게 보내주려고 계획하고 있고, 어머니도 소일거리를 찾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다오. 조금만 극복하여라.


  쓰자면 끝이 없고 할 말이 많으나 오늘 이만 쓰련다. 어머니가 중국에서 고생하며 남의 집 애를 받던 일, 보모하며 살던 이야기를, 식당에서 일하던 이야기를 다음에 하련다.


2007년 6월 26일

건강을 바라면서 어머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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