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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아들 철이에게2007/10/12
관리자

보고 싶은 아들 철이에게

 고 빈


  자나 깨나 이 아버지는 너희들이 보고 싶구나. 철아, 사랑하는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나 가슴 아파했겠나. 가고 싶어도 못가는 아버지의 신세였다.


  너는 구락부에 여전히 다니고 있는지? 입당문건까지 썼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 아버지 때문에 어떻게 되었는지? 너의 처는 장사가 잘 되는지? 온 식구를 먹여 살리느라고 고생인들 얼마나 하겠나? 수양이와 수강이는 이 할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겠지? 나도 어쩐지 손녀, 손자가 무척 보고 싶구나. 수강이가 벌써 열세 살이 되어 전국 소년팀 탁구경기에서 1등을 해서 평양 체육단에 뽑혀 갔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이제는 밤에 자면서 이불에다 오줌은 누지 않는지? 참 걱정스럽구나. 명년에 북경에서 열리게 되는 세계 올림픽에 후보로라도 참가하기를 이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다. 수양이는 대학에 갔는지? 무슨 대학에 갔는지? 이제는 수양이도 다 큰 처녀가 되었을 거다.


  철아, 내가 집을 떠나고 벌써 3년이란 세월을 보냈구나. 너 모르게 중국에 와서 중국에 살고 있는 친척들과 친구들의 도움을 좀 받아 돌아가자고 생각한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중국에서 머물고 있는 동안에 중국 공안국에 발각되었으나 다행히도 붙잡히지 않고 교회의 소개로 대한민국에 오게 되었다.


  철아, 내가 대한민국까지 무사히 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한국 땅에까지 오게 된 경유의 이야기는 이 편지로서는 다 말할 수 없고, 대한민국에 와서 지금까지 약 반년 머문 동안 내가 보고 체험한 이야기를 너희들에게 다 하고 싶지만 한 장의 편지로서는 다 할 수 없으므로, 몇 가지 현상만 알려주겠다.


  철아 내가 한국 땅까지 왔다고 하면 네 형제들이 놀랄 것이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70고령이 넘는 내가 난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작년 12월 28일에 서울에 와 정착하여 생활하게 되었다. 철아 너는 잘 알겠지만 이 아버지는 중국 땅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공부를 하고 대학까지 나와 기술자가 되어 조국을 위하여 일하겠다고 1962년 6월 22일 두만강을 건너서 북한 땅에 갔다.


  그때에 북한의 김일성이는 멀지 않은 장래에 북한은 이팝에 고기국을 먹고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게 되어 어느 나라에 비할 수 없이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가 된다고 떠들었다. 김일성이가 1994년에 죽었는데 그해부터 공장이 다 멎고 국가는 빈궁에 빠지게 되고 전기조차 없어서 밤이면 촛불을 키게 되었고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철아 너도 잘 알겠지만 남북이 갈라진지 6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까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그동안 동족끼리 소리 없이 총부리를 맞대고 싸워온 것은 사실이다. 너는 직접 네 눈으로 보고 체험한 사실이지. 네가 북한의 국가 탁구선수로 생활할 때에 세계적인 탁구경기에서 때로는 한국선수와 대결하게 되었고, 죽을힘을 다해서라도 한국선수는 이겨야 했고 만약 이길 수 있는 상황에서 졌다고 하면 선수자격이 박탈되는 것은 물론 목숨까지 바치는 형편이었지. 이것이 다 보이지 않는 전쟁이었다.


  철아 내가 찾았던 조국은 북한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것을 똑똑히 내 눈으로 보고 체험했다. 북한에서 공산주의 간판을 걸고 하는 한국에 대한 선전은 다 거짓이라는 것을 내 눈으로 보고 너에게 말한다. 정치, 경제, 문화 어느 면을 보아도 북한과 남한의 차이는 하늘과 땅차이다. 북한이 한국의 수준이 되자면 100년이 걸려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이 아버지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지금 한국경제는 세계 200여개 나라 가운데 11번째로 잘사는 나라로 꼽히는가하면 북한은 거꾸로 빈궁에서 7번째라고 한다.


