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한 이 자식.
존경하는 부모님께 두손 모아 용서를 빌며
때늦은 자책의 문안인사 드리옵니다.
최영미
존경하는 아버님, 어머님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부모님의 슬하를 벗어나 어언 17년 세월이 살같이 흘러갔습니다. 그 기나긴 나날 언제한번 부모님을 잊은 적이 없건만 자유의 행복을 찾은 요즘에는 더더욱 부모님들의 생각이 간절해 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예쁘고 고운아이로 자라거라, 그 이름 석자 최영미라 지어주셨건만 부모님의 사랑과 기대에는 못 미치는 너무도 불효한 자식, 언제 한번 부모님께 충실한 효녀로 자라지 못한 이 못난 자식 무릎 꿇고 부모님께 다시한번 용서를 빕니다.
철없던 그 시절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세월 속에서 부모님들의 속을 한없이 태웠고 조금 철이 들어 부모님께 효도하자던 마음속의 결심은 하루아침에 그 어디로 날아갔습니다. 결혼 이후에라도 다시는 부모님께 심려를 끼치지 말자고 생각하였지만 인간의 운명을 앞에 놓은 인생길에 뜻하지 않은 난관으로 인하여서 또다시 근심과 걱정을 끼쳐드렸고 나이든 지금에 와서는 부모님을 평생 저버리는 정말 못되고 죄 많은 자식으로 이 세상에 이렇게 홀로 떨어져 나왔습니다.
어찌하여 저만은 다 같은 하늘아래 두 부모를 모신 한 자식으로서 이렇게 부모님께 자식된 도리를 단 한번도 하지 못한 채 죄 많은 자식으로 남아있어야 하는지 저 자신이 너무도 야속하고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이런 수많은 죄를 두 어깨에 걸머쥐고 살아가자니 그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 할지라도 목으로 넘어가지 않고 기쁜 일이 생겨도 진심이 아닌 그런 웃음을 지어야 하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자나 깨나 보고 싶은 부모님과 형제들, 사랑하는 나의 귀여운 자식들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아 긴긴 이 한 밤 뜬눈으로 지새울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부모님,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때식을 어떻게 끓여 잡수시는지요? 배급을 제대로 주는지요? 모든 것이 너무 궁금하고 도와드릴 수 없는 것이 한없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저는 지금 부모님의 곁을 떠나 회령과 중국을 거쳐 북한에서 제일 많이 욕하며 적대시하는 남조선(대한민국)에 와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향의 우리 집 문 앞에 서서 무연한 앞을 바라보면 태극기가 한눈에 바라보이던 한국, 봄철과 가을철이면 분계연선인 철조망 옆에 있는 갈대밭에 불을 지펴놓고 그것을 끄기 위해 뛰어다니는 군인들이 바라보이던 그런 한국, 한걸음만 크게 뛰면 다다를 수 있고 두 손 크게 벌리면 한 아름에 잡힐 듯 너무도 가까운 거리, 한 시간 반이면 너끈히 도착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중심 도시인 서울에서 남부럽지 않은 세월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북한을 떠나와서 중국에 간 당시에 안전부와 보위부에서 부모님께 온갖 못된 짓을 다 하며 박해를 가했으리라 봅니다. 원래부터 북한이라는 두 글자가 얼마나 무서운 곳입니까? 북한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상만 제일 첫 자리에 놓고 모든 것을 교양하며 살게 하지 않습니까? 특히 우리 고향 개성에는 다른 곳과 달리 분계연선에 사는 죄 아닌 죄 때문에 교양사업도 더욱 강하게 하고 툭하면 노동교화소에 보내고 안전부와 사로청에 매일매일 끌려 다니면서 비판서를 써내고 그것도 모자라 배급도 적게 주면서 이 구실, 저 구실 잡아 제대로 주지 않는 그런 사회, 단 한가지의 자유권도 없이 모든 것을 주체사상에 얽매여놓고 갖은 멸시를 다하면서 사람들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습니까?
저희 가정만 놓고 보더라고 얼마나 힘들게 살았습니까? 부모님들도 저 때문에 이미 그런 어려운 고비를 겪으며 사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때는 제 나이 22세에 너무 어리고 다른 남성의 손목조차 단 한번도 잡아보지 못한 저를 수정주의 날나리 풍에 엮어 비판무대에 올려 세우고 그것도 모자라 늙고 병드신 나의 어머니를 끌고 가 6개월이나 강제노동을 시키면서 얼마나 마음속 육체적 고통을 안겨주었습니까?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갖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잘못된 정치사회에 대한 모멸감에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님, 북한에서 그처럼 나쁘다고 선전하는 대한민국에서는 전혀 그런 것이 없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참된 자유, 모든 언론의 자유, 모든 것을 자신스스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그런 자유가 누구에게나 차려져 있습니다. 특히 언론과 사랑에 의한 자유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으며 나무라는 현실조차 없습니다.
부모님, 대한민국에 오니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입니다. 누구나 세상에 태어날 때는 노래에도 있는 것처럼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지만 남과 북의 정치적인 차이 때문에 다른지 알 수 없습니다. 북한에서 받았던 모든 교양이 남한에 와서야 모든 것이 거짓이고 누가 옳고 누가 잘못인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언제 17평짜리 넓은 방에 화장실에 목욕탕까지 달린 그런 커다란 6층집에 살수 있다고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이런 큰집에서 혼자 산다는 행복! 하지만 북한에 부모처자를 두고 온 모든 북녘의 탈북자들은 이런 행복을 온 가정이 다 같이 누릴 수 없는 안타까움에 하루하루를 눈물 속에 보내고 있습니다.
보고 싶은 부모님, 언제면 부모님과 형제들 사랑하는 나의 자식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너무나도 보고 싶고 그리워 죽겠습니다. 그러니 저의 이런 마음 헤아려 주신다면 비록 연로하신 몸이시나 부디 부디 옥체 보전하시어 다시 만날 그날까지 꼭 어떻게든 살아만 계셔주세요. 그러자면 하루빨리 우리 모두의 소원인 통일 꿈에도 소원인 통일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정작 대한민국에 와서 살아보니 통일에 대한 염원이 너무나 불같이 그리워집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 모인 우리 새터민들과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한결같이 통일을 부르짖으며 북한에 여러 가지 모든 물자를 넉넉히 보내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희들은 오늘도 그것을 확신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멀지 않은 앞날 길지 않는 세월 속에서 반드시 우리의 소원이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비록 통일이란 두 글자가 힘이 들 수는 있어도 <개방>이란 두 글자는 꼭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부모님들도 현실로 아시다시피 우리 고향 개성에 얼마나 많은 한국기업이 들어가 운영하고 있습니까? 그러니 부모님, 비록 육체는 힘에 부치시더라도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주세요. 개방만 된다면 제가 제일 먼저 달려가 늙으신 부모님과 형제 친척 사랑하는 나의 두 자식을 꼭 찾아뵈올 것입니다.
부디부디 우리 온 겨례가 서로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웃으며 뜨거운 회포를 나눌 그날까지 몸성히 계시 옵기를 부모님의 불효자식은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옵니다. 다시 뵈올 그날을 기대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의 딸 영미 올립니다.
부디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2007.6.25
최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