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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아버지, 어머니에게2007/10/12
관리자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아버지, 어머니에게 

 서성금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은 아버지, 어머니, 셋째 딸 성금이 인사드립니다.


  보고 싶은 엄마, 엄마 품을 떠나 온지도 어언 10년이 되었습니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 꽃이 피었다가 지기를 열 번이나 되었는데 엄마, 아버지는 따뜻한 밥 한 그릇 제대로 드실까? 흰머리는 얼마나 희어졌을까? 허리는 얼마나 굽으셨을까? 떠나간 이 딸을 기다리다 눈도 못 감고 세상을 가시지 않았을까 하고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칩니다. 아버지, 엄마 생각에 길을 가다가도 남몰래 눈물을 훔치고 잠을 자다가도 소리쳐 불러보는 엄마, 아버지, 그리고 언니 오빠, 사랑하는 나의 동생들.


  이 편지가 엄마한테 갈 수 없다는 것을 번연히 알지만 엄마를 그리는 이 딸의 간절한 마음이 구절구절 메아리가 되어 엄마가 들으실 수 있을 것만 같아 한자 한자 적어갑니다.


  엄마, 97년 2월달에 엄마의 환갑에 갔을 때 환갑잔치는 다 끝나 형제들도 다 돌아가고 우리만 상을 차리고 절을 올리면서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그 절이 이 딸의 마지막 인사로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지요. 몇 년 새에 많이도 굽어진 엄마의 굽은 등을 보는 순간 우리엄마도 많이 늙어 가는데 이 못난 딸은 효도 한번 못하고 손을 내밀어야 되는 처지라 죄책감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그해 봄, 우리가 살던 30호가 될까 말까한 자그마한 동네에서도 사람들이 영양실조에 걸리고 굶어죽고 있을 때 연로보장을 받고 배급도 없이 사시던 시아버님과 시동생이 중국에 가만히 가게 되었고 그 일이 발각이 되어 저는 정든 집과 고향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한 달 후에 두만강을 건너 목숨을 걸고 찾아온 남편을 따라 저도 중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중국에 가서 입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어도 국적이 없는 우리는 중국공안의 눈을 피해 숨어살아야 했고 늘 불안 속에서 떨어야 했습니다. 어느 날은 두만강의 물살에 허우적거리는 꿈을, 또 어느 날엔 집에 갔는데 동네사람들이 중국에 도망을 간 반역자가 어떻게 다시 왔냐? 하면서 보위부 사람들에게 쫓겨 다니는 꿈을 꾸고 나면 온 몸이 식은땀에 푹 젖어 정말로 그 끔직한 상황에 내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놀란 때가 그 얼마였는지 모릅니다.


  이 딸이 살아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행복하게 산다는 소식이라도 전하면 좋으련만……. 간다는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나간 이 딸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 이제는 이 딸이 어엿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었고 당당한 권리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맛있는 음식, 멋있게 차린 엄마들을 봐도 엄마, 아버지, 언니, 오빠들 생각에 목이 메입니다. 행복한 생활에 도취되어 엄마얼굴도 점점 희미해지고 이제는 꿈에서조차 잘 보이지 않아 오늘저녁 꿈에는 꼭 엄마를 봐야 하는데 바라지만 엄마 얼굴은 다시 새길 수 없는 그림자처럼 희미해 실망하는 때가 많습니다.


  엄마, 이밥에 돼지고기를 먹고 기와집에 사는 것이 우리들의 소원이었다면 그런 천국에 이 딸이 살고 있습니다. 더운물, 찬물 나오는 수도 평양에 시집을 보내는 것이 엄마의 소원이었다면 엄마의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쁜 우리 셋째 딸 돌이 급좌한테 시집을 보낸다고 동네 아줌마들과 농담하시던 그 농담이 진담이 되어 이 딸이 돌이 급좌에 앉아 일하고 있습니다. 쌀독 밑에 깊숙이 감추어두셨던 사과도 친손주들 몰래 주시며 그렇게 예뻐하셨던 외손녀 선화도 예쁘고 착하게 자라 17살입니다. 올해 5대1의 경쟁률을 뚫고 외국어고등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엄마의 그 사랑에 죽을 고비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구원해주셨고 좋은 분들과 인연이 되어 여기 남조선에 오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일한 만큼, 자기가 땀 흘리고 힘들인 만큼 얻을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다시 말하면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인 주체사상대로 살아야 할 세상이 지옥의 땅 북한이 아니라 여기 남한입니다. 아버지, 엄마처럼 부지런한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세상이 여기 대한민국입니다.