  철아 내가 본 몇 가지만 네게 말하겠다. 그 나라가 발전했는가 못했는가의 결정여부는 그 나라의 교통수단과 통신수단이 어느 정도로 발전했는가에 따라 알 수 있다. 너도 잘 알겠지만 북한의 교통수단은 옛날의 소달구지 시대라고 해도 된다. 함흥에서 네 누나가 살고 있는 회령까지 기차를 타고 정시에 가면 18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인데, 지금은 전기사정이고 뭐고 하면서 보통 3일~4일 심지어는 일주일까지 걸려서 여객들이 며칠씩 굶으면서 가는 것을 네 눈으로 보지 않았나. 그러나 내가 지금 본 한국은 기차, 버스, 택시, 비행기, 지하철 등 교통수단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하였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기차를 타고 당일에 가서 일보고 당일에 돌아오는 수준이고, 농촌이나 도시나 어느 곳을 막론하고 버스가 다니지 않는 곳이 없이 편리하다. 그리고 서울에서 제주도까지는 비행기로 왔다 갔다 하니 별세상 같구나.


  철아 통신망은 더 말할 수 없이 발전하여 수천 리 밖에 떨어져있는 친척들도 매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국에는 도시나 농촌에 집집마다 집전화가 설치되어있고 사람마다 손전화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학생들도 다 손전화를 가지고 다닌다. 심지어 버스역전마다 공공전화가 설치되어 있으므로 통신망은 말할 수 없이 발전하여 편리하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구나. 북한에선 아버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해도 제때에 전화를 걸 수도 없거니와 개인전화기는 국가의 비밀이 누설된다고 가지지도 못하게 하고 있지 않는가.


  철아 한국은 노인들에 대한 공경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평균수명이 83세라고 한다. 내가 온지 불과 몇 달 되지는 않지만 받은 은혜 가운데 한 가지만 이야기 하겠다. 5월 8일은 한국에서 노인절이라고 한다. 이날에 구역경찰서에서 탈북자 노인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베풀어주지 않았겠니? 경찰서장을 비롯한 여러 형사들이 우리와 한자리에 모여앉아 우리 탈북민 노인들 앞에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즐겁게 보내고 선물까지 안겨주는 것이다. 철아 북한 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 아니겠니. 나는 너무나도 고마워서 탈북자 노인들을 대표하여 다음과 같이 감사의 인사를 드리었다.


“북한 땅에서는 노인이 되면 죽음의 길에 들어갑니다. 나이가 많아서 퇴직을 하면 식량도 600g타는 것마저 300g로 줄이고, 생계비라고 주는 것이 쌀 3kg도 살 수 없게 주니 어느 자식, 며느리가 부모를 모시자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한국 땅에 오니 노인들에 대한 보살핌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들에게 집도 주고, 먹을 것, 입을 것 근심걱정 없이 보장해주고 적십자 복지관에서는 매월마다 과일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음식물을 공급해주고 제주도를 비롯한 명승지를 구경도 시켜주지 않습니까? 우리 탈북민 전체 노인들은 이렇게 나이 많이 먹도록 이런 세상을 처음 보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철아 내가 이 한국 땅에 와서 어느 곳을 다녀보아도 내 마음을 흐뭇하게 잡아준다. 나는 순간 이렇게 생각하고 결심했다. 지난 한생을 돌이켜보게 된다. 왜 이 대한민국을 이제야 찾았는가? 참된 내 조국이라고 찾아갔든 북한 땅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늙은 고목이 되어서야 대한민국을 찾고 보니 너무나도 부끄럽고 어리석었다는 자책감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이 참된 내 조국을 위해 나머지 여생이나마 내 마음을 다하고, 내 뜻을 다하고, 내 힘을 다해서 보람 있게 살겠다.


  철아, 끝으로 한 가지만 부탁한다. 하나님을 꼭 믿어다오. 나는 지금 한국 땅에 와서 하나님을 믿는 신자가 되었다. 북한의 김정일 독재 공산당국은 겉으로는 신앙의 자유를 부르짖지만 종교를 믿는 사람은 다 죽여 버린다. 철아 더 길게 말하지 않겠다. 이 아버지는 지난시기 중국에서 중국공산당원이었고, 북한에 가서는 조선 노동당원이었다. 주체사상만 머릿속에 꽉 찼던 빨갱이였던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을 믿는 신자가 되었겠니?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는 다음 편지로 알려 주기로 하고 오늘은 필을 놓겠다.


  철아 내가 본 자유의 땅 대한민국에 대한 자랑거리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멀지 않아 통일될 앞날을 그리며 우리 모두 만나는 그날을 희망하면서 힘차게 살아가자.


2007년 8월 31일

아버지 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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