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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들에게2007/10/12
관리자

사랑하는 아들에게 

 장선희


  준이야!

  너와 헤어진지도 꼭 10년이 지났구나. 5살박이 네 아들 앞에서 탈북했다는 이유로 쇠고랑을 차고 서슬 푸른 보위원들의 눈총을 받으면서 차디찬 보위부 감옥으로 끌려가던 네 모습이 너무나 생생히 떠올라 그 순간을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정신을 잃을 지경이다. 평소에는 그처럼 강인하고 의젓하여 온 마을과 직장에서 칭찬만 받아왔고 그런 네가 있기에 이 엄마는 언제나 행복했는데 그날 그 밤에는 너는 깊이 머리 숙이고 항변조차도 없이 모든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힘없이 걸어가더구나. 그때 이 어미의 눈에서는 눈물대신 피가 흐르는 것을 참았다.


  준이야! 지금 어디서 살아있기나 하니? 살아 들어가서는 죽어서도 나오지 못한다는 정치범 수용소. 이름 대신 00번호로 불리고 온갖 궁핍과 질병 속에서 허기진 배를 부여안고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강도 노동에 매일 매일 말 못하는 짐승보다 더 고역을 치르고 있다는 그 속에 어떻게 성한 몸으로 살아 있기를 바라겠느냐. 하지만 이 어미는 그저 매일 매순간 “하나님 아버지! 어린 저의 아들 어린양을 꼭 보살펴주세요. 제발 살아있기만……. 함께 주안에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족의 절절한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리라 믿는다. 준이야! 너는 조선인민군에서 10여년을 단련한 몸이니 꼭 그 모진 고통도 이겨내리라 믿는다.


  네가 잡혀간 다음 우리 가족 모두가 마을 보위부에 붙잡혀가서 난생처음으로 된욕과 구타도 받아보았다. 보위원들이 일상생활용어가 그런지 “이놈의 노친네야, 이 새끼야”가 호칭어로 되었더구나. 두 마디 안팎의 쌍욕을 들었고 더욱이 옆방에서 네 동생들이 그들의 구둣발에 채이고 채찍에 맞아 부르짖는 비명소리가 들려와 이 엄마의 심장은 칼로 베이는 듯 하더라. 용서하지 못할 그 사람들의 경거망동은 바람 앞에 촛불마냥 서있는 나 자신이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이놈의 노친네야! 네놈의 큰 아들놈이 조국을 배반하고 달아났다가 국경 너머 와 있다면 우리한테 알려 그 민족 반역자를 잡아오게 해야지……. 그놈을 만나려 또 둘째 놈까지 보내?”라면서 성난 이리마냥 길길이 뛰면서 덤비는데 그놈의 입에서는 침방울이 튕겨 나와 땅바닥을 어지럽히더구나. 그래 나는 무슨 용기인지는 몰라도 “불 붙는 집 속에, 언제 내려 앉을지 모르는 그 집 속에 자식이 있다면 서슴없이 뛰어드는 것이 어머니인데, 내가 어떻게 내 아들을 당신들 앞에 바치란 말이요. 그 아들대신 이 세상을 거의 다 산 나를 잡아가시오.”라고 대들었다.


  우리를 보위부에 잡아놓고 그 자들은 우리가 기르던 가축을 다 잡아먹고 재산도 마음대로 처리하였다. 그러나 고마운 이웃들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그 속에서 도망쳐 나와 두만강물속에 무조건 뛰어들었다. 우리는 강물이 얼마나 깊은지, 유속이 얼마인지, 모든 것을 의식 못한 채 무작정 뛰어들어 수백 미터 하류로 밀려가다가 바위와 나무등걸에 걸리어 요행수로 살아났다.

살고 보니 뒤에 두고 온 너와 손주 생각이 나의 발목을 잡아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는 나에게 네 동생들은 “어머니! 형님이 붙잡혀 갈 때 그 눈빛을 못 보았습니까? 자신이 모든 죄를 짊어지고 갈 터이니 너희만이라도 어머니를 모시고 큰형님한테 가라고, 훗날에 자신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아들 성주를 부탁한다고 모든 사연을 말없는 가운데 그 눈에 담아두었습니다” 우리가 먼저 가서 꼭 형님을 구원하자면서 내 등을 밀고 발을 잡아당겨 정신없이 걷고 또 걸어서 목적지에 닿았고 무사히 한국에 올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이 꿈만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북한에서 본 외국영화의 한 장면처럼. 추워도 더워도 몸을 덥히거나 식힐 수도 없고 언제 한번 배불리 먹어보지 못했던 추방지에서의 6년 세월을 어찌 잊겠니? 휴식하던 어느 날 저녁 이곳에 온 네 동생들은 큰형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다가 그만 울음바다가 되었지.


  네 동생 철이가 옛날 얘기를 꺼냈다. “어머니! 내가 00곳에서 처음으로 술 먹고 앞도랑에 빠진 것을 동네 사람들이 집에 데려다 주었을 때…….” 그때 너는 네 동생을 마구 때리면서 “이 자식아! 이게 무슨 꼴이야 이러면 누가 좋아하니? 큰형님이 이 일을 아시면 얼마나 아파하겠니? 우리 때문에 청춘을 고스란히 바친 어머니는…….” 울분을 터뜨리다가 마지막에는 동생을 안고 너도 울고 네 동생들도 울고 우리가 모두 울었지. 이 세상이 너무나 억울하고 우리 처지가 너무나 비참해서 말이지. 때린 사람, 맞은 사람 모두 울었지만 그 목소리가 밖에 들리면 행여나 정치적 보복을 당하거나 또 남들이 우리를 업수이 여길까봐 말이다. 그러한 생각을 하니 우리 모두는 목이 메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서 잘살고 있는데 “우리 준이는? 작은 형님은?” 하면서 울음바다 속에서도 내일의 희망을 잃지 않았다. 반드시 살아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온 밤을 지새웠다. 너의 유일한 피붙이인 네 아들 성주는 우리가 지금 조선족을 통해 잘 돌봐주고 있다. 얼마 전에는 사진집을 받았구나. 5살밖에 안되던 성주가 15살이 된 모습. 어릴 적 네 모습을 꼭 빼닮아가고 있더라. 초점 없는 것 같은 눈동자, 여윈 얼굴모습.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자극했다. 그 눈동자 속에는 자기만을 뒤에 두고 떠나온 이 할머니와 삼촌에 대한 원망이 있는 것 같고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그대로 담겨져 있더구나.


  준이야!

  여기에 와서 네 형과 셋째는 회사를 운영하고 막내는 좋은 회사에서 일하는데 모두가 일류대학을 졸업했다. 나 역시 70을 바라보지만 이곳에 온 우리 친구들의 선배로서 최선을 다해 그들을 보살피고 이끌어 나가고 있다.


  꼭 죽지 말고 살아만 있어다오. 나 역시 너를 만나기 전에는 절대로 눈을 감지 않을 것이다. 꼭 살아서 한자리에 모여앉아 지나온 모든 것에 대하여 나누면서 살자. 우리한테는 죽을 권리가 없다. 꼭 살아야한다. 우리 온 가족은 이때까지 너한테 진 빚을 몇 배로 갚을 준비가 되어있다. 그 기대에 꼭 보답해야한다.


사랑하는 내 아들 준이야!

부디 건강히 있어다오.

강하게 살아다오.

안녕히.


2007년 6월 28일

서울에서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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