  엄마, 성분이 나빠 평생 마음 고생하신 엄마에게 남조선에 간 반동집이라는 딱지가 붙을까 여태 소식도 못하고 지낸 십년세월입니다. 우리 일곱 형제들을 낳아 키우시느라 고생도 많이 하셨던 우리 어머니, 그 땐 고생하시는 엄마를 이해하기 보다는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 앞에 저절로 화가 나 엄마한테 화풀이를 했던 이 못난 딸입니다. 대대로 물려받은 호적등본 같은 그 농장에서 밭갈이하시고 김을 매시고 지나가신 이랑마다 꽃밭처럼 가꾸셨던 아버지의 그 알뜰하시고 진실하신 성품, 맡은 일에서 빈틈이 없다고 늘 칭찬을 받으셨던 우리 아버지, 늘 꼭두새벽 일어나시고 별이 뜨는 늦은 저녁까지 일하시고 일하시며 일곱 자식을 키우시느라 여름에는 땀에 절으시고 겨울에는 북두 갈고리처럼 터 갈라지셨던 아버지의 그 손, 약주를 드시고 중앙표장 8장을 내놓으시고 평생을 땅에 묻고 살았는데 당에서 받아주지 않는다고 눈물지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성분이 나쁜 아버지한테 시집온 것을 늘 한탄하시면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이어질 때마다 가슴을 쥐어 뜯으셨던 우리 엄마, 최악의 조건에서도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인생의 선구자 우리엄마, 학교공부는 못하셨지만 연필에 침을 발라 당 정책 노트에 글을 쓰시던 엄마의 모습이 선합니다. 늘 자식들을 믿어주시고 진실하고 근면하게 대바르게 자라도록 이끌어주셨던 우리 엄마. 오빠가 대학에 갔는데 너까지 대학에 가면 뒷바라지를 못한다는 엄마의 그 말에 남몰래 울었던 이 딸입니다. 엄마를 너무 사랑했던 딸입니다.


  시집을 간 이 딸이 여행증도 없이 도둑차를 타고 야밤 상경해 대문 밖에서 “엄마”하고 부르면 맨발로 뛰어 나오시며 “성금이 왔냐?” 하시던 자애로우신 어머니의 그 목소리를 한번만이라도 듣고 싶습니다. 극심한 식량난에도 입쌀 한 대박, 수수쌀 한 대박, 알뜰히 챙겨주셨던 우리 엄마. 엄마의 그 사랑, 그 땀방울이 너무도 소중해 칠년 동안 한 번도 빨지 않고 넣어두었던 나일론 이불을 그냥 두고 떠나올 때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았습니다. 따뜻한 엄마의 그 사랑을 버리는 것만 같아서…….


  학교에서 최우등생으로 소문이 났어도 성분이 나빠 대학에 못가 울면서 남들이 다 가는 직장배치도 마다하고 농장에서 첫 처녀분 조장으로 일했던, 가야금 양금도 잘 치고 해설도 잘해 인기가 대단하셨던 큰 언니. 어려운 식량난 속에서 처동생들을 챙기랴, 동생들을 챙기랴 늘 수고하셨던 인물 잘난 큰 형부, 그리고 늑막염에 걸려 약을 먹던 성일이, 귀여운 성희. 학교예술소조에서 제일 큰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해 내가 늘 부러워했던 둘째 언니, 둘째 형부, 조카 장준이, 준영이. 성금이 결혼할 때 꼭 주고 싶다며 농장 일을 끝내고 밤늦게까지 대패를 밀고 톱으로 썰며 손바닥에 멍이 들고 손을 베면서 자기 손으로 이불장을 만들어 주셨던 작은 오빠, 고모를 닮았다고 늘 외우던 조카 신금이. 농장 써클소조에서 재담, 기타연주를 도맡아 하셨던 재주 많고 여자처럼 예쁜 얼굴의 큰 오빠, 손재주가 많은 큰 언니와 조카 주성이 향미. 군대에서 휴가를 가라해도 부모들한테 부담이 된다고 한 번도 집에 오지 않고 헤어졌다가 10년 만에 만났던 조용하게 말이 없던 동생 평원. 집에 가면 매부술 이라고 집에서 만든 곡주를 꼭 챙겨주던 귀여운 막내 동생 사원. 너무너무 보고 싶어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 미안한 이 딸입니다. 우리 딸 선화의 밥쌀이 떨어져 아이를 굶겨죽일 것 같아 선화아버지를 엄마 집에 보냈는데 파라티브스로 앓아누운 장모님에게 차마 식량을 달란 말을 못하고 빈 배낭으로 집에 들어섰을 때 앓는 엄마 걱정 보다 내 새끼를 굶기게 된 것 때문에 남편에게 화를 냈던 이 못난 딸입니다. 엄마도 이 딸의 마음을 이해해주시겠지요.


  보고 싶은 엄마, 편지를 쓰는 지금도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 내려 편지지를 적십니다. 이 딸은 하얀 이밥에 고기를 먹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에서 가죽구두를 신고 살아도 아직도 이런 세상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이 지구상의 사람들 모두가 북한국민처럼 풀죽을 먹고 강냉이 속대를 먹고 사는 줄로만 알고 사실 아버지, 어머니, 언니 오빠, 동생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남조선은 부익부, 빈익빈의 차이가 심하고 양육강식의 자본주의라고 선전하면서 다리 밑에는 거지들이 판잣집을 짓고 산다고 선전하여 무지한 문맹자로 만든 저 김일성, 김정일이는 천추에 용서받지 못할 민족 앞에 죄를 짓는 죄인인 것입니다. 북한주민 모두를 굶어죽이면서도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지상 낙원이라고, 수령님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바쳐야 한다고 속이고 있습니다. 철창 없는 감옥을 만들고 사람들을 인간 로봇으로 만든 저 북한 땅은 이 지구상에서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지옥의 땅입니다.


  아버지, 엄마 힘내세요. 이제까지 그러하였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 험한 세상에서도 꿋꿋이 살아만 주신다면 언젠가는 꼭 다시 만날 날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통일의 그날을 하루라도 앞당기고 싶어 이 딸은 열심히 일하고 배우며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언니, 오빠, 동생, 조카들. 통일의 그날 우리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웃을 그날을 간절히 그리며 오늘은 이만 적습니다.


서울에서 딸 성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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