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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동생에게
박 민
그동안 잘 있었니? 존경하는 어머님도 동생들도 모두 건강한지. 내가 여기 온지 어제 같건만, 세월은 벌써 3년이 지났구나. 참 세월도 빠르지.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공간에서 마음껏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지만 마음 한구석은 쓸쓸함이라고 할까 아님 외로움이라고 할까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찬 것 같아. 이런 게 과연 고향에 대한 향수병인가 때로는 너희들 생각까지 겹치면서 밤잠을 설칠 때가 많단다. 더욱이 너희들 모두 두고 내 가족만 이끌고 여기에 온 것이 후회된다.
이렇게 헤어져 생사도 모르고 살아갈 줄 알았더라면 그때 형노릇 제대로 했을 텐데 왜 그렇게 못했는지 너무 후회가 많아지는구나. 작년에 네가 중국에 들어왔다가 나의 도움을 조금이나마 받아가지고 나가다가 잡혔다는 불행한 소식을 올 봄에 들었다. 그래도 난 이번에는 난 형구실 조금이나마 했다는 것으로 기뻐했건만 물건너가고 말았구나. 그 소식 후에 다른 소식을 들으려고 많은 곳에 수소문해보았지만 아직도 모르고 있구나. 가끔 가다가 방정맞은 생각만 환상적으로 떠오른단다.
나도 고향에 있을 때 고난의 행군시기 가족의 생계를 위해 중국을 넘나들다가 어처구니없게 잡혀 감옥생활을 하였는데 그 생활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알기에 걱정만 태산 같구나. 아마 너는 지금 감옥에서 이 형을 그리면서 때로는 원망도 하고 철창 넘어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면 그 새의 자유로움을 그리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은 찢어지게 아파온단다. 차라리 너도 나처럼 자유를 찾아 이곳으로 왔더라면 그런 고생을 안 해도 됐을 텐데.
사실 너는 외화벌이 사업소에서 일하면서 중국도 나보다 더 많이 나와 돌아다녔으니 얼마든지 인생회전을 바꿀 수 있었으나 아마 너는 아버지 사상을 그대로 물려받아 그랬을 것이다. 아버지는 고향이 남한이셨지만 고향도 못 와보시는 것이 마음이 아파 내가 친척들을 비밀리에 찾자고 해도 당에서 찾아줄 때까지 절대 친척을 찾으면 안 된다고 그렇게 붉은 사상만 주장하던 아버지에게서 그런 사상만을 물려받았으니까.
난 여기서 아버지 형제들을 찾았어. 고모, 삼촌들을 찾았는데 모두 낮설어 보였고 그냥 아버지 형제라 하여 형제라 하는 것 외에는 대단히 어색하였다. 고모는 나에게 <너희 아버지는 이북을 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렸건만 끝까지 고집하고 가시더니 결국 50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그 땅에 묻히고 말았냐. 니가 아버지 대신 왔느냐. 세상에 이런 비극이 어디에 있냐>고 대성통곡을 하셨단다. 또 네가 감옥에 잡혀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는 너무 억이 막혀 말도 못하셨고 어떻게 해야 살려낼 수 있겠느냐 안타까워 하셨단다.
저녁이 가면 아침은 반드시 온다고 지금은 너한테 비구름이 휘몰아쳐도 반드시 새날은 돌아오니까 그날까지지 꼭 살아남아야한다. 그때 비극으로 나누지 못한 형제간의 의리도 지키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보자꾸나.
그리고 아버지 산소에 내 대신 가보려무나. 아버지가 돌아가셨단 소식을 듣고도 갈 수가 없는 이 형을 용서하여 주려무나. 마음 같아서는 올해 추석에 가서 아버지에게 불효막심함에 용서도 빌고 부디 하늘나라에 가셔서 행복하시라고 제사를 지내고 싶지만 같은 하늘 아래라도 가볼 수 없는 이 못난 형의 처지를 전해주려무나.
몇 시간이면 가 닿을 곳이지만 언제면 가볼 런지.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터지는구나. 부디 앓지 말고 건강하여 통일된 그날 너와 나 아버지 고향인 인천 고향집에 같이 가보자꾸나. 그때까지 잘 지내거라.
사랑하는 동생아 이 편지가 가면 잘 보관 하거라. 우리 만나는 날 이걸 내놓고 즐거운 추억으로 옛말 하자꾸나.
형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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