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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모님께 이 글을 보냅니다2007/10/12
관리자

사랑하는 이모님께 이 글을 보냅니다

 한경혜


  이모님, 안녕하세요? 이모님이 그렇게 사랑하시던 조카 경혜가 이모님과 언니, 동생들이 그리워 눈물을 머금고 이 글을 씁니다. 간다, 온다 말 한 마디 없이 하루 밤 사이에 온 가족이 고향을 떠난지도 어언 10년 세월이 가까워 오는군요. 그 동안 어떻게 지내시는지...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고향 산천이고 그리운 얼굴이건만 소식조차 모르고 지내야 하는 이 비극이 정말 용납이 안 되는군요. 요즘엔 tv에서 북한의 홍수 피해 소식이 전해져서 근심이 더 커집니다. 몇 년 전의 홍수 때에 이모님네 집 뒤의 작은 실개천이 넘쳐나서 방학 때마다 놀러가서 언니, 동생들과 시간을 보내던 이모님네 집이 다 떠내려가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릅니다. 집도 없이 현숙 언니네 집에서 지내신다니 얼마나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먹을 것을 심는다고 산이란 산은 다 뙈기밭을 일구다 보니 웬만한 비도 감당을 못 하는 게 아니겠어요. 작은 실개천에 집을 잃다니, 그것은 천재가 아니라 인재라 하겠지요. 이모님, 이 번 비에는 또 피해가 없었는지요? 비가와도 눈이 와도 하나 걱정 할 것 없는 아파트에서 엄마와 우리들은 북쪽 하늘에 검은 구름장만 모여도 그 곳 걱정입니다. 


  이모님도 아시다시피 우리 집에서는 제가 맏딸이잖아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고난의 행군"은 그래도 먹고 살 만 했던 우리 집도 예외 없이 휩쓸고 지나가서 생활이 말이 아니었지요. 맏딸인 내가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선택했던 것이 중국에 가서라도 돈을 벌어 어머니를 돕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목숨을 걸어야 했던 그 중국행이 결국은 우리 온 가족이 저를 데리러 중국으로 오도록 만들었고 오늘은 이렇게 대한민국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하나 없이 마음껏 일하고 또 희망의 꽃 피우는 대학 공부까지 하고 있으니 지금이야 말로 세상에 부러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수십 년을 살아 온 고향을 떠나서 정든 사람들과 헤어져 살아야 하는 이별의 슬픔만이 가슴 아픈 상처로 남았습니다. 이모님, 더욱이 형제들을 모두 그 곳에 두고 자식을 위해서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어머님을 생각하면 정말 잠이 오지 않습니다. 물론 어머님은 우리가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된 가장 큰 공로자가 저라고 말씀하시며 내색하지는 않으시지만 두고 온 형제들을 그리워하실 때마다 괜히 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모님, 저는 열 번 다시 태어나도 똑 같은 선택을 할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생존권도 없이 정말 하루하루를 피 타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못 사는 세상, 저는 그 곳에서의 생활을 다시 떠 올리기 조차 싫습니다. 이모님도 아시다시피 광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광산에 집단 배치된 후 노임도 배급도 안 주는 직장이지만 하루도 결근 없이 출근해야 했던 그 시절이 지긋지긋합니다. 여름이면 철광석 먼지가 쌓이고 쌓여서 걸을 때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현장에서 하루 종일 일 하고 나면 눈만 반들거릴 뿐 새까만 모습에 누가 누구인지 분간 할 수 없었지요. 더욱이 겨울이면 낡고 뒤떨어진 기계설비에서 새는 물이 그대로 얼음산이 되어 아무리 곡괭이로 얼음을 깨도 삽시간에 얼음무지가 쌓였고 그 앞에서 쩔쩔 맬 때면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계획은 해야 하는데 손가락처럼 불린 강냉이 국수를 시래기국에 말아 약간씩 요기를 하는 정도인 점심은 먹었는지 말았는지, 돌아서면 배가 고프고 힘이 없어 곡괭이 자루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계획을 다 하자고 악착스레 일하고 나면 온 얼굴이 얼음투성이, 땀투성이고 젖은 신발은 꽁꽁 얼어서 아예 벗겨지지도 않았어요. 휴식 시간에 젖은 신발, 젖은 장갑을 말리다가 깜박 조는 바람에 태워버린 적은 또 몇 번이었겠습니까?


  사랑하는 이모님, 매일 눈만 뜨면 출근하고, 10시간이 넘는 힘든 하루 일이 끝나면 또 강연회, 학습회며 생활총화로 편할 때가 없는 그 시간들이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직장에서 일주일간 휴직을 주었을 때 나는 현실 도피하는 심정으로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쓰러지는 가정을 버텨 보자고 중국행을 택했습니다. 그 길이 얼마나 위험하고 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 줄타기와 같은 모험이었지만, 또 저와 온 가족의 정치적 생명이 끝나는 길인 줄 모르지 않았지만, 저는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웃음을 짓고서도 돌이켜 볼 수 있지만 북한을 떠난 후 저와 우리 가족이 겪은 가지가지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들과 눈물겨운 사연들을 무슨 말로 다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어차피 태어난 인생, 그렇게 고생만 하다가 갈 수는 없었기에 온 가족의 피 타는 노력과 끈끈한 가족 사랑으로 온갖 시련 다 이겨내고 오늘은 이렇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행복하고 보람찬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다만 이 행복, 이 기쁨을 이모님이랑 함께 나눌 수 없다는 게 너무나도 가슴 아플 따름입니다.


  사랑하는 이모님, 그러나 저희는 결코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더욱이 분단 후 처음으로 군사 분계선을 넘어 열차가 달려가고 개성 공단에서 일하는 북쪽 노동자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텔레비전에서 보게 되니 통일의 그 날도 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다음 달이면 남북정상회담도 열린다는데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다 보면 우리가 만날 날도 그리 오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에 마음이 부풉니다. 물론 그 길이 얼마나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이모님과 언니, 동생들 만나면 드린다고 한 벌,한 벌 포개 넣은 옷이 해마다 쌓이고 쌓입니다. 어쩌다 놀러 가면 시내에서 온 내가 입맛이 안 맞을까봐 언니들 몰래 이것저것 챙겨 주시며 안쓰러워  하시던 이모님의 그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이모님, 부디 온 가족이 통일의 그 날까지 앓지 마시고 몸 건강히 살아계셔 주시기만을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가족만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 얼싸안고 행복의 눈물, 기쁨의 눈물로 회포를 나눌 그 날까지 부디 부디 건강하시기를 다시 한번 바라면서 오늘은 이만 적습니다. 언제나 이모님을 사랑하는 조카 경혜 드립니다.

 

2007년 9월 2일

마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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